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살 아기와 함께하는 방콕 여행 삼시세끼 1
미얀마 연휴를 맞아 우리는 첫 가족 여행을 떠났다.
목적지는 우리가 살고 있는 미얀마 양곤에서 비행기로 1시간 20분 거리(라고 티켓에 적혀 있지만 실제 비행 시간은 한 시간 남짓이었다)인 방콕.
우리 여행의 첫 식사는 미얀마 항공의 기내식이었다. 한 시간 거리이기에 식사 대신 간식이 나왔다. 식빵에 치즈 한 장을 끼운 간단한 샌드위치와 자그마한 케익이었다.
아기 기내식으로는 태국 파우치 이유식이 나왔다. 6시 이전에 기상하는 아침형 15개월 아기인 럭키는 집에서 아침을 먹고 왔지만 저염유아식인 집밥을 먹다 바깥 음식 먹으니 눈빛이 반짝반짝. 치킨 맛 파우치 기내식도, 엄마의 치즈 샌드위치도 야무지게 먹어치웠다.
샌드위치 먹고 난 아기와 눈 마주치며 조금 놀아줬더니 랜딩 준비한다고 안전벨트를 매라는 방송이 흘러나왔다. 아기를 데리고 6시간씩 거리는 한국과 양곤 왕복 비행기를 몇 번 타봤더니 한 시간 정도의 거리는 정말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수월한 비행이었다.
방콕 돈 므앙 공항에 내려서 예약해둔 픽업 차량을 타고 호텔로 향했다. 체크인을 하고 3박 4일간 우리의 집이 되어줄 호텔 방에 짐을 풀었다. 오후 2시가 되도록 아침을 거르고 샌드위치를 럭키에게 양보했던 나는 점심을 먹기 위해 맛집을 찾아갈 의욕이 생기지 않을 정도로 배가 고팠다.
그래서 점심 식사, 방콕에서의 첫 끼니를 호텔 1층에 있는 식당에서 해결하기로 했다.
남편이 럭키에게 양곤에서 가져온(정확히 말하자면 한국에서 가져온) 맘마밀 파우치 유아식을 먹이는 동안 내가 메뉴에서 음식을 골라 주문했다.
나의 선택은 연어가 올라간 쏨땀(파파야 샐러드), 망고 스티키 라이스, 목살 튀김이었다.
음식이 나오길 기다리는 내 마음은 기대 반 걱정 반이었다.
사실 나는 이번이 4번째 방콕 방문인데, 첫 방문은 20년 전 부모님과 함께 했던 패키지 여행이었다. 어르신들이 많이 가던 패키지 여행답게 하루 한 끼 이상은 한식이 포함되어 있었고 현지식 식사도 한국인의 입맛에 크게 거부감이 없는 메뉴들이었다.
강경 한식파에 독특한 향신료의 냄새와 맛에 거부감을 느끼는 입맛의 내가 첫 방콕 여행에서 음식 때문에 힘들었던 기억은 없다.
두 번째 방콕 여행은 친구들과 함께였다. 북유럽 여행을 계획하고 돈을 모았고, 비행기 티켓까지 샀지만 항공사에서 비행 스케쥴을 변경하는 일이 생겼다. 직장인이었던 두 친구는 일정을 변경하는 게 부담스러웠고 우리는 북유럽 대신 방콕 럭셔리 여행으로 계획을 바꾸었다.
나는 단순히 향신료를 힘들어하는 것뿐이지만 두 친구는 모두 음식에 크게 관심이 없을 뿐만 아니라 편식이 심한 편이었다. 우리가 머물렀던 곳은 방콕에서 꽤 비싼 호텔이었는데 호텔 조식에서마저 친구들은 먹을 수 있는 게 많지 않았다. 친구들이 방콕에서 가장 맛있게 먹었던 건 호텔 수영장에서 먹은 땡모반(수박주스)이었으니 말해 뭐하겠는가.
어쨌든 이러한 친구들과 함께였으니 두 번째 방콕 여행에서 제대로 된 태국 음식을 탐구해 볼 기회조차 없었다.
세 번째 방콕행은 연애 시절 남편과의 여행이었다. 사실 다른 나라에 가고 싶었지만, 남편이 이직한 회사의 첫 출근을 앞두고 잠깐 생긴 시간에 급하게 가게 된 여행이라 일정에 맞춰 갈 수 있는 곳이 많지 않았다.
큰 기대 없이, 거의 즉흥적이라 할 수 있었던 급 여행이었던 세 번째 방콕. 그때 나는 처음으로 제대로 된 태국 음식을 먹을 수 있었다.
