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강이 파랑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이유는 많았지만, 가장 큰 것은 대통령 탄핵을 지지하는 시위를 하러 한남동 대통령 관저 근처에 갔을 때 받은 충격이었다. 정치적 신념을 떠나, 대한민국이라는 공동체에서 살아가는 시민으로서, 그날 마주한 장면들은 쉽게 잊히지 않았다.
사실 나는 태극기 집회가 어르신들의 전유물이라고 생각해 왔다. 전쟁과 격변의 시대를 거친 그 세대가 가지는 사고방식은 쉽게 바뀌지 않을 것이라 여겼고, 그들의 신념을 존중하되 변화시키기는 어렵다고 여겼다. 그런데, 그날 나는 예상치 못한 장면을 마주했다.
지하철에서 내린 한 젊은 남성이 가방에서 태극기와 성조기를 꺼내 들었다. 정장 차림도 아니었고, 오히려 평범한 대학생이나 직장 초년생처럼 보였다. 나는 무심결에 그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마치 꼰대처럼. ‘아니, 저렇게 젊은 사람이?’
충격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우리가 시위하는 장소를 지나가던 윤석열 지지자들, 특히 젊은 남녀들이 비아냥거리며 우리 쪽을 향해 욕설을 퍼부었다. 그들의 조롱 섞인 웃음소리는 단순한 의견 차이를 넘어, 명백한 적대감으로 느껴졌다.
그날 밤, 귀가하는 길에 또 다른 일이 벌어졌다. 어떤 남성이 우리를 향해 "중국놈들!"이라고 외쳤다. "빨갱이들!"이라는 말도 뒤따랐다. 순간적으로 머릿속이 멍해졌다. 황당한 마음에 반사적으로 "아니라고!" 소리쳤다.
그러자 그 남자는 나를 향해 가운데 손가락을 내밀었다. 생애 처음으로, 그것도 면전에서 직접 받아본 모욕이었다. 나도 모르게 손이 올라갔다. 같은 제스처를 돌려줄 뻔했지만, 순간 멈췄다.
내가 이런 행동을 할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혐오를 혐오로 되갚는 것, 그것이 과연 옳은가? 나는 그들의 행위에 놀랐고, 동시에 나 자신의 반응에도 놀랐다. 분노보다 더 깊이 남은 것은, 끝없는 질문이었다. ‘그들이 말하는 빨갱이가 나인가?’
나는 단지 내 신념에 따라 행동했을 뿐인데, 대통령 탄핵을 지지한다는 이유로 ‘빨갱이’라는 낙인이 찍혔다. 그렇다면, 그들이 말하는 ‘빨갱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정말 우리가 빨갱이인가? 아니, 그들이 말하는 좌파란 무엇인가?
‘좌파’라는 용어는 프랑스혁명 당시 국민의회에서 개혁을 주장하는 의원들이 의장석 왼편에 앉았던 데서 유래했다. 이에 반해, 기존 체제를 옹호하는 의원들은 오른쪽에 자리했다. 단순한 좌석 배치에서 비롯된 개념이 지금까지도 정치적 이념을 나누는 기준이 되었다는 점은 흥미롭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좌파’라는 단어가 본래의 의미를 벗어나, 종종 ‘빨갱이’라는 비하적 표현과 동의어처럼 사용된다. 특히 보수 진영에서는 자신들과 반대되는 정치적 입장을 가진 사람들에게 이 단어를 붙이며 배척하는 경우가 많다.
빨갱이라는 말 자체는 공산주의자나 사회주의자를 경멸적으로 지칭하는 표현이다. 과거 독재 정권은 정적을 탄압하기 위해 이 용어를 사용했고, 그 잔재는 여전히 남아 있다. 하지만 대한민국은 공산국가가 아니며, 민주주의를 유지하는 국가다. 그렇다면 정권을 비판하고 견제하는 시민들이 ‘빨갱이’로 몰리는 것은 시대착오적인 일이 아닐까?
지금 대한민국의 정치적 색채는 정당별로 명확히 구분된다. 더불어민주당은 파란색, 국민의힘은 빨간색이다. 흥미롭게도, 서구에서는 보수 정당이 주로 파란색을, 진보 정당이 빨간색을 사용하는 반면, 한국에서는 그 반대다.
하지만 정치적 신념이 단순한 색깔로 규정될 수 있을까? 나는 더불어민주당을 지지하는 편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가 ‘빨갱이’는 아니다. 나는 민주주의를 신뢰하며, 법과 제도를 통해 정당한 비판을 할 수 있는 시민일 뿐이다. 그러나 지금의 정치 환경은 ‘우리 편이 아니면 적’이라는 극단적인 이분법으로 가득 차 있다.
우리는 다양한 생각과 가치관을 존중하는 민주주의 사회에 살고 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너는 우리 편이 아니니 적’이라는 편 가르기가 더욱 심화되고 있다.
그날 마주한 젊은이들의 눈빛을 떠올린다. 그들은 확신에 차 있었다. 그들 역시 자신들의 믿음이 옳다고 굳게 믿고 있었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나는 그들을 향해 욕설을 내뱉고 싶지는 않았다. 대신 질문을 던지고 싶었다.
우리는 언제까지 서로를 ‘빨갱이’와 ‘수구꼴통’으로 나누며 살아야 할까? 우리의 색깔은 빨강과 파랑뿐일까? 아니, 그보다 더 넓고 다양한 스펙트럼이 존재하는 것은 아닐까?
나는 그들이 던진 혐오를 그대로 되돌려주지 않기로 했다. 그리고 가운데 손가락을 거뒀던 것처럼, 나는 또 다른 방법을 선택하고 싶다. 분노가 아닌, 질문을 던지는 것.
우리는 과연 어떤 색깔을 가진 사회에서 살아가길 원하는가? 우리의 색깔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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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운데 손가락을 건네다가 거둬들인 후 집에서 신랑에게 말을 했었다.
신랑은 내가 긁힌 이유가 바로 나의 조상 때문이라 했다. 나의 성씨의 조상은 중국에서 온 무관이었다고 하던데 그래서 긁힌 게 아니냐고, 그들의 통찰력에 혀를 내둘렀다며~ 그들이 뭐라고 하든 긁히지 않으면 된다는데...
정말 내가 긁힌 이유가, 수백 년 전 중국인 조상 때문인지 아니면 상식적이라 믿었던 세상에 대한 배신감 때문인지 알 수가 없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