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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ncere Baek Jun 11. 2022

교사가 성장하는 순간

힘들고 무기력해지는 순간이 주는 선물

6월의 어느 금요일. 하루 동안 있었던 일들이다.


학예회를 준비하는 창체 시간

- 선생님 Y이 또 왜 저러고 있어요?

책상에 엎드려 울고 있는 Y가 보인다.

- 왜 그래 Y야?

- 아무도 저랑 같이 팀 하자고 하는 친구들이 없어요.

지켜보던 몇몇 아이들이 와서 토닥토닥해준다.

- 선생님 저희 팀에 한 명 더 넣을 수 있을 것 같아요. 근데 너 피아노 쳐본 적 있어?

- 아니 한 번도 없는데.

- (나를 쳐다보는 난감한 눈빛) 어…


음악시간. 부분 2부 합창을 배우는 시간

- 선생님 Y목소리가 너무 커서 불편해요.

- 얘들아, 합창은 소리가 어우러져야 해. 내 목소리만 너무 튀지 않게.

- 어떻게 하는 게 어우러지는 건데요?

- 다른 친구들 소리를 들으려고 해 봐. 높은 소리와 큰 소리는 달라. 아까 네가 낸 소리는 큰 소리야.

- 이 정도면 작게 낸 건데. 작은 게 어느 정돈 데요?

- (그러게 말이다… 그게 어느 정도라고 설명해야 할까) 음.. 친구들 목소리 크기를 한번 잘 들어볼래?

그래도 크게 변한 건 없었다. Y가 소리를 냈다 하면 우렁차고 음이탈 한 목소리가 나머지 28명의 조화로운 목소리 위로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쉬는 시간

- 나랑 포켓볼 할 사람!!~~~

교실 뒤편에서 음악시간의 그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다시 들려온다. Y가 혼자 포켓볼을 펼쳐놓고 앉아 소리치고 있었다.

- 나랑 포켓볼  사람~~ 나랑 포켓볼  사람~~!

- Y야 조금만 조용히 해. 지금 그거 하고 싶어 하는 친구들 없어.

-   말고~ 나랑 포켓볼  사람!!


과학시간

- 아니 Y 쟤 왜 이렇게 화가 났어? 왜 자꾸 짜증이야

- 뭐 (씩씩)

- 야 그만 좀 해.

- Y야, 너 왜 그래? 무슨 일 있었어?

- 쉬는 시간에 아무도 저랑 포켓볼 안 해줘서요!!

- 아 그래서 이렇게 화가 나 있는 거야? 그런데 네가 계속 짜증을 내니까 모둠 친구들이 불편해하는 거 같아.


쉬는 시간

얼마 전부터 보드게임을 하고 싶은 사람은 칠판에 이름을 적고 순서대로 하기로 약속했다. 갑자기 Y가 엉엉 울며 내게 다가왔다.

- 선생님, 포켓볼 아직 안 했는데 제 이름 누가 지워놨어요 엉엉

- 그래서 울고 있는 거야? 혹시 Y 이름 지운 사람 있니?

- 아니 선생님 그게 아니라요 아까 Y가 쉬는 시간에 혼자 가지고 놀긴 했었어요.  

- 아무도 같이 안 해줘서 못했거든!! 엉엉

-…


순간 아무  없이 허공을 바라봤다. 분명 5학년 교실인데. 5학년을 4년째 하는 나로서도 올해처럼 이런 광경은  처음이다. 매번  아이를 위해 내가 어떻게 해줘야 하는지  고민이 된다. Y 내게 이렇게 말하는 듯했다. ‘ 너무 외로워요. 나를 이해해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요.’ 하지만 내가 무엇을 해줄  있는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 보이지 않아 무기력해지곤 한다.



오늘 같은 날은 나만의 시간이  필요하다.

퇴근  오랜만에 여유 있는 날이라 바로 서점에 들렀다. 이곳에서만 나는 특유의 향기가 좋다.


주말에 오랜만에 고등학교 친구들을 만난다. 우리 중 가장 먼저 아기 엄마가 된 친구를 위해 책을 선물하고싶어 육아/자녀교육 서적을 둘러보다, <아이를 사랑하는 일>이라는 제목의 책에 눈이 갔다. 쓱 훑어보며 펼친 페이지에서 위로를 받았다.

자신의 기분을 알아준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아이는 안심하고 진정합니다. 물론 그 감정에 머무르고 모든 것을 들어줄 수는 없지만 누군가 공감해주고받아주었다는 경험은 마음의 등불처럼 따스함을 남깁니다.

Y를 위해 내가 해줄 수 있는 게 없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이의 감정에 대해 공감해주는 작은 한 순간이 아이의 마음 깊숙이 사랑으로 자리 잡고 이 아이의 힘이 된다. 왜 오늘은 이 아이가 엉엉 울며 내게 다가올 때 “친구들과 함께 포켓볼 하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해서 많이 속상했구나.”라고 말하지 못했을까? 그만큼 내 마음에 여유가 없었던 걸까? 아쉬워하다가 또 한 구절의 위로를 발견한다.

괜찮아요. 아이들은 잘 자라납니다. 조바심과 불안함보다는 그 아이의 가능성을 믿고 조금 여유를 갖고 지켜봐 주세요.

어른과 아이 중 하나는 어른이어야 한다고. 어른이길 택하는 방법은 항상 간단하다. 상대의 말과 행동에 어떤 마음이 깔려있는 건지 한 번 더 생각해보는 것. 이를 바라볼 수 있는 여유를 가질 것. 아이들의 모습 앞에서 나도 함께 짜증 나고 나도 함께 화나기보다 한 발짝 떨어져서 그 마음을 들여야 볼 수 있는 여유를 가질 수 있길. 그 마음을 알아채고 공감해줄 수 있길. 작은 바람을 새겨본다.


이렇게 고민하고, 의문을 갖는 시간이 나를 성장하고 배우게 하기에 참 고맙다. 매년 교실에서 나를 성장하게 하는 건 이런 순간들, 이런 아이들이다. 내가 이해할 수 없고 감당되지 않는다고 느껴지는 순간들. 그 앞에서 조금은 편하게 지금처럼 배움을 채우고 다시 한번 다짐하며 내가 줄 수 있는 사랑을 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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