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 무사히 맞이하는 아침의 의미
아직은 우리 집 두 딸이 꼭 하는 인사가 있다.
자기 전, '안녕히 주무세요'와
일어나서, '안녕히 주무셨어요'이다.
이 두 인사는 '잠'에 대한 인사이다. 한동안 숙면을 취하지 못하고, 새벽에 깨어서, 잠을 설친 경험이 있는 나에게는 '숙면'에 대한 인사는 매우 소중한 것에 대한 응원이다.
아침 인사말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우선 생각나는 것은 '좋은 아침'.
이건 회사에 다닐 때, 출근해서 직장 동료들에게 주로 했던 인사이다. 영어 인사 'Good morning'도 비슷한 의미일 것 같다. 하루의 시작을 '기분 좋게'하라는 의미인 듯하다.
어르신들에게 하는 인사말 중,
'밤새 무고하셨어요?' 혹은 '밤새 안녕하셨어요?'라는 인사말이 있다.
요즘은 거의 사용하지 않는 인사말인 것 같다.
이 말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는 것 같다. 하나는 어르신의 건강에 대한 물음이다.
할머니나 할아버지와 같이 살아본 경험이 있다면, 몸으로 느꼈겠지만, 나이가 많은 어르신들에게는 밤새 몸에 무슨 변화가 없었다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흔히 말하는 '노화'라는 생리현상은 피하고 싶지만 피할 수 없고, 정말 하루 자고 일어나면, 내 몸이 어제와 같지 않음을 느끼는 경험도 하게 되는 슬프지만 자연스러운 경험이다.
또 한 가지는, 우리나라의 혼란기 역사와 관련이 있다. 역모가 발생하고, 다시 반정이 발생하고, 경우에 따라서 무고한 사람들이 희생되고. 근대사 초기에도 각종 정치적 사건들의 소용돌이 속에서, 아침에 눈 뜨면, 밤새 무슨 일이 벌어져 있는 상황들. 그 무슨 일이 경우에 따라서는 왕이 어딘가로 피신한 경우도 있고, 왕후가 시해당한 경우도 있고, 정권을 가진 자가 바뀐 경우도 있었다. 이러한 경험들은 '밤새 아무 일 없음'을 확인하는 인사말을 만들었던 것 같다. 즉, 밤새 아무런 사건사고 없이, 무사히 아침을 맞았다면, 그 자체로 행복한 일이라는 의미의 인사. 그것이 '밤새 무고하셨어요?' 혹은 '밤새 안녕하셨어요?'라는 인사말에 담겨 있다.
불과 이틀 전. 우리나라의 모든 국민이 비슷한 상황을 겪었다.
밤 10시가 넘어, 갑작스러운 대통령담화와 비상계엄선포, 서울시내에 장갑차, 군용 헬기의 출현, 성난 시민들의 국회 앞 집결, 그리고 국회의원들이 국회 담장을 넘어 들어가 실시한 계엄무효투표, 국회의원들의 계엄 무효 선언과, 새벽 대통령의 계엄해제담화.
1990년대에 대학생시절을 보낸 나에게, 이러한 일들이 단 6~7시간 만에 이루어졌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면서도, 그래도 다행스럽게 끝난 6~7시간의 과정으로 생각된다. 물론 아직도 환율이 안정되지 않았고, 주가도 회복되기보다는 좀 더 떨어질 가능성이 높아 보이기는 한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시민들이 보여준 태도와 6~7시간 만에 해결(?)한 시민의 능력에 세계가 놀랐고, 오히려 한국은 정치권이 불안정해도, 시민의 힘으로 다시 안정을 찾을 수 있는 힘을 가진 나라라는 것을 세계에 보여주었으니, 국제사회에서 한국에 대한 평가는 오히려 올라갈 수도 있다는 이야기도 간혹 들린다는 사실인 것 같다.
난 적어도, 내 아이들이 아침에 나에게 하는 인사가 '밤새 안녕하셨어요?'나 '밤새 무고하셨어요?'가 되기를 원하지는 않는다. 물론 나도 노화를 피할 수는 없으니, 어느 순간부터, 아침에 눈을 뜨면, 어제와 다른 내 몸의 상태를 느끼게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사실만으로 내 아이들이 그동안 사용하지 않은 인사말인 '밤새 안녕하셨어요?'를 사용할 것 같지는 않다. 만약, '밤새 안녕하셨어요?'가 아침인사말로 사용되게 된다면, 그건 아마도 예상하지 못한 사회 혼란이 밤중에 발생하는 일이 반복되고, 그래서, 지난밤 무언가 예측하지 못한 사건사고가 없이 아침을 맞이하는 것이, 모두에게 '다행'스럽게 여겨지는 사회가 되었다는 의미일 것 같다. 그래서 난, 이 '밤새 안녕하셨어요?' 혹은 '밤새 무고하셨어요?'라는 인사말은 영원히 사라졌으면 좋겠다. 그런데, 이틀 전의 상황은 나에게 '밤새 안녕하셨어요?'라는 인사말을 떠오르게 했다.
다행인 것은 6~7시간 만에 상황을 해결할 능력이 있는 우리들이기에, 우리는 이런 일이 다시 발생하지 않도록 할 수 있는 우리들이다. 이제 난,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으며, 무엇을 해야 할까? 이 역시 우리의 결정이다. 지난밤 뉴스와 유튜브를 보며, 상황을 파악하고, 누군가는 직접 달려가고, 누군가는 직접 달려가지는 못하지만, 다른 방법으로 서로에게 힘을 실어주었듯이. 나에게는, 우리에게는, 그렇게 큰 일은 아닐지라도, 우리 사회의 앞으로의 모습을, 아이들에게 물려줄 사회의 모습을 결정하는 데에 분명한 기여를 할 수 있는 일들이, 지금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