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동영 Jul 05. 2020

Apologize

송승언 <밝은 성>

    사과와 크레용, 장미나 의자 따위

    저마다 대수롭지 않은 사물들을 손에 쥐고

    그것을 신앙이라 밝히길 두려워 않았던


    친구들이 울었어 [...] 내가 죽은 뒤에도 내 친구들



    송승언, <밝은 성>, <<철과 오크>>, 문학과지성사, 2015.



    사과를 상징으로서 사랑한다. 에덴동산의 사과를 먹으라고 꼬드긴 뱀은 다리만 잃었고, 사과를 먹은 인류는 생기를 잃었다. 그 소실을 사랑한다. 에덴동산에서만 열리는 사과를 여전히 사랑한다.


    십자가를 믿었지만 손에 쥐지 않았지, 십자가는 온 사바(娑婆)에 널려 있어서 탐이 나지 않았어. 그렇지만 내 죄는 사했기를 바라. 나는 예수를 믿는 게 아니라 그가 흘린 피를 믿는 것이지.


    누군가 몸에 흠집이라도 나 핏기로 벌게지면 상처를 쳐다보지도 못한다. 하지만 피, 혈, 이라는 말을 쓰기를 좋아했다. 피는 잔인하고 유쾌했다. 문자로 피 칠갑을 하는 것 또한 섬뜩하지만, 그건 내가 무한히 줄 수 있는 血이기에 즐거웠다. 이것은 내가 베푸는 은혜. 그리고 피는 나의 몸에도 저들의 몸에도 널렸지만 손에 쥐기가 쉽지 않다. 십자가처럼 널렸고 사과처럼 귀한 것, 그게 피의 매력 아닐까?


    친구들이 울었어. 슬프게 운 것은 아니야. 짐승처럼 울었지, 너는 역시나 끔찍하구나! 저들은 나를 배격하면서 결속했고 그렇게 나는 그들의 신앙이었다. 내가 죽으면 너희는 뿔뿔이 흩어질까? 십자가를 사 모았어.

    십자가 아래로 걸어 들어가기도 했어. 예배당에서 기도를 올렸지. 저들을 벌해주소서, 내가 죽겠나이다! 그러면 정말로 나는 죽어버리지 않을까. 그것은 타살은 아닐 거야. 그러니 피는 한 방울도 흘리지 않을 거야.


    나는 역류하는 피를 꿀꺽꿀꺽 삼킬 것이다. 친구들이 흩어진다면, 각자 사과를 들고 흩어졌으면 좋겠다. 상징이 아니라 은유로서 사과를 사랑하기를. 나를 기억하면서 공통감정을 서로 공유하지 못하기를. 그래, 십자가는 마지막까지 선택하지 못하고 말이다. 예수는 상징이니까. (2020.06.10.)




이전 04화 무더기 틈으로 솟아오르는 무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