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는 어느 계절에 치는 게 좋아?
골프는 어느 계절에 쳐도 좋아.
누군가 처음 시작하면서 나에게 물어봤던 질문에 대한 대답이다.
뭐든 시기는 내 맘이 정하는 것이다. 적정한 때가 물론 있겠지만 그 또한 하고 싶을 때. 그때가 시기라고 본다. 그래서 늦은 시기도 틀린 시기도 없다. 하고 싶고, 할 수 있는 지금이 맞는 때다. 그래서 내가 치고 싶을 때 치는 계절이 가장 좋다는 뜻으로 얘기했었다.
그냥 골프가 좋아 우스갯소리로 한 대답이지만 사실 골프는 계절의 영향을 많이 받는 운동이어서 날씨 좋을 때가 가장 치기 좋은 때이기는 하다. 그래서 추운 날 전지훈련 한다며 해외골프를 찾아 나서는 것이다.
사계절이 뚜렷한 우리나라. 학교 다닐 때 사회 시험문제로 제출되었던 단골 문제. 삼면이 바다에 뚜렷한 사계절이 있는 아름다운 나라 대한민국으로 배웠다. 사계절이 두 계절 정도로 줄어가고 있긴 하지만 여전히 아름다운 나라임은 틀림없다. 골프 얘기하면서 일단 국봉으로 서론을 풀고 시작한다.
그런데 사계절 중에 한여름과 한겨울은 골프 치기에 조금 힘든 계절이다. 그럼에도 골프를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불편하고 힘들어도 골프를 쉬지 않는다. 그때그때 상황에 맞는 준비물이 있을 뿐 멈추지는 않는다.
그렇다면 여름 골프부터 보자. 우리나라 여름이 아열대기후로 바뀌고 있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기온도 많이 오르고 비도 자주 온다. 골프를 시작한 이후로 날씨에 신경을 많이 쓴다. 조업 나가는 사람처럼 기상예보를 여러 개 비교해서 보기도 한다. 비예보가 있는 날은 심지어 구름의 이동방향까지 파악해서 라운드 진행여부를 결정한다.
여름 골프의 대표적인 특징은 티 오프시간이 아주 이르거나 늦은 시간이 인기 있다는 것이다. 태양을 피하기 위한 방법이다. 티오프 시간이 빠른 경우는 해뜨기 전에 시동 걸고 해 뜰 때 골프장에 도착한다. 한낮의 땡볕을 피해 그나마 조금이라도 덜 더운 시간에 시작하는 것이다. 새벽 네시에 골프가방을 메고 나가다 아파트 청소 여사님을 만나면 조금 머쓱하기도 하다. 인력시장 나가는 사람처럼 커다란 보스턴 백을 들고나가는 내가 이상하게 보였을 수도 있다. 내가 골프 치기 전에 그런 사람들은 도무지 이해불가였다. 지금도 내가 누군가에게는 이해불가일 수 있음을 인정한다는 뜻이다.
해질 때 나서는 경우도 있다. 얼마나 골프에 대한 요구가 많은지 여름은 3부 야간을 운영하는 골프장이 제법 많다. 라이트도 야구장처럼 밝게 설치해서 경기하기에 무리가 없다. 다만 이제 눈이 점점 어두워져 똑바로 가는 공 이외의 공들을 따라가기가 어려워 주간 경기보다 공 찾기가 어렵다는 단점은 있다. 그래도 한 여름에는 야간 라운드가 더위를 피하면서 경기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다. 초록색 마당에 큰 라이트가 비추면 마치 그린이 무대처럼 보이기도 한다. 무대 위의 선수가 되어 멋진 플레이를 해보시기를~
어쩌다 보니 한낮 땡볕아래 얼음주머니를 머리에 올려가며 라운드 한 적도 있다. 그렇게 한게임을 치르고 나면 내 다리는 새까매지고 양말 신었던 자리만 하얗게 흔적이 남는다. 맨발로 샌들을 신어도 마치 흰색 양말을 신고 있는 것처럼 경계가 명확하게 보인다. 예전에 박세리가 해저드에 빠진 공을 꺼내기 위해 양말 벗었을 때 그 발목과 크게 다를 게 없다.
실력은 천양지차이지만 다리 색깔은 대동소이하다.
겁도 없이 스타킹도 신지 않고 햇볕을 온몸으로 맞으며 활보하고 다니다 햇빛 알레르기가 생겨 한동안 피부과를 다니며 고생하기도 했다. 한번 호되게 당한 이후로 요즘은 자외선차단 스타킹도 꼭 신고 얼굴에는 썬패치까지 붙이고 복면골퍼가 되어 라운드를 한다. 여름에 피부와 체력을 위해 몇 가지 준비물을 챙겨가는 걸 추천한다.
여름 골프에 있으면 좋은 것들
자외선 패치(여자들 기미예방에 필수, 남자들 안 창피하면 선택)
얼음주머니(뒷목에 대거나 안고 있으면 시원하니 좋다. 결로현상 없는 제품으로 사야 외부가 덜 젖는다.)
얼음 가득 아이스 아메리카노( 클럽하우스에서 주는 일회용 컵으로 들고 나오면 1홀 끝나기도 전에 다 녹아 미지근한 커피가 되어버린다. 텀블러에 얼음 채워 옮겨 담아야 끝까지 시원하다.)
모기 퇴치제(야간 경기에 모기가 출몰하기도 한다. 골프장은 물이 많아서 모기 알도 많다.)
