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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홀 - 컨시드와 멀리건

골프 치다 개똥철학

by 뭐 어때

골프를 치다 보면 자주 듣고 쓰는 말이 있다. 처음엔 생소하고 나중엔 친근하게 자주 쓰게 되는 말이기도 하다. 컨시드(Concede)와 멀리건(Mulligan). '오케이!''한번 더!'의 다른 말이기도 하다.


(네이버 사전적 의미)

컨시드 Concede
매치플레이나 아마추어 라운드에서 사용되는 방식이다. 그린에서 퍼터 길이 정도의 짧은 퍼트가 남았을 때 그 퍼트를 성공시킨다는 가정하에 동반자가 ‘컨시드’를 명명하면 홀인 하지 않고 볼을 그대로 집어 홀아웃할 수 있다.


멀리건 Mulligan
샷의 결과가 좋지 않을 때 동반자가 벌타 없이 다시 샷 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을 의미한다. 정식 룰에는 없는 규정이나 일반적으로 아마추어 라운드에서 실력차가 클 때, 동반자가 초보일 때 등 다양한 상황에서 멀리건이 사용된다.


필드에서는 컨시드 존에 들어왔을 때 '오케이'라는 말로 사용된다.

퍼터를 했는데 아깝게 홀컵 근처에서 멈춰 서거나 일정한 테두리 안에 들어왔을 때 오케이를 외쳐준다. 그 말은 다음번에는 넣을 수 있다고 보고 '들어간 걸로 쳐줄게'라는 의미이다. '오케이 거기까지. 인정!' 뭐 그런 느낌이다. 프로 경기에서는 없는 아마추어 경기의 룰이다. 골프장 진행을 지연시키지 않고 적당히 치고 홀아웃 해달라는 데서 비롯된 것 같다. 아마추어 경기에서 컨시드가 없으면 경기 시간은 상당히 길어질 것이다.

여기서 잠깐~!!! 그렇다면 컨시드 존은 어떻게 정할까?

보통 퍼터길이로 정하는 게 일반적이지만 조금 빡빡하게 하는 사람들은 퍼터그립을 뺀 좀 더 짧은 거리에서 오케이를 주기도 한다.(퍼터 그립 포함은 먹갈치, 뺀 것은 은갈치라는 은어 같은 말을 쓰기도 한다.) 이렇게 동반자들끼리 룰을 정해서 하다 보니 가끔 서운할 일도 생긴다. 컨시드 존에 들어온 것 같은데 마크를 하라고 하면 입은 웃으면서 빈정상하는 경우가 생기기도 한다. 일부 구장에서는 분쟁의 소지를 없애고자 원을 그려놓는 곳들도 있다. 원 안에 들어가면 컨시드 인정이 되는 것이다. 그래도 분쟁은 생긴다. 금을 밟았느니, 그림자가 걸쳐졌느니. 너무 타수를 잃고 진행 중인 사람에게는 너그럽게 오케이를 주기도 하고, 박빙의 승부를 겨루고 있을 때는 좀 더 엄격해지기도 한다. 오케이는 상황에 맞게 상대방이 주는 것이다. 본인이 스스로 '오케이 맞지?' 하면서 공을 집는 것은 그다지 좋은 매너는 아니다. 상대방이 말 안 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실랑이는 그만하고 차라리 마크 후 다음퍼트를 고심하는 게 낫다. 뭐든 주기 전에 달라고 조르는 건 좀 없어 보인다.

나더러 오케이 잘 안 준다며 다른 사람들과 치면 다섯 타는 더 줄일 수 있다고 말했던 친구가 있다. 뭐 그렇게 줄여주길 원하면 열 타는 못 줄여 주겠는가. 그렇게 줄이는 것이 무슨 의미일까 싶다. 사실 그래서 나는 직접 나랑 쳐 본 사람의 스코어만 믿는 편이다. 아마추어 스코어는 누구랑 치고 어떻게 치냐에 따라 10타 이상은 차이가 날 수 있기 때문이다. 잘 못 쳐도 룰은 정확하게 하자는 곤조 있는 스타일이다. 옆라이에 걸리거나 내리막 펏일 때는 짧은 거리도 넣기 힘들다. 또 긴 거리를 오케이 받고 홀아웃 하는 걸 당연하게 생각하다 보면 짧은 펏을 해볼 기회가 줄어들어 다음번 퍼팅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억지로 오늘의 한 타를 줄이기보다 다음번 두타를 줄이는 연습을 한다고 생각하는 게 좋다. 이렇게 쓰고 보니 꽤나 엄격하고 재미없게 골프 치는 사람 같아 보이지만 난 매우 유쾌한 사람이다. 진짠데.


