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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와 걸을 수 있어 질투 나게 부러운 사람

: 김탁환 [엄마의 골목]

by 윌버와 샬롯

최근 작가 김탁환의 강연을 들었다. 그의 글에 바탕을 둔 영화나 드라마는 봤었는데 정작 그의 책은 단 한 권도 읽지 않았다는 걸 강연장에 들어서야 깨달았다. 강연장 입구에 진열된 작가의 여러 책에 약간 당황스럽기까지 했다. 강연 당사자의 책을 읽지 않고 강연을 들으려니 좀 머쓱하기도 하면서 말이다.


강연을 듣고 나니 작가 김탁환이 더욱 궁금해졌다. 그가 강연 중에 특별히 언급했던 그의 책들을 메모했었고 그중 두 번째로 읽은 책이 바로 '엄마의 골목'이다.



이 책 이전에 작가의 다른 소설 ‘거짓말이다'를 바로 먼저 읽어 다행이다 싶었다. 책에는 소설 '거짓말이다'가 많이 언급되어 있어 책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길을 걸으며 작가가 어떤 생각이었고 그 언급이 그에게 어떤 의미인지 쉽게 알 수 있었다. 의도치 않은 순서였지만 탁월한 우연이다 싶다.


책 겉표지를 완전히 꺼내서 반으로 접힌 부분을 활짝 펴야 지도를 볼 수 있다


책을 거의 다 읽을 때까지도 책 뒤표지에 있다는 지도를 찾지 못했다. 그러다 책 끝부분에서 작가의 동생이 말하는 지도 얘기가 나오자 다시 표지를 찾아봤다. 표지를 완전히 꺼내 두 면으로 겹친 곳을 펼치니 그제야 두 주인공이 걷던 진해 지도가 드러났다. 이렇게 꽁꽁 숨겨 놓다니!

김탁환의 어머니는 섬세한 분이다. 대놓고 내색하지는 않지만 아들을 사랑하는 엄마 마음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다. 이런 어머니가 있었기에 김탁환이 존재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에게서 아들의 어린 시절, 그녀의 옛날 얘기, 그리고 엄마 삶 모두는 아니지만 그 언저리라도 생생히 들을 수 있는 그가 부럽고 질투 났다. 엄마의 이야기는 그의 이야기이기도 하며 그의 역사가 되기도 할 것이다.


진해로 가는 고향 기차를 타면 그를 기다리고 있을 엄마가 아직은 분명 계실 것이고, 함께 걸을 때처럼 화수분처럼 엄마의 이야기도 계속 이어질 것이다.

기행 에세이지만 사진 하나 안 보여 이상하다 했는데 책 말미에 사진이 몰아넣어져 있다. 이런 방식도 나름 괜찮은 편집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글보다 사진에 집중하게 되는 기존의 이미지 중심이 아니어서 글에 더 몰입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모두 읽고 나서 마무리로 사진을 보게 되니 '아, 여기가 그곳이구나' 되새김하며 책이 다시 정리되는 느낌이었다.


대화는 그렇게 나눴지만 글은 사투리 없이 가려 한다


일부러 평소 모자가 쓰는 사투리로 글을 옮기지 않았다고 작가는 말했지만 내겐 아들의 말투가 영 어색했다. 모자간의 대화인데 아들 말투는 너무나 공적인 대화처럼 딱딱하게 다가왔다. 마치 실제 대화가 아니라 소설 속 가공의 인물 이야기처럼 느껴졌다. 말투가 그러니 이 얘기가 실제 어머니가 말한 건지 소설가답게 그럴싸하게 가공이 된 건지 혼돈스럽기도 했다. 작가의 의도대로 현실 속 그들의 말투나 분위기는 어땠을지 상상하게 했다. 서로가 곰살맞은 일상은 아닐 것 같지만 그래도 그들은 무뚝뚝함 속에 진득한 속정이 있는 그런 모자지간이 아닐까.

작가의 말


나의 어린 시절 골목을 작년 겨울 엄마 기일에 형제들과 걸어봤다. 허름한 주택이 옹기종기 있던 그곳은 최근 재개발로 별천지가 되었다. 빽빽하고 높은 아파트로 훤하던 하늘도 가리어졌다. 개발이 더딘 곳이었던지라 발전된 모습이 반갑기도 했지만 예전 내 어린 시절의 골목은 사라져 그 흔적조차 찾을 수 없어 아쉽기도 했다. 골목에서 날이 어두워질 때까지 술래잡기하던 그곳을 가보고 다시 기억을 더듬고 싶다는 생각을 오래도록 했었다. 그런데 너무 늦어버렸다. 내가 너무 늦게 찾아것일까.


이 책은 엄마와 함께 꼭 걷고 싶게 하는 에세이다. 작가처럼 함께 걸을 수 있는 엄마가 현재는 없어 슬프고 그래서 내 어린 시절과 그녀의 삶을 다시는 들을 수 없어 허전했다. 더 늦기 전에 엄마와 함께 부디 걸어보라는 작가의 말이 내게는 소용없으니 어찌할까.

나 역시 걷는 걸 무척 좋아하는 사람이다. 비록 엄마가 아니더라도 누군가와 옛일을 반추하며 함께 걷고 싶다. 진해를 아직 가보진 않았지만 언젠가 가보게 된다면 이 책의 지도를 꼭 쥐고 따라 걸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때 내 옆에는 누가 있을까. 누가 나랑 함께 걸으며 골목 이야기를 하게 될까. 찬란한 진해 벚꽃을 기대해 보며 그날을 꿈꿔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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