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맞다!
너만 씻지 말고 물통도 샤워 좀 시켜줘라!!
아! 맞다!
아침에 엄마가 챙겨주신 물통
가방 옆에 조용히 걸터앉아서
내가 목마를 때
모자 벗어 물 먹여주는
소중한 내 친구인데도
집에 돌아오면
가방부터 던져놓고
너의 존재를 까맣게 잊어버린다
저녁 설거지 시간
매일 똑같은 엄마 목소리
왜 물통이 없는 거야??
아! 맞다!
매일 똑같이 집에만 오면
왜 생각이 안 나는 거야!!
아이들이 등교하기 전 아침마다 내가 꼭 챙겨야 하는 물건은 바로 물통이다. 학교에서 정수기 옆 일회용 물컵이 사라지면서, 개인 물통 가져가야 물을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위생적으로나 환경을 위해서나 좋은 방법이라 나는 환영하는 바이다. 그런데 내가 아이들보다 먼저 출근하는 입장에서 이것저것 바쁘게 챙기다 보면, 가끔씩 애들 가방에 물통을 넣는 것을 잊을 때가 있다. 그러면 아이들도 잊고 그냥 학교에 가 버려서 물을 제대로 못 먹을까 봐 미안해지기도 한다.
이렇게 매일 아침 물통에 물을 담아 가려면, 전날 저녁에 물통을 깨끗이 씻어 놓아야 하는데 이게 참 잘 안된다. 둘째인 딸도 가끔씩 잊을 때가 있긴 하지만, 거의 대부분은 집에 오자마자 가방에서 꺼내어 싱크대에 담가 놓는다. 어린이집 때부터 훈련이 잘 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첫째인 아들은 참 잘 안된다. 저녁 설거지 할 때마다 늘 아들 물통이 없어 꺼내 오라고 말하기가 이젠 입이 아플 지경이다. 진짜 어쩌다가 내가 말을 안 했는데도 물통이 보일 때가 있으면 오히려 놀라울 정도다. 그도 그럴 것이 아들은 집에 오자마자 가방을 그냥 휙 던져버리고 놀기 바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 번은 이 버릇이 고쳐보려고 작전을 써 보았다. 내가 물통을 씻어주지 않아 며칠 동안 못 쓰면 불편해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였다. 그래서 일부러 딸내미 것만 씻어주고 아들에게 잔소리도 하지 않았다. 그랬더니 웬걸, 진짜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가방에 그대로 넣은 채 꺼내오지 않는 것이다. 참다못해 내가, 왜 물통을 일주일 동안 안 가져오냐고 했더니 아들이 대답은 고작 이것이었다.
"아... 내가 그렀어요?"
물을 못 먹어서 답답하지 않았냐고 물으니, 평소에 잘 안 먹어서 괜찮았단다. 속에서 천불이 났다. 평소에 물을 자주 먹으라고 말해도 대답만 네네 잘할 뿐이었던 것이다. 뭐 진짜 답답했을 땐 친구 컵이라도 빌려서 먹었겠지만, 내가 말을 꺼낼 때까지 그냥 놔두는 저 버릇은 진짜 잊어버려서인지 그냥 귀찮아서인지 도통 모르겠다.
오늘 저녁에도 분명히 물통 어디 있냐고 물으면, 마치 처음 있는 일인것마냥 '아~~맞다~~' 하면서 가지고 오겠지? 이런 아들의 능글능글함을 이제 그냥 인정하고 마음을 비워야 하는 걸까? ㅎㅎ 물통만 나 몰라라 하는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다른 숙제나 준비물은 챙기니 다행이라 생각한다. 그런데 혹시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매일 저녁 내가 이 멘트를 해야 하는 건 아닌지 두렵기도 하다.
"아들~~ 물통 어디 있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