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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영 Jul 11. 2020

무더기 틈으로 솟아오르는 무덤

정호승 <점안>

    단 한번이라도 당신을 뵙고

    실컷 울고 나서

    영원히 지옥으로 가겠습니다


    정호승, <점안>, <<당신을 찾아서>>, 창비, 2020.



    내가 배반한 너를 다시 보는 것은 너에게 또 한 번 죄를 짓는 거겠지. 너를 숭배하지 않겠다는 신념은 회개이고 너를 붙들고자 하는 탐욕은 죄악인데, 죄 앞에서 나는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우연으로 함께하게 된 우리들은, 나와 그들로 갈라섰다. 그것은 우연한 인연을 필연으로 계승하는 그들만의 의식이다. 그들 간 결속도 필연이며 하나가 추방되는 것도 필연이다.

    이는 단 한 번의 사건이었지만 매일 밤 망상 속에서 나는 반복적으로 퇴출되었다. 고통은 아무는 게 아니라 곪는 것이었다.


    어느덧 약을 복용한지 2년하고 반이 되어가는구나. 나는 정말 구원받은 걸까? 생명을 부지하며 평안을 배웠지만 배움과 행동은 다른 것. 그들 무리에서 고개를 내민 네가 있었지. 너는 나를 돌봤지만 여전히 넌 그들에 속하였기에 멀리 있었고, 점차 나를 지쳐했고, 끝내 나를 떠났지. 나도 그런 날이 올 줄 알고 있었지.

    너는 떠나는 순간까지도 말했지, 나를 기다리겠다고. 그건 나를 믿어준다는 말인 동시에 나를 내치겠다는 말이란 거 아니? 내가 네게 다가가는 건, 나 자신이 무고하다고 믿어온 내 삶의 버팀목이 삭아 무너지는 거야.


    네가 내게 와주길 바라기도 했다. 하지만 그렇게 된다면 네가 내게 준 헌신은 당연한 일이 되는 것이고 그건 정말로 악마의 습성이지.

    원죄를 인정하기 싫었고 구원을 의심하기 시작한 건 오래전 일. 분명한 건, 네 마지막 기대를 배반한다는 것. 배반하게 되어 있다는 것.


    나는 천국에도 지옥에도 들어가지 못할지도 모르겠다. 나는 죄 그 자체이며 그렇게 배회한다.


    흙무더기 사이로 봉분이 솟는다. 네가 마련한, 내 평안히 잠들 곳. 하지만 접근조차 못한다. 네가 무덤 앞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으니, 비가(悲歌)를 부르고(呼) 부르는(唱) 문지기처럼. (2020.0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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