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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느Yonu May 29. 2024

모임

어둠이 컴컴히 내린 시각, 지석-데이비드는 전기 자전거를 타고 재홍-올리버가 말한 장소로 향했다. 재홍-올리버는 지석-데이비드에게 약속 장소로 오는 동안 절대 GPS나 내비게이션을 켜지 말고 대중교통이나 빌린 자전거가 아닌 본인의 전기 자전거를 사용하라고 신신당부했다. 혹 전기 자전거나 전기 차를 빌린다면 다른 사람의 명의로 하라고 했다. 또 모자 혹은 마스크를 착용해 얼굴을 가리고 평소 잘 입지 않는 옷을 입으라고도 주문했다. 정부가 감시하고 있기에 모임 장소의 위치가 드러나서는 안된다는 이유였다.


GPS와 내비게이션에 익숙했던 지석-데이비드는 약속 장소를 찾는데 애를 먹었다. 그렇게 당도한 곳은 오래된 주택가의 낡은 가옥 지붕 밑이었다. 이런 곳에서 모임이 가능할지 의문스러웠다. 재홍-올리버가 나타나지 않았지만 당일에는 절대 연락하지 말라고 그가 전했기에 지석-데이비드는 그저 기다릴 수 밖에 없었다. 그렇게 20분 정도가 지났을까.


"여기야!"

약속 장소에서 약 50미터 정도 떨어진 또 다른 어둠 속에서 재홍-올리버가 손을 흔들며 그를 불렀다. 처음 보는 후드티에 모자를 눌러쓴 재홍-올리버는 지석-데이비드를 차에 태웠다. 차에는 둘 외에도 몇명의 사람들이 더 타고 있었다.



"보안 때문에 어쩔 수가 없었어. 이 차는 다른 사람 명의야. 이젠 조금 안심해도 돼"

그렇게 차로 20분을 더 달렸을까. 드디어 지석-데이비드는 진짜 '어른아이 모임' 장소에 도착할 수 있었다. 




"안녕하세요, 재홍-올리버 군에게 얘기 많이 들었어요. 여기까지 오느라 고생이 많았어요. CCTV도 너무 많고, 드론까지 떠있으니 우리는 늘 이렇게 비밀리에 만나요"

제법 덩치가 있는 남자가 지석-데이비드에게 다가와 악수를 청했다. 얼굴이 어딘가 익숙했다. 기억을 더듬고 있는 지석-데이비드에게 남자는 자신을 소개했다.


"처음 본 얼굴 같지는 않죠? 저는 재윤-제임스, 국회의원입니다"

지석-데이비드는 깜짝 놀랐다. 정부 측 인사가 어른아이 모임을 지지하고 있을 줄은 몰랐다. 알고 보니 재윤-제임스는 오랫동안 모임에 참석 중이었다. 이어 재홍-올리버가 모임의 주축 인사 중 한 명이라는 사실에 지석-데이비드는 또 한 번 놀랐다. 지석-데이비드가 이렇게 빨리 모임에 참석할 수 있었던 것도 주축 멤버인 재홍-올리버의 친구라는 보증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보통은 모임 참여 의사를 밝혀도 신원조회, 뒷조사 등 까다로운 절차를 거친다고 했다.

 

이윽고 모임의 행사가 시작됐다. 많은 어른아이들이 연단에 올라 차별받고 있는 현실을 지탄했고, 권리 보장을 주장했다. 청원서 제출, 토론회, 의학 연구 후원 등의 논제가 오고 갔다. 늘 혼자라고 느껴왔던 지석-데이비드는 정말 오래간만에 소속감과 안정감을 느꼈다. 


"고맙다"

지석-데이비드가 재홍-올리버에게 말했다.

"고맙긴. 새끼. 그러게 진작 오지"

퉁명스러운 답변이었지만 지석-데이비드는 정말로 재홍-올리버에게 고마웠다. 그는 생각했다. 이곳이 자신이 있어야 할 곳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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