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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 국민 반찬 라펫똑

라펫똑Laphet Thoke, 티리프샐러드 Tea Leaf Salad

by 진양 Feb 17. 2025









지난 1월 한국에서 친구가 놀러와 일주일간 우리 집에 머물렀었다. 자그마한 체구와 단아한 외모, 꽤나 입맛이 까다로울 것 같은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그녀지만 조금 지저분하거나 불편한 잠자리도, 궂은 날씨도, 독특한 향신료 냄새를 풀풀 풍기는 음식도 늘 거침없이 도전해보는 과감한 타입의 여행자다.




낮에 양곤의 사원과 카페, 식당을 방문하고 돌아온 어느 저녁 피곤했던 우리는 식사를 배달시켜 먹기로 했다. 미얀마 음식을 먹고 싶다는 친구의 요청대로 나는 푸드판다에서 샨 키친(Shan Kitchen)이라는 집 근처의 미얀마 식당을 찾았다.



수 많은 메뉴 중 어떤 음식이 좋을까 고민했다.



새로운 음식을 먹어보는 걸 좋아하는 남편 덕분에 골수 한식파로서 쇄국적이던 나의 입맛도 조금씩 변화하는 중이지만 여전히 거부감을 일으키는 비쥬얼의 메뉴들이 많았다.



뭐 일단 시키면 누구든 먹겠지, 하는 마음에 샨 누들을 비롯한 누들 몇 종류, 볶음밥, 그리고 샐러드라고 적혀 있는 파트 중에서 어느 현지 식당을 가도 메뉴에서 자주 볼 수 있던 티 리프 샐러드를 골라 주문했다.



(미안먀어로는 라펫. 라펫이 차 잎, 똑은 샐러드라는 뜻이라고 우리집 내니인 N이 말해주었다.)



누들과 볶음밥이야 자주 접해보던 것이라 낯설것까진 없었지만, 라펫똑은 내가 상상한 샐러드의 모습과 너무 달랐다.



이걸 샐러드라고 부를 수 있을까…, 싶은 비쥬얼이었다.



(N의 말에 의하면 미얀마에서는 생채소가 들어가는 음식을 샐러드라고 부른다고 한다)



발효한 차잎, 견과류, 튀긴 콩류, 말린 멸치 혹은  새우(라고 짐작됨), 오이, 토마토, 양배추과의 채소, 생마늘, 고추까지 통째로 들어가 있다.



차 잎의 냄새에 겁이 조금 나긴 했지만 용기를 내어 먹어보았다.



음식이 발효되었을 때 나는 특유의 쿰쿰한 냄새와 고소한 견과류, 아삭한 채소가 입안에서 짭조롬하게 뒤섞였다.



남편과 친구는 맛만 보고서는 누들에 집중하고, 셋 중에서 이국적인 음식에 제일 배타적인 내가 오히려 가장 미얀마스러운 랏페에 계속 손이 다.



낯설면서도 은근하게 익숙한 맛은, 우리나라도 발효된 음식과 생마늘을 먹는 민족이기 때문 아닐까 싶었다.



하지만 너무 짰다. 결국 라펫똑은 절반 이상 남겼다.



다음날 N에게 물어보니 보통 밥과 함께 먹거나 맥주와 함께 술안주로 먹기도 한단다.



그 순간

와 맞아!이거 밥반찬으로 딱이다, 싶었다. 내가 전날 라펫똑을 먹을 때 그 짠맛에도 불구하고 밥과 함께 먹는 것을 생각하지 못했던건  여전히 샐러드라는 용어가 주는 편견 때문이었을 것이다.






친구가 한국에 돌아가고 얼마 뒤 미얀마 공휴일인 어느 날이었다.



남편은 골프 약속이 있어 새벽부터 외출중이었다. 남편이 새벽에 나가는 날에는 내니인 N이 전날에 집에서 자고 아침 일찍부터 아이를 돌봐주며 남편의 공백을 메워주는 것이 우리의 루틴이었다. 평소에는 점심 도시락을 싸서 다니지만 그런 날에는 N의 식사를 제공해준다.  



파트타임 헬퍼인 딴딴은 다른 청소일을 하고 간단히 점심을 먹고 오지만 공휴일에는 청소하는 사무실이 문을 닫기 때문에 오전 일찍 우리집 일을 하러 온다.  



