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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영 Jun 21. 2020

안부를 묻지 않는 안위

김애란 <달려라, 아비>

    나는 알고 있었다. 내게 '괜찮냐'고 물어보는 사람들이 정말로 물어오는 것은 자신의 안부라는 것을.



    김애란, <달려라, 아비>, <<달려라 아비>> (리마스터판), 창비, 2019.



    내가 누군가에게 안부를 건네는 때는 언제일까? 그 누군가가 나와 어떤 관계인가에 따라 다를 테다. 내가 싫어하는 사람, 지인 혹은 그냥 친할 뿐인 사람, 그리고 내가 사랑하고 아끼는 사람.


    내가 싫어하는 사람. 나를 곤란에 빠뜨리는 사람, 인성부터가 마음에 안 드는 사람, 혹은 친했지만 크게 싸우고 서로 뒤도 안 돌아보는 사람. 그가 길을 걷다 돌부리에 걸려 넘어진다. 철퍼덕!

    그 장면을 보고는 순간 놀라긴 하겠지. “괜찮니?” 그런데 왠지 속으로는 흐뭇하다. 쌤통! 그리고 집으로 돌아가는 내내 떠올린다. 철퍼덕! 철퍼덕! 얼마나 그 사람이 미워 죽겠으면. 평소 얼마나 미운 그 사람을 떠올리며 이를 갈았으면, 혹은 화를 삭였으면.

    그냥 친한 사람에게는 어떤 마음으로 안부를 물을까. 안 친한 건 아니지만 없으면 그만인 사람. 어떨 때는 좀 성가신 사람. 그 사람이 똑같이 넘어진다. 걱정은 되지만, 내가 나서서 도와주어야 하나? 만약 도와주면 좀 오버하는 것 같단 생각. 망설이는 사이, 그 사람은 무릎을 툭툭 털고 일어난다. 결국에 내 마음만 불편한 채로 끝난다.


    하지만 내가 사랑하고 아끼는 사람이라면 다를 테다. 연인은 물론이요 서로 끈끈한 우정으로 이어진 사람, 우정이라고 생각했는데 이게 사랑 아닐까 헷갈리게 하는, 왠지 모르게 좋은 사람. 그냥 좋은 사람.


    괜찮아? 괜찮으세요? 내가 못 도와줄까봐 안달 날 지경이다. 돕기 위한 수고도 아깝지 않아, 그게 내 행복이야.


    근데 있지, 너 말야, 나를 사랑해서 안달인 너 말이야, 그것도 결국 네 안위를 위한 거야. 네가 행복해지기 위한 거잖아.


    나는 받는 법을 잊었다. 역겨운 사람이 안부를 물어오면 경멸스럽다. 형식적으로 “괜찮아, 고마워.”라고 말은 한다. 그 사람과 내가 좋은 관계로 맺어질 수도 있지 않을까, 이딴 생각은 들지 않는다. 마음이 더 이상 흔들리지 않도록 다짐하기로 했다. 아니, 다짐도 필요 없다. 마음 스스로 꼼짝 않는다.


    어정쩡히 친한 사람아, 고마운데, 네가 신경 쓸 필요까진 없어. 넘어진 건 난데 왠지 그의 안부를 걱정하고 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 내가 사랑해서, 그의 안부를 걱정하다 못해 나는 그의 마음을 내 마음인 양 확신한다. 그가 날 사랑한다. 나도 그를 사랑한다. 그러니까 그의 마음은 나의 마음. 너를 돕고 싶은 마음. 나는 내가 넘어진 것도 잊고 그에게 모든 걸 퍼 주기 시작한다.


    그렇게 서로의 사랑은 엇갈린다. 사랑에 실패한다. 사랑은 원망으로 변한다. 끝내 원망은 포기로 마무리된다. 나는 굳어간다. 모두를 사랑하는 것보다 모두를 미워하는 게 차라리 속 편하므로. 그들의 안위를 위해, 내 안위를 위해, 곧 모두의 안위를 위해. (2020.0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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