남편은 늘 새로운 음식, 맛있는 음식을 선호하는 사람이었고 어떤 향신료에도 큰 거부감이 없는 타입이었다. 남편을 따라 방콕 맛집 메뉴, 길거리 음식 등 대표적인 태국 음식들을 도전해보고 향신료에 매우 취약한 나도 꽤 많은 동남아 음식을 맛있게 먹을 수 있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카오산 로드의 길 위에서 처음 먹엇던 팟 타이의 그 새콤달콤 감칠맛이란! 잊히지 않는 기억 중 하나다.
이후로 말레이시아에서 1년을 살기도 했고, 현재는 미얀마에 살고 있으니 동남아 음식은 실제 식생활의 일부분이 되었다.
그럼에도 이번 첫 가족여행이자 네 번째 방콕 방문의 첫 끼니를 주문하고 걱정한 이유는, 쏨땀과 망고 스티키 라이스를 처음 도전하기 때문이었다.
세 번째 태국 여행 후, 태국 음식을 좋아하게 되었고 한국에서도 말레이시아에서도 현재 살고 있는 양곤에서도 태국 음식점에 자주 가는 편이었지만 주로 먹는 것은 팟타이와 똠양꿍, 볶음밥과 모닝글로리와 고기 튀김, 그리고 가끔 푸팟퐁커리, 그린 커리를 먹었다.
쏨땀과 망고 스티키 라이스가 태국의 대표적인 음식이라는 걸 알고는 있었지만 거부감이 느껴져 매번 주문이 꺼려졌다. 파파야를 채 썰어 매운 샐러드로 먹는다는 것, 망고라는 달달한 과일을 밥과 함께 먹는 것이 낯설고 어색했다.
그런데 얼마 전 편견을 버리면 얼마든지 맛있는 음식을 더 만날 수 있다는 사실을 미얀마의 대표 샐러드 라펫똑을 통해 깨달았고, 태국에 가면 그동안 피했던 솜땀과 망고 스티키 라이스를 먹어봐야겠다고 결심한 터였다.
드디어 눈 앞에 주문한 음식들이 놓여졌다.
쏨땀은 덜 맵게 주문해서 그런지 매운 맛은 거의 없었다. 태국 음식 특유의 새콤함과 파파야의 아삭함, 견과류의 고소함이 입안 가득 했다. 아니, 이렇게 맛있는 걸 이제야 처음 먹는다고? 순간 억울함이 밀려올 정도로 혀끝에 찰싹 감기는 맛이었다. 한 입 먹는 순간부터 솜땀은 앞으로 내가 좋아하는 태국 음식 1순위로 등극했다.
간이 센 편이라 밥이랑 같이 먹어도 맛있을 것 같아서 볶음밥을 추가로 주문할까 고민했지만 얼마 안 있어 저녁을 먹어야 하니 참았다. 대신 함께 나온 양배추, 민트, 당근과 오이를 곁들여 같이 먹었다.
이 새로운 맛탐험에 신이 나서 얼른 망고 스티키 라이스에도 도전했다. 호기롭게 망고와 함께 꾸덕한 찰밥 한 입을 먹었다.
아…! 이것은 내가 딱 상상한 낯선 맛이다. 고수처럼 먹지 못하는 건 아니지만 또 먹고 싶지는 않은 그런 맛과 식감. 한 번 더 용기를 내어 코코넛 연유를 더해서 먹어 보았다.
음… 역시 내 스타일이 아니다. 나는 남편에게 망고 스티키 라이스를 접시째 밀어주고 쏨땀과 목살 튀김에 집중했다.
마늘 후레이크가 올라간 고기 튀김은 간이 좀 세긴 했지만(역시 밥을 시켰어야 했다) 바삭한 튀김 식감과 쫄깃한 고기 식감을 동시에 느낄 수 있어 맛있었다.
콜라와 탄산수, 서비스 차지와 세금을 포함한 식사의 가격은 1,024바트.
오늘 환율로 약 4만 4천 원 정도다. 호텔 식당이니 다른 곳보다 비쌀 거라 예상했었지만, 모든 메뉴가 양이 적은 편이고 가벼운 느낌의 식사였던지라 동남아라는 지역에 기대하게 되는 가성비는 느끼기 힘든 금액이었다.
남편과 배낭여행처럼 왔을 때 접했던 길거리 음식, 노포 식당 등을 다니며 동남아 최고의 미덕인 저렴한 물가를 마음껏 만끽했던 기억이 그립지만 어쩌겠는가.
아기와 함께하는 여행이니 아무리 맛집이라 하더라도 허름하고 불편한 식당에서 식사를 하는 건 어려울 거라 예상하고 온 방콕이었기에 우리는 또 다른 태국 음식을 찾아 방콕의 핫한 쇼핑몰 아이콘 시암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