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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하LeeHa Aug 30. 2020

마흔을 기점으로 성장하거나 멈추는 사람.

마음이 흔들려도 괜찮아.  우리는 성장 중이니까.

작년 말쯤 블로그 이웃으로 알게 된 분에게서 연락이 왔다. 나보다 열 살쯤 어린 분인데 성향이 비슷해서인지 우리는 서로의 블로그를 왔다 갔다 하다가 친해졌다. 그녀는 나이 마흔을 앞둔 시점인 자신에게 해 줄 이야기가 없는지 내게 물었다.


'제가 감히 무슨 얘기를 해 줄 수 있을까요?' 반문하면서도 나의 마흔 즈음은 어땠는지 기억을 떠올려 보았다.


공자님은 마흔 살을 어느 것에도 미혹됨이 없는 나이로 말씀하셨지만 나의 마흔은 '마음이 많이도 흔들리던 시기'였다. 아니, 마흔을 맞기 이전 해부터 불안하고 초조했다고 말해야 맞겠다. 서른과 다른 느낌으로 다가오는 마흔을 맞기 위해 1-2년 전부터 계속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 어떻게 살아야 해?' '나, 뭐가 하고 싶은 거지?' '하고 싶은 게 있긴 하고?'


마흔 전까지 자신의 일에서 어느 정도 가시적 성과를 낸 사람이라면 내가 겪은 이런 종류의 불안을 느끼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당시 아이를 키우며 프리랜서로 글을 쓰고 있었는데 마흔 이후의 삶에도 그 일이 안정적으로 지속될 거라고 장담할 수 없었다.


또 지속된다고 하더라도 스스로가 만족할 수 있을 만한 일인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게다가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나서느라 아이를 다른 곳에 맡기고 싶지도 않았다. 하루에도 몇 번씩 마음이 오락가락했다.



아이를 어렵게 얻었기 때문에 유치원에 입학하기 전까지는 가능한 한 내 손으로 키우며 같이 놀아 주고 싶었다. 아이와 날마다 이런저런 놀이를 같이하고 잠들 때까지 누워서 동화책을 읽어주던 어느 날, 문득 동화가 쓰고 싶어 졌다.


남이 쓴 동화 말고 내가 쓴 동화를 아이와 함께 읽는다는 상상을 하자 그것이야말로 내가 꿈꾸던 의미 있는 일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당시에는 훗날 얼마나 깨질지도 알지 못한 채 어쩜 잘 쓸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며 혼자 꿈에 부풀었다.


서른아홉 살에 그림책과 동화책 모임에 합류해서 동화작가 지망생들과 읽고 쓰고 합평을 했다. 마흔 살에는 등단 작가 선생님의 지도 아래 5명의 문우들과 1년간 치열하게 공부를 했다.


그 후 아주 운 좋게도 문학상을 연거푸 받으며 등단을 했다. 마음먹은 지 2년 만의 일이었고 등단한 그 해에 내 이름을 건 책 두 권이 동시 출간되는 행운도 찾아왔다. 평가도 나름 좋았기에 나는 스스로가 동화작가로 잘 자리 잡게 될 거라 어림짐작했다.


그러나 인생은 늘 예측불허라는 이야기처럼, 내 소망대로 인생은 흘러가 주지 않았다.


그 후에 쓴 수많은 원고들은 출판사로부터 무수히 거절당했고 어쩌다 가뭄에 콩 나듯 가끔씩 출간이 되었다. 그러다 보니 활화산 같던 의욕은 점차 사그라들었다. 때맞춰 내 발목을 잡을 인생의 소소하면서도 복잡다단한 일들도 여기저기서 툭툭 튀어나와 그나마 있던 글 쓸 마음조차 살살 없애버렸다. 그 사이 몸과 마음은 늙어가며 갱년기 우울증까지 맞아버렸다. 최악이었다.


결국 쓰고 싶은 마음 자체가 사라져 버렸다. 몇 달씩 쓰지 않고 읽지 않고 생각하지 않는 삶을 살았지만 그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았다. 나라는 사람은 애초부터 원대한 야망 같은 건 없었으니까 어느 한 귀퉁이에 쭈그려 앉아 내가 쓰고 싶은 이야기만 몇 개 쓰다가 소리 소문 없이 사라져도 억울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런 생각은 나에 대한 변명을 늘어놓도록 만들었고 인생의 주인이 아닌 방관자로 살아도 괜찮다고 여기게 만들었다. 그렇게 살면서도 마음 한 편에는 뭔지 모를 불편함이 있었는데 외면하려고 애썼다. 쳐다보지 않고 관심 주지 않으면 사라져 버릴 불편함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불편한 부분은 들춰내서 구겨진 곳은 펴주고 찢어진 곳은 꿰매 줘야 한다. 적당한 처치를 제때 해주지 않는다면 불편한 곳은 쌓이고 쌓여 불행한 지점이 되고 만다. 불편한 곳은 더 이상 내가 행복하게 살지 못하게 하는 요인이 되어 버린다.


