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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르미 Mar 11. 2022

3화.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

프랑스 니스 여행


“내가 좋아하는 것을 충분히 얻기 위해 나름대로 값을 치렀고, 그래서 나는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삶을 즐긴다는 것은 지불한 값어치만큼 얻어 내는 것을 배우는 것이고, 그것을 얻었을 때 얻었다는 것을 아는 것이다.” (어니스트 헤밍웨이,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 김욱동, 민음사, 2012, 280쪽)



 


 힘들었던 파리 여행을 마치고 니스 행 기차를 탔다. 프랑스의 대표 휴양지라고 불리는 니스는 예전부터 가보고 싶었던 도시 중 하나였지만, 파리 여행으로 너무 지쳐 있던 탓에 별 기대를 하지 않고 기차에 몸을 맡겼다. 파리에서 니스까지는 무려 여섯 시간이나 걸렸다. 프랑스 북부에서 남부로 가는 여정이니 오래 걸릴 수밖에 없긴 하지만 네덜란드에서 파리보다도 오래 걸린다니. 기차를 탔을 뿐인데도 힘겨웠다.


혼잡했던 파리 기차역



 기차에서 정신 없이 자고 일어나니까 밤 10시, 니스에 도착해 있었다. 가로등이 많지 않아 너무 깜깜해서 니스가 맞는지 의심스럽기도 했다. 구글맵에 의지하며 예약해 둔 호스텔로 얼른 걸음을 옮겼다. 니스에서의 첫날밤은 기차역 근처 싼 호스텔에서 자기로 했다. 어차피 늦게 도착했으니 정말 잠만 자고 나오기 위해서였다. 막상 호스텔 입구에 도착하니 파리 민박의 안 좋은 기억이 슬금슬금 떠올랐지만, 그때만큼 힘든 여정은 없을 거라고 속으로 위안하며 호스텔 안으로 들어갔다.


낡고 좁았던 기차



 호스텔은 민박보다는 괜찮았지만 편히 쉴 만한 공간은 아니었다. 별로 관리되고 있는 것 같지 않은 화장실과 샤워실을 보고는 씻는 건 그냥 포기했다. 간단히 세수, 양치만 하고 바로 침대에 누웠다. 4인실이었는데 이미 다른 두 분이 1층 침대와 서랍을 차지한 상태여서 나는 모든 짐을 2층 침대 위에 올리고 짐과 함께 자야 했다. 삐걱대는 침대 위에 까칠한 이불을 덮고 있자니 잠이 하나도 오지 않았다. 어서 해가 뜨기만을 기다리며 밤을 꼴딱 샜다.


‘좀 더 알아보고 숙소를 예약할 걸’


 무턱대고 값싼 숙소를 결제했던 지난 날을 잠깐 후회했다. '언제 또 이런 막무가내 여행을 해보겠나'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그러기엔 힘든 여정을 겪는 지금의 내가 너무 안쓰러웠다. 마냥 우울해지는 마음을 다잡기 위해 나중에 뒤돌아보면 재밌는 추억이 될 거라고 긍정적인 말을 해보았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편히 몸을 누이지도 못하고 있는 지금의 상황을 보면 한숨만 나왔다. 자기 위안과 혐오를 반복하며 혼자만의 연극을 펼치다 문득 떠올랐던 건, 아프지 않은 것만으로 다행이라는 생각이었다. 코로나 19라는 기록적인 전염병의 위험 속에서 유럽 전역을 활보했는데 아직 멀쩡히 살아 움직이고 있으며, 다음 여행지가 많이 남아있다는 명백한 사실에 결국은 안도했다.


 암막 커튼 사이로 조금씩 비치는 햇살을 보면서 니스에서의 할 일을 계획했다. 일단 니스에서의 또다른 하룻밤을 보낼 훨씬 비싸고 좋은 에어비앤비에 가서 체크인할 것이다. 그리고 마티스 미술관에 갔다가 니스 해변에 앉아 있을 것이다. 다시 숙소에 돌아와 깨끗이 씻고 밀린 빨래를 한 후, 맛있는 저녁을 먹을 것이다. 배부르게 먹고 나서 정신 없이 잠에 들 것이다. 앞으로의 하루는 아주 평범하지만 즐거울 것이다. 제발 그러기를 바라면서 침대에서 일어나 다시 짐을 챙겼다.


