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종 결혼식을 가면, 결혼식장에서 라라랜드 OST가 들려오곤 한다. 나는 그럴 때면 나의 이별을 생각한다. 나는 라라랜드를 보고 이별을 했다.
그날, 나는 그 사람과 새해맞이 여행을 마치고 돌아왔다. 여행에서 돌아온 후, 우리는 영화관을 찾았다. 미리 예약해 둔 건지, 어쩐 것인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저 영화가 라라랜드였던 것만 기억이 난다. 영화는 좋았다. 라라랜드가 좋은 영화라는 데는 모두가 동의할 것이다. 영화를 보고는 그의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며 영화에 대해 서로의 의견을 얘기했다. 그는 여자주인공인 미아를 나쁜 X이라 했다. 미아가 세바스찬을 버린 것이라 했다. 미아가 현실적인 선택을 했다고, 사랑보다 꿈을 택했다고 생각했다. 미아가 남자와 끝까지 함께하지 않고, 그들의 이별이 미아 때문이라고 했다. 내 생각은 달랐다. 미아는 언제나 세바스찬을 응원했고, 진심으로 그의 음악을 사랑했다. 오히려 그들의 관계를 이별로 끌고 간 것은 자신에게 자신감을 잃어가던 세바스찬이라 생각했다. 그들이 이별하고 각자의 삶을 살아가는 것은 당연한, 거의 정해진 결말이라 느꼈다.
영화에서 미아에 대한 의견만큼이나 서로가 생각하는 많은 것들이 달랐다. 영화를 보고 집에 돌아온 후, 나는 영화를 다시 떠올렸다. 그러면서 나는 우리의 관계에 대해 돌아보았다. 함께했던 새해맞이 여행이 그다지 즐겁지 않았던 것도 조금은 영향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보다도, 라라랜드를 보고 우리가 기억하는 장면이 달랐고, 우리가 해석하는 사랑이 달랐다. 그는 미아를 비난했고, 나는 미아를 이해했다. ‘영화 한 편에서도 이렇게 다른데, 앞으로의 삶에서 우리가 괜찮은 관계일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서로가 생각하는 사랑이란 무엇인가가 다른 것 같았고, 삶을 바라보는 시선이 다르다고 느꼈다. 그런 생각이 들자 머릿속에 우리의 다른 것들이 하나 둘 더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런 생각들이 이어지며, 나는 우리의 미래도 미아와 세바스찬과 같다고 느꼈다. 그들처럼 우리의 사랑이 뜨거운 것은 아니었지만, 미아처럼 모든 감정을 쏟아부은 사랑은 아니었지만, 나는 이 관계를 끝내도 후회가 없을 것을 알았다. 이 관계의 미래는 보이지 않았고, 난 우리의 이별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렇게 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렇기에 라라랜드의 음악이 들려오면, 나는 내가 이별을 다짐했던 그 사람과의 만남이 떠오른다. 라라랜드 속 두 연인은 이별을 다짐했건만, 서로의 영원한 사랑을 약속하는 결혼식에서 라라랜드의 OST를 튼다는 것이 조금은 신기하기도 하다. 아마도 사람들은 그들의 이별보다 미아와 세바스찬이 함께하던 사랑의 감정에 더 의미를 둔 모양이다.
라라랜드를 떠올리며, 사랑이란 무엇일까 생각해 본다. 미아는 세바스찬의 음악을 언제나 응원했다. 삶이 힘들어도, 그가 사랑하는 음악과 계속 함께하길 응원했다. 사랑하기에 사랑하는 이의 꿈도 응원한 거다. 그들이 헤어졌더라도, 미아는 그의 음악을 응원했을 거다. 그러니 미래에 세바스찬을 재즈바에서 다시 마주쳤을 때, 더 이상 그들이 함께하는 사이가 아니었을지라도, 미아는 그가 그가 사랑하는 음악과 여전히 함께라는 데에서 위안을 얻었을 거다. 그녀는 그와 헤어졌더라도 그를 응원하고 있었을 테니까.
때로는 사랑이 끝나도, 그 사람을 응원할 수 있다. 우리는 같은 영화를 보고 다름을 느꼈고, 난 서로를 이해할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알았다. 함께해도 바라보는 삶이 다르다는 것을 알았으니까. 그래서 나는 이별을 결심했다. 각자의 길을 가는 것이 슬픈 결말은 아니다. 두 연인이 이별을 했다고, 그들의 삶이 끝나는 것이 아니니까. 슬픈 결말이 아닌 거다. 그가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라라랜드의 음악을 들으면, 어렴풋이 ‘잘 지내고 있겠지.’라고 그렇게 어딘가에 있을 그에게 작은 응원을 보낸다. 나는 미아처럼 그의 삶을 응원해주지 못했으니까. 조금이라도 먼 곳에서라도 잠시나마 함께했던 그에게 응원을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