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큰 걱정거리는 없다. 그다지 컨디션이 썩 좋은 편도 아니지만, 가장 큰 문제였던 계약 문제도 해결되고 일단 계약 종료 후에 가야 할 곳들이 정해지니 큰 마음의 짐은 덜었다고 할 수 있다. 프랑스를 떠나 한국으로 돌아가게 되면서 이곳 생활을 정리해야 할 생각을 하면 조금 피곤한 느낌은 있다. 그래도 크게 우울감이나 불안은 없다.
아침에 눈을 뜨기 싫은 건 그저 해가 늦게 떠서 아침 느낌조차 나지 않는 겨울이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프랑스에서의 마지막 정신과 상담에서 어떻게 지냈냐는 질문에 잘 지냈다고만 답했다. 크게 문제 있을 것은 없었으니까. 한국으로 돌아가게 될 거라 얘기도 하고, 그냥 일상적인 스트레스 정도라고 했다. 질병이라 할 정도로 심각한 것은 없다고 의사는 내게 말했다. 언어도 통하지 않는 타국에 나와 생활하는 것은 누구에게나 힘든 상황일 수 있기에 한국에 돌아가면 내게 한결 모든 게 편해질 수 있다고 했다. 어쩌면 서서히 약을 줄일 수도 있을 거라고 했다. 일단은 먹고 있던 약을 유지하기로 한 채로 처방전을 들고 병원을 나선다. 상담을 다녀오면 기분은 한결 나아진다. 내가 스스로를 돌본다는 생각에서 일까. 더 나빠질 것은 없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잠을 잘 못 잔 건지, 어깨와 목 근육이 너무 아파 제대로 움직일 수 없었다. 거기에 생리도 겹쳤다. 컨디션이 굉장히 안 좋은 상태였지만, 한글학교에서 내가 담당하는 김치 아뜰리에가 있었다. 힘든 몸이지만 무거운 짐을 들고 아뜰리에 장소로 향한다. 정신을 바짝 차리고는 두 시간 13명의 사람들에게 김치를 가르친다. 내 계획처럼 차근차근 잘 진행된 느낌이 아니라 아쉬움이 조금 남았다. 더 잘 진행할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좋지 않은 컨디션에 기분을 조금 울적하게 만들었다. 다음날 아침에도 여전히 몸이 안 좋았다. 가지고 있던 근육이완제와 진통제를 삼키고는 나아지길 기대한다. 한글학교에서 보조교사이지만 주교사인 선생님이 한국에 잠시 가셔서 혼자 아이들을 담당했다. 내 기분이 좋지 않지만, 좋은 척 아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냈다. 그런 후 기분이 좋은 척 사람들과 어울리며 사물놀이까지 두 시간 함께 연습을 했다. 그렇게 모든 걸 마치고는 정말 지친 몸을 이끌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렇게 집으로 돌아와 주말 내내 침대를 벗어나지 않았다.
예전과는 확실히 달라졌다. 그래도 나이를 먹고 내가 맡은 것은 해야 한다는 책임감 때문에 해야 할 일이 있을 때만큼은 정신 차리고 일을 해낸다. 그리고는 방에 돌아와 그냥 세상과 잠시 단절된 시간을 갖는다. 그렇게 하루, 이틀쯤 시간을 보내면 다시 세상으로 나가야지 하는 생각이 든다. 마냥 단절된 채로 있으며 다시 사회로 돌아가기 어렵다는 것쯤은 아는 나이라서이다. 혼자 있을 때면, 정말 더 이상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순간이 많다. 그러다가 왜 이렇게까지 살아왔나 하는 생각이 든다. 내 생각과 다르게 너무 이것저것 하며 살아와서 어쩌다 보니 프랑스까지 와서 일을 하며 지내고 있고, 이제는 부모님도 가족도 내게 무언가를 기대하게 만들어 버린 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세상이 조용히 끝나버리면 좋겠다는 세상을 자주 하지만 이게 크게 문제 될 우울증이나 그런 증상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며칠 전 의사도 정신과 질병이라고 할 정도의 문제는 내게 없다고 했으니까 말이다. 그냥 타고난 기질의 문제인 것 같다. 삶에 대한 애착이 조금은 부족하게.. 그냥 그렇게 타고난 사람이라고 막연히 생각한다. 어쩌다 보니 내 뜻과 다르게 너무 열심히 살아와버린 것 같아, 앞으로 계속 살아갈 날이 한참이라고 생각하면 막막하고 숨이 막힌다. 내 삶에 큰 어려움이 있는 건 아니다. 그저 다만, 나 같은 누군가는 그저 산다는 것 만으로 그냥 지치는 순간이 조금 자주 찾아올 뿐이다. 어릴 적부터 살아 있으니 살아야 한다는 말처럼 이해가 되지 않는 말도 없었다. 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날이 많다는 게 누군가에게는 희망의 말이지만, 나 같은 누군가에게는 정말 힘 빠지고 숨이 막히게 하는 말이기도 하다.
별다른 일이 있는 날은 아니다. 그저, 오늘도 숨을 쉬고 살아가는 이 하루의 의문이 들었을 뿐이다. 오늘 하루도 살아가야 한다는게 잠시 숨이 막혔을 뿐이다. 그냥 오늘도 그런 날인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