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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느Yonu May 18. 2024

문득 생각나 써보는 토론토-뉴욕 버스 여행의 추억


뉴욕 센트럴파크

무려 지금으로부터 13년 전의 여행인데 아까 앙코르와트 여행기를 쓰다가 생각이 나서 써본다. 당시 나는 토론토에 살고 있었고 9월, 내 생일 즈음해 뉴욕 여행을 계획했다. 당연히 돈 없는 학생인 데다 돌도 씹어먹을 나이였으므로 망설임 없이 '버스'를 이동수단으로 택했다. 정확히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밤 10시 즈음 토론토에서 출발해 밤을 꼬박 새워 아침에 뉴욕에 도착하는 일정이었다. 당시 촬영한 사진들을 하드 디스크에 넣어놨는데 디스크가 고장이 나 수리를 받아야 사진이 나올 것 같다. 그나마 뉴욕 센트럴파크 사진도 옛날 네이버 블로그에서 한 장 건졌다. 


그때는 폰카 대신 DSLR을 들고 사진을 찍고 다녔고 스마트폰도 대중화 전이라 여행 다니며 구글맵을 보는 건 상상도 못 했다. 무거운 노트북을 이고 가서 그날그날 어디를 갈지를 정했고 여기를 가려면 어디서 이 버스를 타고, 저기를 가려면 저기서 이 지하철 노선을 타고 등 여행계획을 종이에 빼곡히 적고 다녔다. 길을 모르면 진짜 행인에게 묻기도 했고 우버도 없던 시절이라 불친절하기로 유명한 뉴욕 택시는 탈 생각도 못했다.(결국 마지막날 탔지만) 아, 심지어 내 개인 신용카드도 없던 시절이라 숙소도 한인 숙박을 찾아 계좌이체로 예약했다.  


뉴욕 가는 버스도 오프라인으로 예매해야 했고, 당일 정류장에서 내가 탈 버스가 보통 많은 사람들이 타고 다니는 그레이하운드가 아니라는 걸 알게 됐다. 다행히 시간이 있었기에 무사히 버스 탑승을 완료했다. 내 옆자리에는 중국에서 온 아주머니가 타셨는데 조금 말을 트고 나니 옆에서 계속 귤이며 과자며 자기 먹는 것을 내게 나눠주셨다. 아이도 있다고 하셨는데 커서 중국어를 못할까 봐 중국으로 유학 보내 놓은 상태라고 하셨다. 


당시 토론토-뉴욕은 나이아가라 폭포 근처의 이미그레이션을 통과했는데 여기서 중국인 아주머니가 아주 고역을 당하셨다. 아주머니는 캐나다 여권까지 갖고 있었으나 중국 악센트가 심한 영어 탓인지, 친구 결혼식에 가느라 축하 선물을 바리바리 싸들고 가서였는지 이미그레이션에서 아주머니의 짐을 아주 꼼꼼하게 검사했다. 아주머니는 우리 중 아무도 벗지 않은 신발까지 벗어가며 이미그레이션을 통과해야 했고 속옷에 숨긴 물건이 있는지까지 답해야 했다. 일련의 일들로 이미그레이션에서 시간이 많이 소요돼 뉴욕 도착이 늦었다. 


이미그레이션을 통과하고 버스는 완전히 불을 끄고 수면모드에 들어갔는데 이때 잠깐 내가 좁은 공간에 갇혀있다는 공포를 느꼈었다. 나는 얼른 수면을 취하는 것으로 이 공포를 벗어났다. 생애 두 번째 겪은 폐소공포증이었는데 나이가 드니까 점점 더 예민해지고 있다




나는 뉴욕에 도착해 재미난 추억을 많이 쌓았다. 

-특히 뉴욕 한인민박에서 만난 한국인 중 한 명은 나와 같은 학교를 다니고 있었고 우리는 아직도 종종 연락을 주고받는다. 

-숙소에서 만난 한국인들끼리 펍에 갔는데 당시 내가 뉴욕에서 음주 가능 연령인 21세가 아니었음에도 아이리시펍의 가드가 윙크하며 그냥 들여보내줬다. 하지만 자리가 없어 인근 레스토랑에서 술을 마셨고, 어차피 술을 마시지 못하는 나는 콜라를 마셨는데 나이가 조금 있는 중년의 웨이터가 유독 내게 친절히 대해줬다. 말미에는 빌지에 삐뚤빼뚤하게 '감사합니다'라고 적어 가져다주기까지 해서 우리는 정말 기분 좋은 마음으로 팁을 잔뜩 쏘고 왔다.  

-내가 사용하던 도미토리에는 뉴욕 한 달 살기를 하는 여자분이 계셨다. 말은 많이 못 나눠봤다. 

-모던 아트 뮤지엄인 모마에서는 처음으로 스탕달 증후군을 겪어봤다. 

-아메리칸 인디언 박물관에서는 경비 아저씨와 친해져 사진도 찍었다. 나중에 사진을 본 친구들은 "마리오랑 사진 찍었네?"라며 웃었다. 아저씨의 콧수염 탓이었다. 

-자연사 박물관에서는 표를 파는 점원이 "너 어디서 왔어? 미국인이야"라고 물어서 영어로 우쭐도 했었다. 

