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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월 Mar 06. 2024

머리를, 고랐습니다.

성질 급한 경상도인

모임에 나갔습니다. 지난주에도 보고 이번 주에도 모이게 되었습니다. 

지인 한 분이 고맙게도 제 헤어스타일이 바뀐 것을 알아봐 주십니다. 


"어, 쌤! 머리 스타일 약간 바뀌었네요! 자르셨어요? 젋어보이네요."


"진짜요? 고마워요. 미용사에게 '밑에 조금만 고라주세요'라고 했는데, 이렇게 많이 잘라 버렸어요. 이렇게 짧게 하려던 건 아니었는데 말이죠."


"??? 고라주세요. 가 무슨 말이에요?"


"고르다. 는 말이 여긴 없나요? 끝에만 살짝 자르는 거 말하는 건데요."


"아~, 그런 건 보통 다듬다고 하죠. '머리끝만 살짝 다듬어 주세요'라고요."


이 말을 들은 순간, 저는 의심했습니다. 내가 "머리 살짝 고라주세요."라고 해서 미용사님이 내 말을 못 알아듣고 그냥 잘라 달라는 줄 알고 좀 많이 자른 게 아닐까 하고요. 


겨울이라 목을 드러내고 싶지 않아서 끝만 고르고 싶었는데, 머리카락 끝이 목 윗부분까지 올라가 버렸거든요. 미용사님이 처음부터 많이 잘라버려서 제가 미쳐 손 쓸 수도 없었습니다. 

완성품이 썩 나쁘지는 않아서 컴플레인하지 않고 그냥 미용실을 나왔지요. 

게다가 오늘 젊어 보인다는 치레까지 들으니 더 위로가 되었습니다. 


경상남도 제 고향에서는 머리끝을 다듬을 때 늘 

"머리끝만 좀 고라주세요."

라고 합니다. 그러면 가위로 머리카락 길어 나온 부분만 살짝 정리하는 수준으로 서로 이해합니다. 


옆에 앉아있던 다른 분이 말합니다. 

"원래 '고르게 해 주세요'인데 경상도에서는 말을 줄여 쓰니까 '고르게 해 주세요'를 줄여서 '고라주세요'라고 하는 것 같아요."


듣고 보니, 그런 것 같습니다. 


물 좀 부어 주세요. 도 물 좀 봐-주세요.라고도 하는데, 유사한 사례인 것 같습니다. 

성격이 급한 경상도 사람들은 말을 최대한 단축해서 하는 경향이 있으니 말입니다. 




머리 관련해서 이야기하다 보니 다른 사례가 또 떠오릅니다. 


이사 와서 사귄 사람 중에 단발머리를 항상 풀고 다니는 여성분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여름날에는 머리를 한 갈래로 묶어서 온 것이었어요. 그 모습도 보기 좋아서 말했지요. 


"오늘은 머리를 참하게 짜맸네요. 예뻐요."


"네? 뭐라고요? 머리를 뭘 어쨌다구요?"


"예쁘게 잘 짜맸다구요!"


"짜매...뭐시기가 뭐예요? 제 머리에 뭐 묻었나요?"


"아, 아니고, 예쁘게... 음... 뭇깠다고요!"


"뭇깠다???.. 아~ 묶었다! 머리를 예쁘게 묶었다고요?"


"네."


"근데 아까 짜매..뭐시기는 뭐예요?"


"짜매다.는 말이 없나 봐요. 묶는다는 말을 경상도에서는 짜매다.라고 하거든요. 저는 다 아는 말인 줄 알았어요."


"하하, 하나 배웠네요. 짜매다는 묶는다는 말인 거요."


저는 이때 큰 충격이었어요. '짜매다'라는 말이 사투리라고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거든요. 


'보따리 끈을 꽉 짜매라' 

'머리 안 흘러내리게 꽉 잘 짜매라' 

'바람 안 들어가구로 코트 끄네끼 단디 짜매고 댕기라' (바람 안 들어가게 코트 끈 잘 여미고 다녀라)


'짜매고' 다녀야 안 풀리고 튼튼하게 잘 묶었다는 느낌이 듭니다. 그냥 묶는 건 왠지 기분에 금방 풀릴 것 같고 흘러내릴 것만 같습니다. 

안 '짜매고' 그냥 '묶어도' 잘 고정되어 안 흘러내린다는 느낌을 나도 곧 가지게 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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