여기서부터 컨시드 관련 개똥철학 시작이다. 컨시드 존을 동그랗게 그려놓은 그린을 바라보다 생각했다. concede의 사전적 의미는 '인정하다, 수긍하다'이다. 그렇다면 누군가를 포용하고 인정해 주는 범위가 내 마음의 컨시드라면 그 크기가 얼마일까? 퍼터 한 클럽 길이만큼은 될까?

옹졸하기 짝이 없어 보인다. '그럴 수 있지.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을 거야. 그래! 괜찮아'로 말해줄 수 있는 마음의 크기가 얼마일까 생각해 봤다. 컨시드존이 없는 건 아닐까 싶게 빡빡했던 때도 있었고 세월이 흐름에 이런저런 일들을 겪으면서 그 존이 조금씩 넓어져 가고 있다고 생각한 적도 있다. 사람들과의 관계에 있어서 너그러움이 생겨 온유함으로 '오케이!'를 크게 외쳐줄 수 있는 마음의 컨시드존은 넓어졌으면 좋겠다. 상대를 위해서이기도 하고, 무엇보다 나를 위해서 넓게 품을 수 있는 컨시드 존이길 바란다.

골프 컨시드는 좁게! 마음 컨시드는 넓게!






다음은 멀리건에 대한 이야기다. 이 역시 프로경기에는 없다. mulligan의 사전적 의미는 '두 번째 시도' 정도로 해석된다. 아마추어 경기에서는 실수를 만회해 주기 위해 '한번 다시 쳐봐ㆍ파이팅!' 의미로 한번 더 칠 기회를 준다는 뜻으로 사용된다. 캐디들은 멀리건 남발로 경기가 지연될까 봐 노심초사할 수 있으니 눈치껏 양해를 구하고 해야 한다. 이것 또한 동반자의 배려다. '나 하나만 더 칠게' 하는 것보단 상대방이 '하나 더 쳐 봐'라고 얘기할 때 고맙다는 표시를 하고 호의를 받는 게 맞다.

멀리건을 당연하게 생각하면 안 된다. 18홀 동안 한 번도 안 쓰는 아마추어들도 많아졌고 사실 다시 친다고 초구보다 좋은 샷을 친다는 보장도 없다. 똑같이 치는 경우도 많다. '괜히 다시쳐서 공만 두 개 잃어버렸네' 하는 경우도 적잖다. 그래도 골프는 희망의 운동이라 하지 않았나. 다시치면 잘 칠 수 있을 것만 같다. 실제로 운 좋게 멀리건을 성공적으로 이뤄내기도 한다.

멀리건이 공식적인 것은 아니지만 아마추어 경기에서는 몸이 풀리기 전이나 실수로 잘못 쳤을 경우 사기진작과 기분의 영역을 챙기기 위해 기회를 한번 정도 더 주는 게 일반적이긴 하다.




여기서 멀리건 관련 또 한 번 개똥철학이다.

멀리건이 삶에서도 한번 주어진다면 어느 지점에서 써볼까? 누가 주는 건 아니지만 하루에도 수없이 하는 상상 중에 한 꼭지로 고민해 본 적이 있다. '다시 돌아간다면 언제로 가고 싶어?'라는 질문이라던지 '돈 없는 20대 VS 100억 있는 60대' 둘 중에 고르라는 밸러스 게임처럼 일어나지 않을 일에 상당시간 진지하게 고민해 본 적이 없는가? 난 많은데...

기회가 된다면 난 암환자가 되기 전인 40대 초반에 멀리건을 한번 써보고 싶다. 뭐 20대로 돌려보내달라는 것도 아니니 아주 비양심은 아니지 않은가. 멀리건 주면 그때로 돌아가 어드레스 재정비하고 내 몸을 아끼고 돌봐가며 욕심도 좀 내려놓고 살 수 있을까? 그렇다면 이런 일은 안 생겼을까? 아픈 것이 인과관계가 명확한 형벌성 고통은 아니지만 그때의 나를 생각하면 아쉬움이 많아 반성을 하게 된다.

그때로 돌아가 두 번째 시도인 멀리건을 쓸 수 있다면 오늘의 나는 좀 더 행복했을까?

설마 멀리건 샷을 초구보다 이상하게 치는 실수를 하는 건 아니겠지? 돌아간다면 잘할 수 있을까?


멀리건이 주어진다면 성공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인생에서는 그 누구도 멀리건을 주지 않는다.
남은 홀에 버디를 노리며 사는 맘으로 살아야겠지.



현실적인 듯하면서 참 망상도 많이 하는 유형의 인간이다. 그래도 다행인 건 허무맹랑함 속에서 오랫동안 헤매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잽싸게 이루어질 수 없는 상상의 창문을 깨고 현실 앞에 각 잡고 잘 선다.




골프 치다 이런저런 철학적 사유까지 하다니. 난 T인 듯 F이고 F인 듯 T인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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