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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meformoflove Nov 15. 2024

사랑에 대한 짧은 고백

사랑은 언제나 내게 질문이었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행위가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것은 상대를 위하는 일일까, 아니면 나를 돌보는 일일까. 오래 고민한 끝에 내린 결론은 단순했다. 사랑은 결국 나를 사랑하는 행동에 더 가깝다. 내가 나를 사랑하지 않으면, 누구도 진심으로 사랑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녀를 처음 만났을 때, 나는 내가 꽤 괜찮은 남자라고 느꼈다. 그녀는 내 모든 것을 보듬어주는 사람이었다. 나의 흔들리는 날들, 지친 모습들, 심지어 내가 감추고 싶었던 작은 결점들까지 그녀는 웃으며 받아들였다. 그런 그녀와의 하루가 아직도 생생히 떠오른다.


그날, 우리는 비 내리는 거리를 걷고 있었다. 나는 우산을 들고 있었지만, 그녀는 손을 내밀어 비를 맞았다.


“너도 한번 만져봐. 비가 얼마나 따뜻한지.”

“비가 따뜻해? 지금 겨울인데.”

“어, 근데 봐. 우리가 같이 있으니까 춥지 않잖아.”


그녀는 내 손을 잡고 나를 끌었다. 그녀가 손끝에 느꼈다는 그 따뜻함이 나에게도 전해졌다. 그녀와 함께 있는 순간, 나는 어쩌면 사랑을 이해하기 시작했다고 착각했다. 그녀는 나를 사랑하는 방식으로, 내가 나를 사랑하도록 이끌어주고 있었다. 그 모든 순간들이, 비 오는 날 그녀의 웃음소리처럼 선명했다.


그러나 내 생각은 그녀와의 관계가 깊어질수록 틀어지기 시작했다. 내가 그녀를 사랑한다고 믿었던 이유는 단순했다. 그녀는 나를 이해해 주는 사람이었다. 내 불완전함조차 품어주는 존재.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녀가 점점 나에게 원하는 것은 다른 것이었다. 그녀는 말했다.


“이제 너도 나를 좀 이해해 줬으면 좋겠어.”

“네가 힘든 거 알아. 그래서 나도 노력하고 있잖아.”

“아니야, 네가 노력하는 게 아니라 내가 노력하도록 내버려 두는 거야. 이제는 네가 날 좀 더 알아줬으면 해.”


그녀의 말이 틀렸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너무나 옳았기에 그 순간 나는 더 혼란스러웠다. 우리는 서로를 사랑한다 믿었지만, 결국에는 각자 자신을 더 사랑하고 있었다. 나는 그녀가 나를 사랑하는 모습을 보며 나 자신에게 더 몰두했고, 그녀 역시 자신을 이해받기를 바라는 마음에 점점 나를 멀리했다.


결국 그 만남은 끝났다. 우리는 서로에게 다가가는 대신 각자의 방향으로 걸어갔다. 그때 나는 처음으로 사랑이 얼마나 이기적인 감정일 수 있는지, 얼마나 서로 다른 방향을 가리킬 수 있는지 깨달았다.


누군가는 내게 말했다.

“나는 정말로 나를 버릴 만큼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났어.”


나는 그 말을 들으며 생각했다. 나를 버릴 만큼 사랑할 수 있다는 말이, 과연 사랑일까? 나를 포기하고 상대에게 모든 것을 내어주는 것이 정말 사랑의 본질일까? 아니면 그것은 단지 스스로를 잃어가는 또 다른 방식일 뿐일까?


사랑은 때로 불처럼 뜨겁게 타오른다. 그 불길 속에서는 자신을 잊어버리기 쉽다. 하지만 결국 불이 꺼지고 남는 것은 자신뿐이다. 그래서 진정한 사랑은 서로가 서로를 사랑하면서도 자신을 잃지 않는 데서 출발해야 하지 않을까.


나는 아직 그런 사랑을 경험하지 못했다. 어쩌면 그런 사랑이 내게 찾아왔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더 많은 것을 원했고, 그 욕심이 사랑의 본질을 왜곡했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어쩌면 나는 아직 그런 사랑을 마주할 준비가 되지 않았던 것일지도.


사랑은 질문이고, 답이 없다. 그것이 내가 아는 유일한 진리다.

그리고 나는 여전히, 이 불완전한 진리를 더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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