다가오는 마흔의 나이가 불안해서 전전긍긍하던 서른아홉 때. 그때로 돌아간다면 나는 내게 이렇게 말해 주고 싶다.

 

"인생이 어느 한 두해 열심히 산다고 확 바뀌는 건 아니야. 하지만 자신의 인생을 고민하며 치열하게 살아낸 한 두 해가 있다면 그건 몸과 마음이 분명히 기억해. 그러니 한 번쯤은 그렇게 살아 보는 것도 괜찮은 일이야. 그리고 힘들겠지만 열심히 살았던 순간을 기억하며 계속 유지하도록 노력해 보면 좋겠어.(지금의 나는 못했지만 말이야)"


몇 년간 지치고 늘어졌던 나는 마흔 즈음의 기억을 끄집어내어 닦고 조이고 기름치는 작업을 했다. 작년 내내 그 일을 했다. 후회하는 마음이 없었다면 새빨간 거짓말이다. 지치지 말고 늘어지지 말고 마흔 즈음의 의지와 실행력으로 40대 내내를 살아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지금보다 조금은 더 나은 결과물을 지니고 있었을 텐데... 후회 뒤에는 자책이 세트처럼 따라다닌다.


그러나 인생은 늘 W라는 이야기를 들으며 고개 끄덕이고 있는 나를 보게 된다. 바닥이 있다면 그 바닥을 기어 올라 정점을 치는 순간도 있는 것이 인생이다. 높낮이가 있어야 정상이지 어찌 죽어라고 낮은 곳만 또 죽어라고 높은 곳만 점하면서 살 수 있을까. 인생을 꼭 닮은 매력적이고도 리드미컬한 W라는 글자를 사랑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이종석 주연의  W.  만화와 현실을 오가던 주인공의 파란만장한 이야기. 우리 인생도 그렇다.


김승호는 자신의 책 <생각의 비밀>에서 "사람은 마흔이 넘어서야 경험과 지식이 균형을 이룬다. 인생의 반은 살아야 흔들림의 추가 앞쪽 무게를 견디기 때문이다. 그때가 되어야 함부로 흔들리지도 않고 자기 자신이 무엇을 잘하고 무엇을 못하는지도 잘 알게 된다."라고 말했다.


마흔을 기점으로 충분히 더 성장할 수 있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으로 나뉜다면 우리는 어느 쪽에 서야 할까? 당연히 계속 성장할 수 있는 자리에 서서 스스로의 발전을 지켜봐야 하지 않을까?


왜냐하면 우리는 인생의 절반쯤을 이미 살아낸 사람들이고 삶의 쓴맛도 단맛 못지않게 살아가는 내내 힘이 되어준다는 것을 아는 사람들이며 살아온 페이지가 꽤나 넉넉하기에 살아갈 페이지의 무게도 기꺼이 감당할 수 있는 사람들이니까 말이다.


피터 드러커는 75세에서 83세가 인생의 전성기라고 했고 김형석 교수는 100세에도 왕성한 활동을 하고 계신다. 그러니 마흔은 새로운 성장을 꿈꾸며 도전하기, 딱 좋은 나이인 거다.


나는 작년 말 서른아홉의 그녀에게 이런 의미를 담은 이야기를 주제넘지만 들려주었다. 올해 마흔이 된 그녀는 지금 현재 정말 부지런히 자신의 일을 사랑하며 살고 있다. 물론 그녀의 능력과 천성이 그녀를 발전시키고 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마크 트웨인이 한 말을 잠시 떠올려 보자.

"앞으로 20년 후에 당신은 자신이 한 일보다는 하지 않은 일로 인해 더 실망하게 될 것이다. 그러니 밧줄을 풀고 안전한 항구를 벗어나 항해를 떠나라. 돛에 무역풍을 가득 담고 탐험하고, 꿈꾸고, 발견하라."


 그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마흔 이후의 모든 사람들의 마음을 두근두근 흔들어 주기에 충분하다. 자, 늘 머물던 항구를 박차고 떠나보자. 얼마나 먼 곳일지 얼마나 힘들지는 출발하고 나서 생각해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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