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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화

by 유수

지은과 민지는 자전거를 타고 학교를 오갔다. 몇 번의 연습 끝에 두 사람은 두려움 없이 도로 위를 달릴 수 있게 되었다. 걸어서 30분이나 걸리던 거리는 자전거 덕에 절반으로 줄어들었다. 특히, 지은은 자전거 타기에 점점 흥미를 붙였다. 그녀는 평일이던, 주말이건 시간이 날 때마다 자전거를 타러 나갔다. 짧게는 30분, 길게는 2시간 정도 페달을 밟다 집으로 돌아왔다. 자전거를 탄 지은은 그 어느 때보다 행복했다. 헬멧 속으로 들어오는 시원한 바람은 마치 하늘을 나는 듯한 기분을 선사했고, 눈앞에 보이는 다채로운 풍경은 지은을 세상에서 가장 멋진 사람으로 만들어주었다. 이제 지은이 바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았다. 민지에게 자전거는 편리한 수단이었다. 등교는 물론이고, 마트에서 장을 볼 때도 자전거는 요긴하게 쓰였다. 민지는 언제나 뿌듯한 얼굴을 하고 자전거 바구니에 짐을 실었다. 윤서의 경우는 조금 달랐다. 워낙 겁이 많은 그녀는 아직까지도 뒷마당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자전거를 구매한 지도 한 달이 다 되어가고 있었지만 말이다.


하지만 윤서는 포기하지 않고 자전거를 끌고 셰어하우스의 뒷마당으로 나갔다. 그녀는 천천히 페달을 밟으며 균형을 잡는 연습을 했다. 페달을 번갈아가며 밟아야 했지만, 윤서는 도무지 한쪽 발을 바닥에서 뗄 수가 없었다. 그녀의 자전거는 자꾸만 멈춰 섰고, 슬슬 짜증이 밀려왔다. 당장 5미터도 가지 못하는 자신이 한심했다. 한참을 가만히 선 채로 한숨을 쉬던 윤서는, 다시 한번 두 발을 들어 페달에 올리고 움직였다. “어엇!” 윤서는 비명과 함께 그대로 자전거에 깔리고 말았다. 그녀는 몸 구석구석에서 쓰라림을 느꼈다. 집으로 들어가야만 했다. 윤서는 천천히 몸을 일으켜 자전거를 치웠다. 무릎과 팔꿈치에 상처가 나 있었다.


집에 들어온 윤서는 허공에 대고 큰 소리로 물었다. “누구 집에 없어?” 그녀는 소리에 집중하기 위해 가만히 서 있었다. 잠시 후 2층에서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이어지는 발자국 소리. 윤서는 고개를 들어 계단 난간을 잡고 서 있는 효성을 보았다. “혹시 연고 있어?” 윤서가 물었다. 효성은 윤서의 팔과 다리에서 피가 나는 것을 보았다. ”어, 잠시만. “ 그녀는 서둘러 방으로 가 반창고와 소독약을 챙겼다. 두 사람은 거실 소파에 앉았다. 효성은 윤서의 상처에 소독약을 발라주었다. ”아! “ 윤서가 짧게 외쳤다. 소독약이 스며들면서 상처부위가 아파왔다. 효성은 그녀의 상처부위에 입김을 불었다. ”어쩌다 이렇게 된 거야? “ 효성이 반창고를 붙여주며 물었다. ”자전거 타는 연습 하느라. “ 윤서가 작게 말했다. 효성은 윤서를 보며 물었다. “너 아직도 그걸 못 타고 있어?” 효성의 말은 조금 공격적이었다. 그녀는 속상한 일에 가끔 화를 내곤 했다. “응… 잘 안되네.” 윤서가 머쓱해하며 말했다. “야, 그럴 거면 그냥 관둬.” 효성이 답답해하며 말했다. 지금이라도 자전거를 중고로 팔아넘기면 큰 손실은 없을 것 같았다.


“그건 안돼. “ 윤서가 단호하게 말했다. 효성은 당최 알 수 없다는 듯 물었다. ”아니, 왜? 이 정도면 넌 소질이 없는 걸지도 몰라. “ 효성의 직설적인 말에도 윤서는 흔들림이 없었다. ”나와의 약속이야. 그래서 계속 연습해야 해. “ 그녀는 팔을 돌리며 반창고를 붙이 부분을 확인하며 말했다. “그런 약속은 왜 한 거야?” 효성이 물었다. 그녀는 지금이라도 윤서에게 동수를 소개해줘야 할까, 고민되었다. 동수와 사귀게 된다면 그의 차를 타고 학교를 다닐 수 있을 텐데, 효성은 윤서가 한편으로 안 됐다는 생각을 했다. “그냥, 뭐라도 직면하는 법을 배우고 싶어서. “ 윤서가 답했다. ”뭘 직면해? “ 효성이 되물었다. 윤서는 효성을 슬쩍 보더니, 창 밖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내가 자전거를 타보니까 말이야, 내 몸이 한쪽으로 기운다 싶으면 그 방향으로 핸들을 돌려야 해. 그런데 나는 자꾸만 몸을 반대로 틀고 있더라고. “ 효성은 가만히 윤서의 말을 들었다. 윤서는 말을 계속했다. ”그러니 넘어지는 거야. 쓰러지는 쪽을 직면하는 대신, 피하는 걸 택하니까 말이지. 자전거 타기는 그 원초적 본능을 극복하는 데에서 시작되는 것 같아. “ 윤서의 말을 듣던 효성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고작 자전거인데, 너무 많은 의미를 두는 건 아닐까?” 윤서가 웃으며 말했다. “그렇기도 하지? 나도 내가 오버하는 건 알고 있어. 그런데 앞으로의 나에게 있어 중요하고 필수적인 연습이야. 지금 작업하는 작품에도 그렇고.” 효성은 자세를 고쳐 앉아 윤서와 마주 보며 물었다. “작품? 무슨 작품을 만드는데?”


“아…“윤서는 지난번 동수와의 일이 떠올라 효성에게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해도 될지 고민스러웠다. 생각해 보니 그녀는 함께 살고 있는 하우스메이트에게도 학업에 대해 언급한 적이 없었다. 이 또한 직면의 연습일까,라는 생각이 윤서의 머리에 스쳤다. “조금 무거운 이야기인데, 괜찮을까? “ 윤서가 물었다. ”응, 들어보자. 나 시간 많아. “ 효성이 호기롭게 답했다. 그녀는 윤서와 화해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긴 것 같아 다행스럽기도 했다. ”알았어. “ 윤서가 마음을 다잡으며 말했다. 그리고는 그림의 묘사부터 시작했다. “까만 배경에 흐릿하게 보이도록 내 얼굴을 그리려고 해. 얼굴의 표정으로 감정을 전달하고 싶어.” 효성이 물었다. ”어떤 감정? “ 윤서는 신중하게 답했다. ”지난날의 경험으로 괴롭기도 하지만, 그것을 극복한 강인하고도 처절한 마음? “ 효성은 미간에 힘을 주며 말했다. ”뭐가 그렇게 복잡해? “ 그녀의 말에 윤서는 본격적으로 자신에 대해 말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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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