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저는 새벽 4시를 전후해서 기상합니다. 기상하자마자 단톡방에 모닝 인증하는 것을 아직도 깜빡하는 날이 있긴 하지만 6월 이후 넉 달 넘게 새벽 기상을 유지하고 있어요. 전형적인 올빼미족으로서의 삶에 종지부를 찍었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 같아요. 거의 반평생을 새벽 1-2시 취침 모드로 살아왔기 때문에 조금만 느슨해져도 저는 그 옛날의 저로 돌아갈 것을 알고 있습니다.
날마다 '조금 더 자도 된다'는 환청도 들리고요. '1일 1포(1일 1포스팅)는 하루에 한 번쯤은 포기해도 된다'는 소리로 재해석되기도 합니다. 자꾸만 제가 나태해져도 될만한 상황들을 만들어 변명하도록 하네요. 누가요?? 바로 제가요.
저는 굉장히 나약한 인간형이라서 누구의 말 한마디, 제 의도와 다른 상황 하나에도 마음의 중심을 못 잡고 그대로 나가떨어지곤 했습니다. 블로그를 하면서부터 그래서는 안될 것 같았어요. 마음을 단단히 먹기 위해서라도 강제성 부여가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새벽 기상 인증도 하고 블로그에 쓴 글을 주소 복사해서 제가 참여하는 단톡방에도 보냈었습니다. 정말 예전의 저로서는 상상도 못 할 일들을 했었죠.
저는 누군가의 눈에 띄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고, 사진 찍기도 싫어하며, 어디 가도 구석에 앉아 있다가 조용히 나오는 타입의 사람입니다. 친한 사람과 있을 때만 말하는 타입이었어요.
그랬던 제가 변해서 블로그에 쓴 글을 퍼서 여기저기 나릅니다. 문득문득 예전의 소극적인 저랑 마주칠 때가 있어요. 그러면 많이 난감해요. 멘붕도 와요.
'나, 지금 뭐 하는 거니????'
저는 제가 출간했던 책도 카톡 배경 사진에 못 올리는 새가슴 심장을 가지고 살아왔고요. 어디 가서 글을 쓴다고 대놓고 말을 했던 적도 거의 없어요. 있었다면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정말 어쩔 수 없어서 했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까지는 안면 몰수하고 매일 블로그 글을 여기저기 뿌렸고요. 채 한 달이 되지 않았지만 브런치에까지 글을 올립니다. 블로그와 브런치에 제 책 소개도 해 놓았습니다. 사람이 갑자기 변하면 이승을 떠날 때가 다가온 거라던데 불안하고 고민도 됩니다.
저는 날마다 예전의 저와 현재의 저 사이에서 헷갈려합니다. 여태까지처럼 조용히 살지 않고 왜 자꾸 어딘가로 가려고 하는지 제 스스로에게 묻습니다. 답은 아직 못 찾았어요. 구체적으로 제가 뭘 원하는지도 아직은 모르겠고요.
다만 블로그에 매일 올리는 글들로 제가 알게 된 이웃들과 소통하고 제가 모르던 세상의 다양한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어서 블로그 글쓰기는 당분간 계속될 것 같습니다.
스탕달 신드롬에 버금가는 '블로그 과몰입 증후군'
<적과 흑>을 쓴 프랑스의 유명한 소설가 스탕달은 '스탕달 신드롬'으로도 알려져 있어요. '스탕달 신드롬'은 뛰어난 예술품을 본 순간 갑자기 느끼는 정신적 충격, 충동이나 분열 증상 등을 말합니다. 예술작품을 보며 너무 감동받아서 가슴 두근거림이나 정신적 일체감. 흥분과 감흥. 우울증과 현기증 등등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거죠. 바로 '스탕달 신드롬'입니다.
몇 달 전 '베르나르 뷔페' 전시회를 보면서 약한 '스탕달 신드롬'이라 이름 붙일 정도의 흥분과 감정을 느껴본 저는 블로그 할 때도 비슷해지는 것 같아요. 일명 '블로그 과몰입 증후군'입니다.
새벽에 기상해서 블로그 글을 쓰는 순간 심하게 몰입해 버립니다. 남편 아침 식사 챙겨줘야 한다는 사실을 잊어요. 셔츠 다림질도 안 해 놓았으면서도 블로그 글쓰기와 댓글 달기. 단톡방에 글 올리기를 하고 있었던 거죠.
'남편이 혼자 알아서 챙겨 먹고 갔으면 좋겠는데... 셔츠도 본인이 직접 다리면 좀 좋아?' 이젠 자꾸 바라는 게 늘어갑니다.
