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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빛나 Jan 10. 2024

1. 느닷없이 마주한 응급실

6시 반, 출근 준비를 한다.

보통 아침에 샤워를 하는데, 날이 추워 잠시 고민을 다. 오늘 하루쯤 건너뛸까 하는 생각에 간단히 세수만 하기로 했다. 머리도 안 감았다. 괜찮다.


오늘은 첫째 딸 라라가 학교에서 눈썰매장에 간다 하여  방수복을 찾아 입혔다. 양말도 두 개 신겼다. 그러고는 혹시 눈썰매를 타다 출출하면 뭐 먹고 싶을까 봐 용돈이 필요한지 물었다.

필요 없다는 말에도 걱정이 되었다. 친구들은 다 뭐 먹고 있는데 혼자만 머뭇댈까 싶어 일단 얼마라도 가져갔다가 안 사 먹으면 다시 가져오라고 설득했다.

그래, 일은 여기부터였던 거 같다.

굳이 필요 없다는 아이에게 왜 꼭 용돈을 쥐어주고 싶었을까. 지갑을 찾아 뒤적거리다가 만 원짜리밖에 없어 아빠에게 천 원짜리나 오천 원짜리가 있는지 물었다. 지갑이 차에 있다며 차에 다녀온 아빠는 없다고 했다. 그럼 만 원짜리를 주면 될 것을 굳이 또 내 차에 잔돈이 있는지 확인하고 싶었을까. 그저 마음이 급한 나는 차로 뛰어갔다. 비가 왔는지 밖이 축축했다.


현관 쪽엔 몇 주전 눈이 너무 많이 와 부직포를 돌계단에 깔아 두었다. 마치 어딘가에 입장하는 레드카펫처럼 정갈하게 깔아 둔 모습이 마음에 들어 우리 집은 회색카펫이라며 신랑과 농담을 주고받았던 부직포였다. 회색카펫은 눈이 와도 미끄럽지 않게 계단을 오르내릴 수 있었다. 이미 내 머릿속엔 [회색카펫=안 미끄러움]이라는 공식이 자리 잡고 있었다.

회색카펫을 밟고 마지막 계단을 내려섰을 때였다. 어느새 나는 붕떴다가 다리가 꺾이며 내려앉았다. 엉덩이가 축축했다. 아얏, 하며 일어서는 순간 직감했다. 보통일이 아닌 것을... 종아리 쪽에 무언가 뭉툭한 것이 튀어나와 만져졌고 어느 곳으로도 움직일 수가 없었다.


어쩜 일은 이렇게 느닷없이 다가오는 건지.


회색카펫이라 부르던 부직포는 눈길에는 효과적이나 빗길에는 최악이었다. 미끄럽지 않으려고 깔아 둔 카펫이 오히려 비를 흠뻑 머금어 커다란 물 웅덩이를 만들었고 겉으로 보기엔 전혀 알 수 없게 돼버린 것이다.


그렇다고 내 왼쪽 무릎 아래쪽은 왜 전부 부서지고 금이 갔을까. 몸을 지탱하는 큰 뼈뿐만 아니라 작은 뼈들까지 와삭 부러졌다.

그렇게 느닷없이 나의 병원행은 시작되었다.


그 와중에 이런 생각을 하고 있다.

'오늘 샤워도 못하고, 머리도 못 감았는데 하필.. 당분간은 더더욱 씻지도 못할 텐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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