니스의 맑은 햇살




 12월 30일 아침 9시, 호스텔에 들어온 지 12시간도 채 되지 않아 다시 밖으로 나섰다. 거리로 나오자마자 드디어 니스에 왔다는 게 실감이 났다. 우중충한 파리와는 너무도 다르게 하늘은 함부로 못 쳐다볼 만큼 해가 쨍쨍했다. 거리의 사람들은 가벼운 옷차림에 선글라스를 쓰고 아이스크림을 할짝이며 미소를 짓고 있었다. 나는 피곤해서 충혈된 눈이었지만 따스한 햇살에 저절로 미소가 나왔다.


따뜻한 니스의 거리



 한껏 기분이 좋아진 채로 찾아간 에어비앤비는 생각보다 훨씬 좋았다. 건물 틈 사이로 보이는 푸른 니스 해변과 맑은 하늘, 집 안에 퍼져 있는 은은한 커피 향기, 작은 사다리 위의 아늑한 침대까지. 드디어 아주 편히 몸을 누일 수 있는 숙소에 도착했다는 생각에 함박 웃음이 나왔다. 친구와 소소한 기쁨을 나누고 짐 정리를 한 다음 니스를 본격적으로 즐기기 위해 밖으로 나섰다.


빼꼼 보이는 니스 해변


 니스를 꼭 닮은 색채가 가득한 마티스 미술관, 노오란 햇살을 받으며 푸른 잔디를 뛰어다니는 아이들, 나무 밑 벤치에 앉아 도란도란 이야기하는 사람들, 경계가 보이지 않는 맑은 바다와 하늘까지. 가만히 서서 숨쉬는 것만으로도 지난 힘들었던 기억들이 정화되는 기분이었다.


마티스, <odalisque with red box>



 니스의 갈해변에 앉아 지켜봤던 해가 지는 모습은 평생 기억에 남을 만한 아름다운 광경이었다. 노란 해가 점차 바다 밑으로 가라앉으면서, 밝은 파란 색이었던 하늘은 분홍색이 되고 보라색이 되고 남색이 되고는 검은 하늘이 되었다. 찰랑이는 물결 말고는 아무것도 없는 아득한 수평선을 바라보는 것이 이렇게 행복한 일일 줄이야. 매일 뜨고 지는 해가 새삼 다행스럽게 느껴졌다. 세상은 누구에게나 아름답고 선한 것이라고 간절히 믿고 싶을 만큼 니스 해변은 감동적이었다.


아름다운 니스 해변



 해가 지고 숙소로 돌아와 깨끗하게 샤워를 하고 근처에 있던 피자집에서 피자 두 판을 시켰다. 그리고 마트에서 와인과 아이스크림을 샀다. 별거 없는 식단이었지만 7일의 여행 중 가장 맛있는 만찬이었다. 많이 피곤했던 탓에 와인을 조금만 먹었는데도 금방 알딸딸해졌고 덕분에 신나게 친구와 떠들며 프랑스에서의 마지막 밤을 보냈다.


맛있는 피자




 헤밍웨이가 말한 것처럼, 어쩌면 나는 니스에서의 즐거움을 위해 파리에서 값을 치른 걸지도 모르겠다. 파리에서 그렇게 힘들고 지쳤던 이유는 앞으로 있을 여행의 즐거움을 위한 대가였을 수도 있다. 큰 기대를 하지 않은 니스에서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귀한 추억을 얻을 수 있던 것은 순간의 상심과 괴로움 덕분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낭만 없는 여행이더라도 매번 새로운 세상을 들추어보는 즐거움은 여전한 거니까. 태양이 구름 뒤로 숨는 건 며칠 뿐이고, 결국은 다시 떠오를테니까.


분홍색 니스 해변




6일차 : 숙소 - 프랑스 국립도서관 - 파리 리옹 역 - 니스 이동 - 니스 호스텔

7일차 : 니스 호스텔 - 에어비앤비 - 마티스 미술관 - 마세나 광장 - 니스 해변 - papa piza - 에어비앤비



- 여행 일정 -

프랑스 파리 5박 (12/24~12/29)

프랑스 니스 2박 (12/29~12/31)

이탈리아 베니스 1박 (12/31~1/1)

이탈리아 피렌체 3박 (1/1~1/4)

이탈리아 밀라노 2박 (1/4~1/6)

스페인 바르셀로나 3박 (1/6~1/9)

스페인 마드리드 2박 (1/9~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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