-헬스키친에서는 직원이 추천해 주는 메뉴를 먹었는데 하필 내가 잘 먹지 못하는 생선 요리였어서 자연사 박물관에서 먹은 걸 다 쏟아내기도 했다.

-자유의 여신상은 하필 보수 중이라 맨 위까지 올라가 보지 못하고 발치에서만 사진을 찍고 왔다. (보수의 아이콘...)

-앨리스섬으로 향하는 페리에서 옆자리 백인 할머님이 유모차를 타고 있는 아이를 보며 "나도 저 아이처럼 어릴 때가 있었는데..." 하며 내게 말을 걸어와 삶과 죽음, 젊음과 노화에 대해 생각했다.

-'로드리게즈'라는 성을 쓰는 행위예술가와 강제로 사진 찍히고 몇 달러를 뜯기기도 했다. 여행객을 노린 초보적 수법에 당한 것이다. 

-마지막날 길을 잃어 결국 택시를 탔는데 에콰도르 이민자로 기억하는 드라이버는 내가 한국인이라고 하자 태권도를 배운 적이 있다고 했다. 뉴욕 택시는 불친절하기로 소문나 걱정했는데 다행히 엄청 친절했고 택시비도 얼마 안 나왔다. 

-센트럴파크의 존 레넌 추모 공원에 유난히 일본인 관광객들이 많았던 게 기억이 남는다. 

-우연히 숙소 근처에서 드랙퀸에 가까운 화장을 한 게이를 두 번 마주쳤는데 두 번째 만났던 날에 나에게 자기 친구가 파티를 하니 같이 가자고 초대했었다. 물론 겁나서 안 갔다. 내가 호모포비아라서가 아니라 뭔가 약물이 난무할 것 같아서 안 갔다. 

-여행 중 스티브잡스가 사망해서 뉴욕 애플스토어에 엄청난 인파가 몰린 걸 봤었다.

-여행 중 Occupy Wall Street 시위가 크게 나서 시위대에 끼어보기도 하고 본부처럼 사용되는 야외 공간을 구경했었다.

-지하철에서 쥐를 봤다.




토론토로 돌아가던 날. 지금은 모르겠으나 버스가 자유좌석제라 창가자리를 놓치고 앞쪽에 앉았는데 옆자리 흑인 여성 승객분의 덩치가 너무 커서 허벅지가 내 자리까지 넘어오는 지경이었다. 그래서 자리를 옮겼다. 

옮긴 옆자리에는 또 다른 흑인 아주머니가 탔으나 딱히 말은 주고받지 않았다. 그런데 버스가 휴게소에 정차해 내가 화장실에 다녀오자 아주머니가 먼저 말을 거셨다. "노트북 그렇게 두고 내리지 말라"라고. 

긴 여행길에 나는 차 안에서 노트북으로 빅뱅이론과 시드와 낸시를 봤었고, 휴게소에 정차하자 노트북을 그대로 내 자리에 둔 채 내렸다가 왔다. 아주머니는 이렇게 노트북을 자리에 두고 내리면 누가 훔쳐갈 위험이 있으니 절대 그러지 말라고 했다. 아주머니 얘기를 듣고 나니 아찔함이 몰려옴과 동시에 여기가 한국이 아님을 다시 한번 직감했다. 아주머니는 좋은 분이셨고 버펄로에서 내리셨다. 


그다음은 특이한 복장을 한 가족이 버스에 올랐다. 정확하진 않지만 아미쉬 복장과 비슷했다. 가족은 세 명이었는데 아이가 어렸고 같은 라인에 앉기를 희망했다. 버스 기사님은 남는 자리가 있거나 양보해 줄 사람이 있냐고 물었고 마침 2-2 좌석에 나 혼자만 앉아있었기에 내가 자리를 양보해 그들은 같은 라인에 앉았다. 꼬마 아이가 나를 신기한 듯 뚫어져라 보았던 게 인상 깊었다. 




버스가 생각보다 일찍 토론토에 도착해 집으로 가는 버스가 아직 다니지 않았다. 비도 조금 내리고 있어 새벽바람맞으며 평소 자주 찾던 영화관 AMC 앞에서 비를 피하고 있는데 경비원으로 보이는 흑인 아저씨가 다가와 "Are you in trouble? 너 곤란한 상황에 처해있니?" 했던 게 기억이 난다. 새벽 어스름에 아시안 여자가 큰 짐을 들고 혼자 서 있으니 걱정을 했던 모양이다. 나는 아주 발랄하게 "뉴욕 다녀왔는데 집에 가는 첫 차가 아직 없어서 여기서 기다리고 있어!"라고 답했다. 그러자 그는 "오 뉴욕 좋지!" 하며 여행이 어땠냐고 이것저것 물으며 내 첫 차 시간까지 함께 있어 주었다. 



토론토에서 가까운 나이아가라 폭포


토론토에서의 기억은 거의 다 따뜻했다. 그래서 후에 캐나다 이민을 결심하고 상황에 맞춰 밴쿠버로 갔으나 밴쿠버는 달랐다. 그리고 나는 한국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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