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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전 김 아무개 내과 이야기

by 신화창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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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등포 사거리 한복판,

5층 건물을 통째로 쓰는 김 아무개 내과는 병원이라기보다 영등포 시장의 일부 같았다.

환자, 간호사, 제약사 직원들로 늘 북새통이었다. 그리고 나도.


그러나 애쓰는 만큼 거래는 미미했다.

기존 거래 제약사의 벽도 높았고,

개성상인 집안 출신이라는 원장님의 거래 조건도 맞추기 힘들었다.


당시 우리 회사의 주력 제품 중 영양수액제가 있었는데 김 아무개 내과 의원은 웬만한 종합병원 못지않게 소비량이 많아서 호시탐탐 노려보았지만 가장 싼 제품을 구매한다는 원장님의 기준을 도저히 맞출 수가 없었다.


허구한 날 들락거렸지만 방법을 찾지 못했다.


“그 가격은 불가능합니다.”


늘 똑 같은 말만 반복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아까운 시간만 죽이고 있던 어느 날,


전화 한 통이 걸려 왔다.


“오늘 와 보세요.”


바람처럼 달려갔다.

보름치를 주문 받았는데 웬만한 병원 석 달 치다.


‘이게 무슨 횡재인가.’


조건이 있었다.

주문받으면 당일로 납품할 것,

항상 열흘 치 씩만 배송할 것.


“가능하겠는가?”

“예! 할 수 있습니다!”


병원 직원을 통해 갑자기 거래를 열어준 이유를 알았다.

기존 거래처 제품이 품절이 되었으며,

앞으로 계속 생산할지도 불투명하며,

병원이 가지고 있는 정보로 제일 경제적이고, 제일 많이 찾아오는 제약사가 바로 우리라서 선정되었단다.

거래는 영구적이지 않고 기존 거래처 제품이 재생산되면 바로 바뀔 거란다.


그야말로 임시 거래라는 말이었다.


영영 안 나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싼 약은 원가 맞추기 어려워 종종 생산 중단되는 일이 있다.

운이 좋았던 건지, 영업의 신이 도운 건지.


다만 경쟁사가 움직이기 전에 개성상인의 철학을 깨고 자리를 잡을 시간을 벌었다고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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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운 조건이었다.


우선 일단 주문을 받으면 병원 도착하기까지 기본적으로 3일이 걸린다.

당일 주문, 당일 도착. 우선 이 문제를 해결해야 했다.

고민 끝에 회사를 어렵게 설득해 일정 재고를 지점에 두기로 했다.


다음은 배송 문제였다.

수액제는 부피가 엄청나게 커서 들고 다닐 수 없었다. 한 번에 300병이 넘었다.

한 달에 세 번 승용차로 날라야 했는데 차가 없었다.

팀 내에 차라고는 심심하면 길 한 가운데서 퍼지곤 하는 소장님 고물차 밖에 없었다.

어쩌겠는가. 그것도 소장님 잘 꼬셔서 해결했다.


한 달에 세 번씩 엘리베이터도 없는 병원 5층까지 등짐을 져서 나르는 일은 오히려 즐거운 일이었다.

문제는 시한부로 납품해야 한다는 점이었다.


원장님은 만나기도 어려웠을 뿐 아니라 너무 바빠 말 걸기도 어려운 형편이었다.

궁리 끝에 사모님을 공략하기로 했다.

사모님은 대금결재로 한 달에 한번만 나오셨는데 특별한 제안을 했다.


모자라는 단가만큼 몸 쓰는 일로 병원을 돕겠다고.

실제로 그렇게 해 보이겠다고.

한번 지켜봐 주시라고.


웃으셨다.

그럼 된 거다.


개성상인은 개성상인답게 대해 드려야한다는 전략이 성공한 걸까.

모르겠다.


그 뒤로 종종, 아니 툭하면 나타나 창고 정리도 해 주고 청소도 했다.

심지어 한 밤에도, 노는 날도.

어떤 날은 병원으로 바로 출근하기도 했다.


그렇게 병원에 살다시피 하니까 의외로 얻는 것도 많았다.

모든 정보가 다 들어오고 직원들을 내 편으로 만들 수 있었다.


확실히 할 게 하나 있다.


영등포를 떠나는 그 날까지, 역전의 김 아무개 내과 수액제는

아무도 넘보지 못하는 우리 몫이었다.

한 번 물면 놓지 않는 불굴의 상혼으로.


1992년 이야기다. 아주 오래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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