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 아이들만 못한 어른들 세상
지금은 중학생이 된 조카가 있다.
이 녀석이 유치원시절이나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에는 고집 센 다혈질의 아이였었다.
무언가 본인의 맘에 안 들면, 그 자리에 꼼짝하지 않고, 버티고 서서 분풀이(?)를 했고, 달래주려는 부모에게 더 생떼를 피워댔었다.
그런데, 그 부모가 어느 순간, 이 아이가 화가 나서, 그 자리에서 버티며, 꼼짝하지 않고 있을 때, 말도 걸지 않고, 야단도 치지 않고, 가만히 두면, 이 아이 역시, 씩씩대기는 하지만, 그냥 그 자리에 가만히 서있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물론 아이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버티고 있는 것처럼 보였으나,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스스로 상황을 이해하고 생각하려고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주위에 피해를 주지도 않았다. 이것을 깨달은 다음부터는, 아이가 갑자기 화를 내며, 그 자리에 꼼짝하지 않고 서있으면, 그냥 아무것도 하지 않고 기다려주기 시작했다.
아이가 가만히 서서, 혼자 화를 내고, 다시 분을 삭이고, 그리고 본인이 화난 상황에 대하여 돌이켜 생각해 보는 데 걸리는 시간은 처음에는 한 시간이 넘게 걸리기도 했다. 그러나, 부모가 기다려주면, 그 아이는 주위에 피해를 주지 않고, 가만히 그 자리에 서서, 스스로 답을 찾아나갔다. 그리고 답을 찾으면, 아이가 먼저 부모에게 와서 사과하기도 하고, 아니면, 부모에게 자기가 화난 이유를 설명하고, 부모의 사과를 요구하기도 했다. 어떤 때는 화난 자신을 달래주지 않은 부모에게 달래주지 않아, 서운하고 더 서러웠다는 이야기를 할 수 있을 정도로, 아이는 성숙해져 갔다. 아이가 본인의 분을 스스로 삭이고, 상황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시간은 서서히, 그러나 틀림없이 줄어들어갔고, 아이가 분을 내며 버티는 일이 일어나는 빈도 또한 착실히 줄어들어갔다.
지금은 의젓한 중학생이 되어서, 부모도, 남도, 동생도, 가족도 배려할 줄 아는 청소년으로 잘 자라고 있다.
어른이 되어, 가정생활과 직장생활을 하다 보면, 직장생활에서도 그냥 '버티기'를 하는 사람을 자주 볼 수 있다. 물론 나 역시도 돌이켜보면, 그냥 '버티기'를 하는 경우가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아이의 버티기는 길어야 한두 시간이지만, 어른들의 버티기는 몇 날며칠이 가기도 한다. 아니, 때때로는 몇 달 몇 년에 걸쳐 버티기도 하는 것 같다. 내 경험상, 이런 버티기를 하는 사람이 힘을 가진 사람, 즉 직장의 상사이거나 집안의 어른이면, 상황이 훨씬 더 복잡해진다. 아이가 버티기를 한다고, 집안이 멈추지는 않는다. 그러나, 힘 있는 어른이 버티기를 하면, 그 조직이 멈추거나, 경우에 따라서는 후퇴해 버리게 된다. 그리고, 그 버티기를 어른은 스스로 푸는 방법을 잘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현학적인 말로, '출구전략'을 수립해야 한다고 이야기하지만, 출구전략이라는 것이 쉽게 말하면, '버티기를 푸는 방법'이다. 아이와 달리, 어른은 본인이 잘못한 일에 대하여서 인정하지 않고, 버티기를 시작하였어도, '출구전략'과 같은 거창한 전략이 없으면 버티기를 풀기 어렵다. 최악은 이 출구전략이 가장 힘없는 사람, 혹은 그동안 가장 마음에 안 들었던 이를 희생양으로 내세우는 것인 경우이다. 슬프게도 난 살아오면서 이런 출구전략을 펴는 힘 있는 이를 종종 보아왔다.
아이의 버티기와 부모의 기다려주기에서, 힘이 있는 쪽은 부모 쪽이다. 아이 이기는 부모가 없다는 이야기를 하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누가 뭐라고 해도, 힘이 있는 쪽은 부모이다. 그래서 부모는 아이를 기다려줄 수 있다. 혹시나 잘못되더라도, 부모에게는 그 잘못을 바로 잡을 힘이 있으니까. 부모의 기다림은 사랑이 바탕에 깔려있다.
어른의 세상에서는 많은 경우, 버티기를 하는 쪽이 힘이 있는 쪽이고, 기다리기를 하는 쪽이 힘이 없는 쪽인 경우가 많다. 힘이 없는 쪽이 기다리는 이유는 달리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만약 문제가 생기면, 많은 경우는 힘이 없는 쪽이 희생을 치른다. 기다리기를 한쪽은 문제를 바로 잡을 힘이 없고, 힘이 없기에, 희생양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이러한 기다림은 사랑이 아니라, 무기력감과 좌절이 된다.
어른은 분명, 아이의 과정과 청소년의 과정을 거쳐서 어른이 되었다. 그리고 누구나 어린 시절, 버티기를 한 경험과 자신의 버티기를 기다려준 부모에 대한 기억이 있을 것이다. 길어야 2시간을 넘지 않는 시간 동안의 과정이지만, 분명, 이 과정을 통해 어른으로 성숙해 왔다.
선입관일 수도 있지만, 어른의 세상은 아이의 세상보다 나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다면, 아이의 과정을 거쳐 어른이 된 의미가 없을 것 같다. 그렇다면, 어른 세상의 버티기와 기다려주기가 지금과 같아서는 안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