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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ncere Baek Oct 01. 2022

가능한 한 많이 믿어줄게

K는 나에게 매번 “선생님 저는요~ 문제아예요!”라고 말하던 학생이다. 어디서 그런 말을 그렇게 들었는지 내가 묻지도 않았는데 해맑게 웃으며 내게 그렇게 말하곤 했다.


어느 날, 아이들이 체육 전담시간이 끝나고 교실로 돌아왔는데, 여러 명이 말할 게 있는 듯 웅성거리며 내게 몰려왔다. 진정시키고 반 전체를 제자리에 다 앉힌 다음 한 명에게 자초지종을 들어봤더니 K가 어떤 친구를 밀어서 넘어뜨린 상황이었다.

친구들이 말하는 이야기를 듣던 K가 아니라고 소리치며 주절주절 자기 이야기를 시작했다. 아까 친구들이 말한 것과는 다른 이야기를 뜨문뜨문 덧붙이는 게 느껴졌다.

그때 아이들이

“야 너 그거 아니잖아~!”

하며 K를 윽박질렀다. 그러자 K는 오히려 더 큰 소리를 내며 자기 잘못을 감추고 우기기 시작했다.


나는 그런 K를 한참 쳐다보다가 입을 열었다.

“얘들아, 있었던 일을 사실대로 말하고 자기 잘못을 인정하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데. 그거 엄청 용기 필요한 일이야. 근데 선생님은 K는 용기를 내서 사실대로 말해줄 거라고 믿어.”


그리고 한참 정적이 흘렀다. K는 한참을 고개를 푹 숙이고 있다가 입을 뗐다.

“제가 그런 거 맞아요..”


“K야 사실대로 말해줘서 고마워.”



K는 그 사건 후로 자주 내 자리 주변을 맴돌았다. 어느 날은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을 교탁 위에 올려져 있는 걸 본 K이가 하는 말. 책 제목이 정확히 기억나질 않는데 대화법에 관한 책이었다.

“우리 반 선생님이 왜 천사인가 했는데 그래서였구만~”

그 말에 난 빵 터지며 큰 소리로 웃었다.


그리고 K가 거짓말을 하려고 들던 그 짧은 순간에, 내가 K를 믿어주기로 선택해서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교사는 순간순간 선택의 기로에 놓인다. 내가 당장에 좀 더 편한 선택, 조금 더 수고로운 선택이 있다. 하지만 속아주고, 믿어주고, 지켜봐 주는 것. 이것이내가 해야 할 역할이지 않나 생각이 들던 날이다.

그리고 믿어주고 믿어줬더니, 아이들은 자신을 믿어주는 어른을 배신하지 않았다.


언젠가 ‘좋은 선생님의 기준은 없지만 노력하는 선생님과 노력하지 않은 선생님이 있을 뿐’이라는 김차명 선생님의 글을 읽었다.

너무도 공감한다. 교실은 작은 순간순간들을 통해 교사와 아이들이 함께 배우는 곳이다.


잘못을 저지른 사람은 가장 너그러운 용서를 받았을 때 가장 깊이 깨닫고 변한다고 한다.

아이들은 사실 내가 혼내지 않아도 이미 자신의 잘못을 알고 있었다. 소리 지르며, 윽박지르며 또는 심문하듯이 하지 않아도 잘못을 진심으로 인정할 줄 알게 된다면 충분히, 아니 넘치도록 배움의 순간이다:)


그리고 그 순간, 두려워하고 있을 아이의 마음에다 선생님은 널 믿고 있다고, 잘못한 행동이 있더라도 똑같이 널 사랑한단 걸 알게 해주고 싶다.


서툴더라도 이 마음을 기억하며

가능한 한

많이

믿어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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