사실 제가 오프라인 독서모임을 나간 4월 이후 마트 장 보기도 남편이 다 하고 있는데 여기서 뭔가를 더 바라게 되는 겁니다. 왜 자꾸 바랄까요? 저는 왜 뭔가를 끊임없이 요구하는 걸까요? 이유는 제 시간이 확보되어야 블로그 이웃들도 방문하고 그들과 소통도 하고 댓글도 달고 또 이웃 수도 늘릴 수 있으니까요. 게다가 책도 읽고 생각도 정리하고 글도 써야 하니까요.
이렇게 블로그에 과몰입하면 부작용은 없을까요?
이제 숨 고르기 한 번 해도 좋지 않을까?
제 시간 아껴보겠다고 남편 시간을 함부로 쓰던 저는 지난달 아침에 황당한 일과 마주합니다.
"아이. 진짜."
베이글을 오븐에 넣고 돌리던 남편의 목소리에 짜증이 묻어나 있었습니다.
평소에 저희 남편은 저한테 어떤 불만이나 불평도 말하지 않거든요. 속에 쌓인 거야 많겠지만 그냥 넘어가는 편인데 심상치 않은 소리에 '일 났구나' 싶어서 블로그에 글 쓰다 말고 주방으로 뛰쳐나가 보았어요.
남편이 마트에서 사 온 베이글을 제가 그대로 방치해서 곰팡이가 피어버린 거예요. 12개의 베이글 중 두 개 먹었을 뿐이고요. 게다가 딸아이가 좋아하는 양파 베이글이 더 썩었더군요. 제가 좋아하는 블루베리는 외관상 곰팡이가 안 보여서 제가 비닐봉지 들고 이리저리 살폈거든요. 아쉬운 대로 저라도 먹으려고요. 그랬더니 남편이 두 봉지 다 뺏어서 먹지 말라고 했습니다.
옆에서 지켜보던 저희 딸아이가 "평생 을로만 살던 아빠가 베이글로 갑 됐네."라고 말합니다. 남편도 '갑'이 돼서 좋은지 웃더군요. 하루아침에 '을'이 된 저는 사과했죠. 잘못했을 때는 빠르게 사과합니다. 저는 반성도 잘해요. 실수는 더 많이 하지만요.
반성한 김에 블로그 통계에 가서 지난 글들을 살펴봤어요. 방문자 수가 하루 750여 명 일 때도 있었고요. 그날의 글에 따라 500여 명이 될 때도 있었어요. 이웃수는 1500명이 넘었고 공감의 하트가 100개 이상, 댓글도 7-80개씩 달릴 때가 있었죠. 조회 수도 꾸준히 늘어나기도 했고요. 그럴 때는 신기하기도 하고 기분도 좋아서 다음 날 글 쓰면서 더 잘 쓰고 싶어 집니다.
제 블로그 좌측 하단에는 방문자 그래프가 있었는데요. 그 빨간 그래프가 오늘의 저를 평가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게다가 최근에 시작한 브런치의 경우. 안 읽히는 글은 거의 조회수 변동이 없는 반면 어쩌다 한 두 개는 며칠 만에 8000에서 13000건 이상 조회가 될 때도 있더라고요.
조회수가 더 늘어났으면 좋겠다는 욕심이 생긴 순간. 저는 블로그의 방문자 수를 나타내 주는 그래프를 삭제해 버렸습니다. 욕심이 생기면 제 삶의 주인이 제가 될 수가 없어요. 제 삶의 컨트롤 키를 남에게 주어 버리는 것과 같게 돼요.
욕심이 생긴다는 건 남보다 잘하고 싶다는 것이고, 남과 자꾸 비교하게 된다는 것이 거든요. 그건 제가 처음 블로그를 하게 된 목적에도 반대되는 일입니다. 저는 어제보다 조금 더 나아진 '제 자신의 모습'이 필요해서 블로그를 시작했습니다. 남들과 비교해서 더 잘 나 보이려고 한 것도 아니고, 남들과 비교해서 열등감을 일부러 느끼려고 한 것도 아니에요.
초점은 오로지 '제 자신'에게 있을 뿐이었는데 어느새 망각하고 있었습니다. '베이글의 곰팡이'가 제 어깨를 내리친 '죽비'와도 같이 느껴졌습니다.
재미나게 책 읽으며 생각하고 세상 구경하며 소통하는 삶. 그것을 자연스럽게 블로그에 기록해 나가는 것. 그러면서 브런치도 운영해 보는 것. 그게 지금의 제가 원하는 바람이더군요. 블로그 하면서 살림도 잘해서 더 이상의 '곰팡이'는 만들어내지 말아야겠습니다. 그래야 더 길게 더 오랫동안 글쓰기를 잘할 수 있을 테니까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