선크림이나 썬스틱(필수 중에 필수. 락카에 있는 곳도 많지만 경기도중 수시로 발라주는 것이 좋다)
손풍기(충전해야 하니 좀 귀찮긴 하지만 유용할 때 있으니 선택사항)
꽁꽁 얼린 이온음료(아주아주 추천템. 갈증해소와 시원함을 동시에 충족시켜 준다.)
챙 긴 모자, 얼굴 덮는 햇빛 가리개(조금 답답할 수 있음. 기호에 따라 선택)
초록 마당 아닌 누런 마당인 겨울 골프는 별로 좋아하지는 않는다. 워낙에 추위를 많이 타기도 하고 몸이 경직되어 제대로 된 스윙이 잘 안 되기 때문이다. 일단 추운 게 싫다. 인간도 계절도 차가운 건 딱 싫다.
그런데 날 좋을 때는 부킹 하기가 하늘의 별따기였던 구장들에서 유혹의 문자들을 보낸다. 어서 오시라며 카트비를 면제해 주겠다고, 4인 플레이 시 1인 그린피를 면제해 준다며 꼬셔댄다. 겨울은 그린피가 가장 저렴한 시즌이다. 수요가 적으니 공급자들이 가격을 내리는 그 유혹을 못 이기고 날씨를 잘 지켜보았다가 바람 없는 영상의 기온일 때 또 달려간다. 겨울에는 하루 이틀전도 부킹할 수 있는 곳이 많다. 핫팩을 배와 등에 붙이고 구스바지에 털모자까지 눌러쓴 채 완전 무장을 하고 누런 마당을 헤집고 다닌다.
겨울 골프에서는 특히 땅이 얼어있는 경우가 많으므로 뒤땅 나는 것을 조심해야 한다. 딱딱한 땅을 잘못 팠다가 손목이 다치는 경우가 있을 수 있으므로 주의를 요한다. 그래서 뒤땅 피하려다 탑핑도 많이 난다. 그린이 얼어있어 평소처럼 잘 친 아이언이 그린맞고 튀어 뒤편으로 넘어가 오비가 나는 불운이 찾아오기도 한다. 그린이 얼어있을 때는 그린 핀을 직접 공략하면 99% 아웃이다. 그린 근처까지 보내서 굴리는 어프러치로 핀에 붙이는 것이 유리한 공략법이다. 골프가 늘 그렇지만 머리로는 알지만 쉽지는 않다. 이래저래 골프 치기 힘든 계절이 겨울인 것 같다. 아무튼 몸이 경직되어 있어서 다치기 쉬우니 조심해야 한다.
한 번은 눈이 많이 내리고 며칠 뒤 라운드를 갔는데 페어웨이와 그린만 간신히 눈을 치워놓았다. 즉, 페어웨이로 가지 못한 공은 거의 행방불명이라고 보면 된다. 눈이 있는 날에는 색깔 있는 공이 눈에 잘 띄어서 좋으니 쨍한 색깔의 공을 사용하는 것이 좋다. 사실 그 정도 눈이 있는 날은 안치는 게 제일 좋다.
그러나 부킹을 몇 주 전이나 길게는 한두 달 전에 미리 하다 보니 부득이하게 눈이 오거나 비가 와도 진행하는 경우가 있으니 알아두고 있으면 좋을 것 같다. 겨울 골프는 방한용품 준비를 철저히 하고 가기를 바란다.
겨울 골프에 있으면 좋은 것들 - 멋 부리지 말고 무조건 따뜻하게 입는다.
핫팩(붙이는 것과 주머니용 모두 있으면 좋다. 배와 등에 붙이고 주머니 양쪽에 쏙.)
따뜻한 차나 커피(이것도 텀블러 이용, 몸이 따뜻해져서 좋다. 한때는 뜨끈한 정종을. 쩝.)
귀마개와 털모자(머리와 귀가 따뜻해야 덜 춥다)
겨울용 양손 골프장갑(내부에 보송보송 털이 들어있는 장갑을 준비하면 좋다. 그립감이 어색할 수 있으니 감안해야 함.)
패딩바지(어릴 땐 겨울에도 치마 입었는데, 따뜻한 게 최고다. 패딩이나 구스바지 강력 추천.)
얇은 옷을 여러 겹 겹쳐 입는다.(상황에 따라 옷의 무게를 좀 더 가볍게 하기 쉽도록.)
어느 계절에 쳐도 다 좋다고 대답은 했지만 사실 봄, 가을이 골프 치기 제일 좋은 때이긴 하다. 그렇다고 골프에 진심인 내가 여름, 겨울에 한 번도 안치고 몸을 굳히고 있을 수는 없으니 여름에는 적당한 새벽이나 야간을 이용해 라운드를 하고 겨울에도 싼 그린피의 강점을 잘 활용해서 친다. 운이 좋다면 이상 기온으로 따뜻한 겨울에 저렴하게 골프를 치기도 한다.
'이렇게까지 복잡하고 힘들게 공을 쳐야겠어?' 싶을 수도 있다. 동반자가 좋고 골프가 좋으면 이 또한 추억이 된다. 최적의 날씨나 최상의 구장 컨디션이 아닌 상태에서 극복하고 연습하면 가장 좋은 날 멋지게 굿샷을 날려 라베를 달성하기 더 쉽지 않을까? 그냥 아무 때나 다 치고 싶어서 그럴싸한 핑계로 마무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