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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르미 Mar 02. 2022

0화. 개츠비가 되고 싶었는데

3주 배낭여행의 시작


“개츠비는 초록 불빛을 믿었다. 해가 갈수록 우리 앞에서 물러나는 환희의 미래를 믿었다. 그것은 우리를 피했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다.”(스콧 피츠제럴드, <위대한 개츠비>, 열린책들, 2011, 268쪽)




  개츠비가 되고 싶었다. ‘The great(위대한)’라는 수식어가 붙는 개츠비처럼 낭만을 버리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하지만 낭만이란 건 생각보다 가벼웠다. 현실의 벽에 부딪힐 때 가장 먼저 포기할 수 있는 게 바로 낭만이었다. 개츠비는 그래서 위대한 것이다.


 2021년 여름, 개츠비가 되겠다고 호기롭게 네덜란드로 떠난 나는 현실의 복잡한 문제들에 얽혀 금방 낭만을 잊어버리고 말았다. 교환학생의 신분으로 6개월 간 살게 된 네덜란드에는 생각보다 인종차별이 많았고 물가가 비쌌으며 수업을 따라가는 것도 벅찼다. 드넓은 자연과 자유로운 문화를 만끽할거라는 낭만은 되려 내 마음을 상하게 만들었다. 그럼에도 여행은 포기하지 말자며 매주 인접국을 돌아다녔지만, 너무 무리한 탓에 배탈이 나고 피부병이 도지기도 했다.


네덜란드 브레다. 한 잔에 만 원씩 하는 커피.



 난 금세 낭만은 내팽개치고 현실에 충실하는 것으로 태세를 바꿨다. 시험 공부를 하고, 운동을 하고, 매일 건강한 식단을 챙겨 먹으며 창문 밖으로 보이는 나무들에 만족하기로 했다. 내가 개츠비가 될 수 없던 이유는 아마도 그만큼의 강한 목적이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애초에 한국에서의 스트레스에서 회피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네덜란드에 온 것이니 사실상 이곳에 도착함과 동시에 목적은 해결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더 이상의 강한 목적은 없었지만 마음 편히 하루하루를 즐기는 것만으로 행복했다.


보기만 해도 마음 편해지는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운하


 



그럼에도 다시 한 번 개츠비가 되겠다고 결심한 적이 있는데, 

배낭 하나로 3주 간 유럽 3개국 여행을 계획했을 때였다.



“크리스마스에 파리 갈까?”


 10월. 크리스마스까지는 두 달이 넘게 남았을 때, 12월 24일 파리 행 기차를 예매했다. 친구와 밥을 먹다 나온 크리스마스 이야기에 충동적으로 파리 여행을 결정했다. 이미 9월에 파리를 한 번 여행하고 온 상태였지만, 파리는 워낙에 낭만의 도시니까 또 가도 좋을 거라 생각했다.

 네덜란드에서 프랑스 파리까지는 기차로 세 시간, 4만 7천원이면 갈 수 있었다. 비행기보다 2만 원 정도 싼 가격이었기에 밥을 먹다 말고 티켓을 구매했다. 물론 돌아오는 기차는 예매하지 않은 채로. 다음 여행지는 나중에 생각하기로 했다.


파리 루브르 박물관



“1월 1일에는 뭐할거야?”


 파리 행 기차를 예매 한 지 한 달 후, 이번에는 이탈리아행 비행기 티켓을 샀다. 새해는 좀 더 색다른 곳에서 보내자는 친구의 말에 이번에도 티켓부터 끊었다. 프랑스 파리를 여행하고 니스로 이동한 다음, 이탈리아 베니스로 향할 것이다. 이탈리아 여행은 새로운 친구와 함께하기로 했다. 색다른 마음으로 새해를 베니스에서, 불꽃놀이와 함께 보내자며 기대를 한가득 품었다. 이번에도 돌아오는 티켓은 예매하지 않았다. 후의 일정은 나중에 정하기로 했다.



“스페인은 언제 갈거야?”


 이탈리아 여행을 마치고 나면 원래는 네덜란드로 돌아와 시험 공부를 하려고 했는데 마침 시험이 한참 뒤로 미뤄졌다. '그럼 굳이 돌아갈 필요가 없잖아?' 그래서 이탈리아에 이어 스페인까지 여행하기로 결정했다. 이탈리아에서는 베니스, 피렌체, 밀라노까지. 스페인에서는 바르셀로나와 마드리드까지.


바르셀로나 구엘 공원




 이렇게 12월 24일부터 1월 11일까지 총 18박 19일의 배낭 여행 계획이 완성되었다.  


 저가항공을 타고 적어도 도시 7개를 돌아다녀야 했기 때문에 캐리어 말고 작은 배낭을 메고 가기로 했다. 매번 수하물을 추가하게 되면 요금이 상당히 비쌌다. 어쩔 수 없이 작은 배낭에 꾹꾹 짐을 눌러 담아야 했다. 그동안 길어봤자 4박 5일의 짧은 여행만 했던 터라 얼떨결에 떠나는 긴 여행이 걱정 되기도 했지만, 예전부터 꿈꿨던 온전한 배낭여행을 떠난다는 생각에 조금은 설렜다.


 하지만 여행을 떠나기 하루 전인 12월 23일까지도 시험이 있었던 나는 준비도 제대로 못 하고 헐레벌떡 여행을 떠나게 되었다. 구체적인 계획은 하나도 세우지 못한 채로 무작정 여행을 시작했다. 구체적인 일정은 도착해서 생각하기로 했다.

 24일 아침 여섯시 반, 파리행 기차를 타기 위해 일찍 집에서 나왔는데 기차역에 거의 다다라서야 미처 챙기지 못한 짐들이 생각이 났다. 우산, 슬리퍼, 생리대, 약 등. 기차 시간이 얼마 안 남아서 다시 돌아갈 수도 없으니 크게 한숨을 쉬고는 포기하자고 마음을 다잡았다. 필요할 때 하나씩 사지 뭐.


새벽의 네덜란드 로테르담



 기차를 타고 자리에 앉아 창문에 비치는 내 모습을 보니 살짝 웃음이 나왔다. 춥지 않게 옷을 겹겹이 입어 어깨는 거대했고, 작은 백팩에는 3주치 짐이 꽉 채워져 있어 터질 듯했으며, 소매치기의 위험을 피하기 위해 메고 있던 작은 크로스백은 너무 허름했다. 누가 봐도 가난한 학생이 이사 가는 듯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모습은 초라했지만, 그래도 여행은 별 일없이 즐거울 거라고 생각했다. 어딘가 엉성한 여행의 시작이었지만 그런대로 재밌을 거라는 낭만도 남아 있었다.


  그런데 역시나. 여행에 낭만은 없었다.


친구와 내 짐. 잘 안 보이지만 가방은 아주 뚱뚱하고 무거웠다.






- 여행 일정 -

프랑스 파리 5박 (12/24~12/29)

프랑스 니스 2박 (12/29~12/31)

이탈리아 베니스 1박 (12/31~1/1)

이탈리아 피렌체 3박 (1/1~1/4)

이탈리아 밀라노 2박 (1/4~1/6)

스페인 바르셀로나 3박 (1/6~1/9)

스페인 마드리드 2박 (1/9~1/11)



 - 다음 화

 - 1. 파리의 크리스마스 악몽 / 프랑스 파리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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