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계 이황 선생은 1501년에서 1570년까지 살다간 대유학자이다.
단순한 유학자가 아니라, 그 분야의 큰 스승으로서 당대는 물론 오늘날까지도
수많은 업적을 남기고 많은 제자를 길러낸 인물이다.
현재 안동을 비롯한 경상도 북부 지방이 ‘유학의 고장’으로 명성을 이어갈 수 있는 것은
대부분 그의 영향 덕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조선이라는 나라가 500년을 유지할 수 있었던 근간이기도 하다.
그의 일거수일투족은 후세의 표상이 되었고,
심지어는 숭배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그러다 보니 장점은 도드라지고, 단점은 종종 숨겨지거나 왜곡되곤 한다.
퇴계와 두향.
오늘은 최대한 객관성을 유지하며, 이 둘의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미화된 이야기를 옮기면 흥미를 끌 수는 있겠지만,
그런 식의 나열은 썩 내키지 않는다.
재미가 좀 덜하더라도, 공식적 근거가 없는 전언에 가까운 이야기는
가능한 한 배제하고 싶다.
퇴계 선생은 권씨 부인과 사별한 뒤
많지 않은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다시 혼인하지 않았다.
그 시대의 문화로는 흔치 않은 일이다.
의리를 중시한 성리학자다운 그의 행실은 가히 존경받을 만하다.
예나 지금이나 지도층의 표리부동이 넘쳐나는 현실에서 말이다.
그가 단양에 지방관으로 나가 있을 때 만난 두향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논란이 있다.
그녀가 관기였다는 설, 퇴계가 관례대로 현지처를 두었다는 설 등등.
그러나 그런 논란은 정작 당사자들에겐 그리 중요하지 않았던 것 같다.
당시에도 이들은 떳떳했던 듯하다.
도무지 가리고 숨긴 흔적이 없다.
퇴계가 두향이라는 여성을 가까이 두었다는 것을
확정적으로 말할 수는 없다.
정사에 등장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두 사람이 사랑의 마음을 나눈 것은
사실에 가까운 듯하다.
부정하기엔 그 흔적을 언급한 문헌이 너무 많다.
다만 그 관계는 매우 플라토닉했던 것으로 보인다.
만남도, 이별도 깔끔했기에.
진짜인지, 누군가 지어낸 이야기인지 알 수 없지만
‘매화 분재’에 얽힌 이야기는 참 아름답다.
이 역시 미화된 전설일지도 모르지만,
후일 도산서원을 뒤덮은 매화를 보면
어느 정도 사실이었으리라 짐작할 수 있다.
퇴계와 고품격 플라토닉 러브를 나눈 두향.
나는 이들의 관계를 그렇게 이해하고 싶다.
세속의 욕심을 떠나 철학과 정신을 추구했던 퇴계.
그를 기억할 때, 심오한 철학만큼이나
두향이라는 여인도 있었다는 것을 함께 기억해 주었으면 한다.
퇴계의 마지막 유언이,
“옆방에 있는 매군(梅君)에게 물을 주게.”
두향이 이별하며 남긴 매화 분재,
퇴계는 그것을 평생 애지중지 가꾸었다고 한다.
세상을 떠나기 며칠 전,
당신의 흐트러진 모습을 매화 분재에게 보이고 싶지 않아
옆방으로 옮겨놓게 했다고 전해진다.
지어낸 이야기라면 정말 대단한 창작이고,
사실이라면 더없이 멋진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