그래서 애들과 점심으로 뭘 시켜 먹을까 고민을 하다가 라펫똑이 떠올랐다.



N과 나는 각자 볶음밥과 함께 나눠먹을 라펫똑을, 딴딴은 라펫똑에 아예 밥이 함께 요리된 라펫터민 (터민은 밥을 뜻한다. 영어로는 티 리프 라이스 샐러드)을 주문했다.



왼쪽은 라펫똑, 오른쪽은 라펫터민



밥과 함께 먹은 라펫똑은 내가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내 입에 딱 맞았다. 짭쪼롬하고 고소하고 꼬롬꼬롬한 라펫똑에 뜨끈한 밥은 찰떡궁합!



심지어 이 착한 가격은 또 뭔가!



3675짯이라니. 고작 천 원 남짓한 가격이다.




이후로 나는 미얀마 음식을 파는 곳에 가게 되면 라펫똑을 시켜보았다.



우리나라의 김치가 지역마다, 그리고 식당마다, 혹은 집집마다 맛이 다른 것처럼 라펫 또한 식당마다 들어가는 재료나 맛이 조금씩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됐기 때문이다.



양곤 근교의 유기농 농장의 한 식당에서 먹은 랏페똑은 차 잎이 왕창 들어가 있었다. 발효된 맛과 향이 강렬해서 동남아 음식 입문자가 먹기에는 부담스러울 것 같았다. 하지만 먹다보면 적응이 된다.





양곤의 대표적인 부촌인 골든밸리의 마켓플레이스에 식재료를 사러 일주일에 두세 번은 방문하는데 장보기 전에 글로리아 진스에서 커피를 마시거나 샌드위치로 간단히 식사를 해결했었다. 하지만 식사 메뉴 중에 라펫터민이 있는 것을 알게 된 후부터는 라펫터민을 주로 먹는다.


입간판 메뉴. 끝에서 두번째 음식이 라펫터민, 티 리프 라이스 샐러드다.


(우리가 아는 그 프랜차이즈 카페 글로리아 진스 맞다. 미얀마는 끼니가 되는 식사를 함께 파는 카페들이 많다.)



글로리아 진스의 라펫터민은 처음 보았을 땐 다른 집의 라펫보다는 좀 부실해보였다.



하지만 다른 곳보다 발효된 차잎 맛이 좀 덜한 편이라 거부감도 적었다. 땅콩과 말린 새우, 견과류와 반숙 달걀 프라이를 (발효된 차잎과 볶은 듯한) 밥과 섞은 뒤 매운 고추나 마늘을 올려서 한 입 먹으면 여느 식당의 라펫똑이나 라펫터민 못지 않게 맛있다.


(다만 기름을 많이 써서 밥을 볶는 것인지 먹고 나서 느끼함이 좀 올라오는 편이다.)



글로리아 진스는 다른 현지 카페보다 커피나 케이크 값이 살짝 비싼 편인데도 불구하고 라펫터민의 가격은 고작 7800짯. 2500원도 하지 않는다.


내가 먹은 티리프 라이스 샐러드와 N이 먹은 마라 어묵 덮밥(?)영수증



내가 요즘 라펫똑에 빠진 것을 알게 된 N이 만달레이에 사는 이모에게 라펫을 보내달라고 했단다. 자신이 먹어 본 라펫 중 만달레이 라펫이 가장 맛있었다고 내게도 맛보게 해주고 싶다고.



요즘 만달레이 지역 정세가 불안정하기 때문에 그 라펫이 언제 양곤에 도착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생각해주는 N의 마음이 고맙다.



현지인이 제일 맛있다고 한 라펫이라니, 어떤 맛일지 기대된다.

 

 




* N에게 ‘미얀마 사람들은 모힝가와 랏페중 뭘 더 좋아해?’ 라고 물으니 단연코 모힝가라고 합니다. 랏페똑은 안 먹는 사람들도 있지만 모힝가는 에브리원 먹는 음식이라고. 그래서 국민 음식 타이틀은 모힝가에게 양보해야 할 것 같아서 라펫똑은 -제가 라펫똑을 밥과 함께 먹는 것을 좋아해서- 국민 반찬이라고  임의대로 별칭을 붙였습니다. 다음 기회가 되면 모힝가에 대해서도 소개할 예정.


* 발음은 N이 불러주는 대로 적어서 표준 외래어표기법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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