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들고 무기력해지는 순간이 주는 선물
6월의 어느 금요일. 하루 동안 있었던 일들이다.
학예회를 준비하는 창체 시간
- 선생님 Y이 또 왜 저러고 있어요?
책상에 엎드려 울고 있는 Y가 보인다.
- 왜 그래 Y야?
- 아무도 저랑 같이 팀 하자고 하는 친구들이 없어요.
지켜보던 몇몇 아이들이 와서 토닥토닥해준다.
- 선생님 저희 팀에 한 명 더 넣을 수 있을 것 같아요. 근데 너 피아노 쳐본 적 있어?
- 아니 한 번도 없는데.
- (나를 쳐다보는 난감한 눈빛) 어…
음악시간. 부분 2부 합창을 배우는 시간
- 선생님 Y목소리가 너무 커서 불편해요.
- 얘들아, 합창은 소리가 어우러져야 해. 내 목소리만 너무 튀지 않게.
- 어떻게 하는 게 어우러지는 건데요?
- 다른 친구들 소리를 들으려고 해 봐. 높은 소리와 큰 소리는 달라. 아까 네가 낸 소리는 큰 소리야.
- 이 정도면 작게 낸 건데. 작은 게 어느 정돈 데요?
- (그러게 말이다… 그게 어느 정도라고 설명해야 할까) 음.. 친구들 목소리 크기를 한번 잘 들어볼래?
그래도 크게 변한 건 없었다. Y가 소리를 냈다 하면 우렁차고 음이탈 한 목소리가 나머지 28명의 조화로운 목소리 위로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쉬는 시간
- 나랑 포켓볼 할 사람!!~~~
교실 뒤편에서 음악시간의 그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다시 들려온다. Y가 혼자 포켓볼을 펼쳐놓고 앉아 소리치고 있었다.
- 나랑 포켓볼 할 사람~~ 나랑 포켓볼 할 사람~~!
- Y야 조금만 조용히 해. 지금 그거 하고 싶어 하는 친구들 없어.
- 응 너 말고~ 나랑 포켓볼 할 사람!!
과학시간
- 아니 Y 쟤 왜 이렇게 화가 났어? 왜 자꾸 짜증이야
- 뭐 (씩씩)
- 야 그만 좀 해.
- Y야, 너 왜 그래? 무슨 일 있었어?
- 쉬는 시간에 아무도 저랑 포켓볼 안 해줘서요!!
- 아 그래서 이렇게 화가 나 있는 거야? 그런데 네가 계속 짜증을 내니까 모둠 친구들이 불편해하는 거 같아.
쉬는 시간
얼마 전부터 보드게임을 하고 싶은 사람은 칠판에 이름을 적고 순서대로 하기로 약속했다. 갑자기 Y가 엉엉 울며 내게 다가왔다.
- 선생님, 포켓볼 아직 안 했는데 제 이름 누가 지워놨어요 엉엉
- 그래서 울고 있는 거야? 혹시 Y 이름 지운 사람 있니?
- 아니 선생님 그게 아니라요 아까 Y가 쉬는 시간에 혼자 가지고 놀긴 했었어요.
- 아무도 같이 안 해줘서 못했거든!! 엉엉
-…
순간 아무 말 없이 허공을 바라봤다. 분명 5학년 교실인데. 5학년을 4년째 하는 나로서도 올해처럼 이런 광경은 또 처음이다. 매번 이 아이를 위해 내가 어떻게 해줘야 하는지 참 고민이 된다. Y가 내게 이렇게 말하는 듯했다. ‘전 너무 외로워요. 나를 이해해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요.’ 하지만 내가 무엇을 해줄 수 있는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 보이지 않아 무기력해지곤 한다.
오늘 같은 날은 나만의 시간이 꼭 필요하다.
퇴근 후 오랜만에 여유 있는 날이라 바로 서점에 들렀다. 이곳에서만 나는 특유의 향기가 좋다.
주말에 오랜만에 고등학교 친구들을 만난다. 우리 중 가장 먼저 아기 엄마가 된 친구를 위해 책을 선물하고싶어 육아/자녀교육 서적을 둘러보다, <아이를 사랑하는 일>이라는 제목의 책에 눈이 갔다. 쓱 훑어보며 펼친 페이지에서 위로를 받았다.
자신의 기분을 알아준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아이는 안심하고 진정합니다. 물론 그 감정에 머무르고 모든 것을 들어줄 수는 없지만 누군가 공감해주고받아주었다는 경험은 마음의 등불처럼 따스함을 남깁니다.
Y를 위해 내가 해줄 수 있는 게 없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이의 감정에 대해 공감해주는 작은 한 순간이 아이의 마음 깊숙이 사랑으로 자리 잡고 이 아이의 힘이 된다. 왜 오늘은 이 아이가 엉엉 울며 내게 다가올 때 “친구들과 함께 포켓볼 하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해서 많이 속상했구나.”라고 말하지 못했을까? 그만큼 내 마음에 여유가 없었던 걸까? 아쉬워하다가 또 한 구절의 위로를 발견한다.
괜찮아요. 아이들은 잘 자라납니다. 조바심과 불안함보다는 그 아이의 가능성을 믿고 조금 여유를 갖고 지켜봐 주세요.
어른과 아이 중 하나는 어른이어야 한다고. 어른이길 택하는 방법은 항상 간단하다. 상대의 말과 행동에 어떤 마음이 깔려있는 건지 한 번 더 생각해보는 것. 이를 바라볼 수 있는 여유를 가질 것. 아이들의 모습 앞에서 나도 함께 짜증 나고 나도 함께 화나기보다 한 발짝 떨어져서 그 마음을 들여야 볼 수 있는 여유를 가질 수 있길. 그 마음을 알아채고 공감해줄 수 있길. 작은 바람을 새겨본다.
이렇게 고민하고, 의문을 갖는 시간이 나를 성장하고 배우게 하기에 참 고맙다. 매년 교실에서 나를 성장하게 하는 건 이런 순간들, 이런 아이들이다. 내가 이해할 수 없고 감당되지 않는다고 느껴지는 순간들. 그 앞에서 조금은 편하게 지금처럼 배움을 채우고 다시 한번 다짐하며 내가 줄 수 있는 사랑을 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