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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월 Mar 20. 2024

경상도 사람도 모르는 경상도 말

본토박이 경상도 엄마와 딸의 전화 통화

띠리리리리~


- 여보세요?


- 여보세요? 누꼬?


- 여보세요 엄마, 내다. 막내이


- 아, 막내이가? 니 목소리가 너거 언니들하고 똑 닮았네. 누가 눈지 못 알아묵겄네. 니는 별일없제? 아~들도 잘 있고?


- 어, 내야 별일없지. 아~들도 잘 지낸다. 엄마는? 별일없나?


- 내야 뭐 사는게 만날 똑같지. 만날 그날이 그날이고 뭐. 무신 특별한 일이 있나 오데


- 특별한 일이 없이 똑같은 날인기 좋은 기다. 별일이 있으면 그기 좋은 기 아니다 엄마 나이에는


- 그거는 글타. 내한테 특별한 일이라캐바야 내 아픈 거 말고 있겠나? 근데 니는 언제 함 오노? 니 얼굴 본지가 가맣다. 얼굴 잊자뿌겠다. 요번 설에는 오나?


- 엄마! 요번 설에도 못 가겠다


- 맞나? 와? 저번 추석에도 안왔다아이가?  와 몬오노?


- 엄마, 이 문디같은 코로나땜시 여러 사람이 모이믄 안된다 안카나? 그래서 이번에도 안갈라꼬. 혹시 우리 식구 넷이서 이리 저리 왔다갔다 했다가 혹시 병이 옮거나 옮기거나 하믄 우짜겠노? 안 글나?


- 것도 글타마는, 니 얼굴 안본지가 하도 오래되가 보고싶어가 그라제. 이 문디같은 코로난가 뭣인가는 언제 없어지겠노! 어데 나가도 몬하고 답답해가 내사 마 똑 죽겄네. 


- 엄마, 그래도 오데 함부로 나다니지 말고 집에 가마 있으야 된데이. 알겄나?


- 안다! 아는데, 그래도 명절 앞인데 목욕탕 가서 때도 좀 밀믄 좋겠끄마는, 밖에 나다니지도 못하겠고 또 어지러브가 혼자 때밀다 엎어질까바 걱정도 되고 해싸가, 몸이 지글지글 한다. 내가 젊었을 때, 너거 할배 칠팔십 노인이었을 때는 내가 너거 할배 때도 밀어주고 했는데. 너거 할배는 그리 목욕을 안할라하데. 하도 안 씻어가 늙어가 쪼글쪼글한 몸에서 허연 비듬이 막 떨어지는기라. 그래 내가 추즈버갖고, "아버님요 때 좀 미입시더 등드리서 허연 때가 막 떨어집니더"하이 너거 할배 머라카는 줄 아나? "야가 머라캐샀노? 까풀막진 등드리서 먼 때가 떨어진다카노? 하도 까풀막지가 가만 있으도 때가 지질로 떨어지나온다아이가? 그러이 부로 때밀 필요가 없는기라" 이카는 거 있다아이가! 내 참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히가꼬. 너거 할배는 그리 때미는 거를 싫어하데. 근데 때를 안밀어도 너거 할배는 얼굴캉 몸캉 허여이 해갖고 인물만 좋드라마는. 맨날 빠닥 빠닥 씻는다꼬 인물이 좋아지는 거는 아인갑드라 허허. 


까풀막지다? 까풀막지는 기 먼 말이고? 내는 첨 들어보는데?


- 머? 니는 까풀막진다는 것도 모리나? 니는 갱상도 사람이 아닌갑네?


- 엄마, 갱상도라도 까풀막지다는 말 아는 사람 벨로 없을구로? 그런 거는 엄마같이 나이 좀 든 아지매나 할매들이나 알지, 요새 젊은 사람들은 모린다. 나도 오늘 엄마한테 첨 듣는데?


- 아이고, 얄궃어라. 우째 까풀막진다는 말도 모리노? 절벽맹키로 빳빳한 거를 까풀막진다, 칸다아이가?


- 절벽같이 빳빳한 기 먼데?


- 아따 가시나 말귀 참 몬 알아묵네! 거 와 절벽이 딱 꺽이가  벽 맹키로 딱 서 있는 거 같은거 있다아이가? 


- 아, 몰라 먼 말하는지 모르것다. 고마 대충 알아묵으께. 억지로 설명할라 하지 마라. 됐다


- 문디, 지가 내 말도 몬 알아묵음시로 내가 말을 잘 몬하는 거 같이 말하는 거 바라. 아나 됐나. 나도 안 할란다. 젊은 너거가 머 콤삐딴가 머시긴가에다가 함 치보라매. 콤삐따에 나와있을지 아나?


- 엄마, 컴퓨터에도 어설픈 사투리같은 거는 안나온다. 까풀막지다는 말이 나오겠나? 내가 마 대충 알아들으께. 할배가 등이 까풀막지가 때 안나온다했다는 기제? 뭐 알겠다. 


- 지랄, 가시나. 엄마 옛말 하는 거 듣기 싫어가 글카제? 너거도 늙으봐라. 자꾸 옛날 일만 생각나고 옛말만 해진다카이. 너거는 안즉 젊어서 모린다. 난~주 엄마 나이 돼갖고, 아이고 울 엄마가 그때 글카드마는 그말이 이말이었는가베, 하는 날이 올기다. 내 말이 맞나 안맞나 함 두고 바라.


- 눼눼 엄마요, 알겠심더. 내 엄마 옛말하는 거 다 들어주끄시. 내 전화할 때마다 생각나는 야그 있스믄 또 하소. 엄마 말 딸래미가 들어주지. 누가 들어주겠노, 그쟈? 그나저나 엄마, 이번 설에 내 안간다고 울지 마래이. 설 지나고 환자 수 좀 줄믄 여러 사람 모이는 거 허락해줄끼다. 그때 유서방캉 엄마 보고싶어하는 아~들 다 델꼬 꼭 가꾸마. 알겠제? 기다리래이


- 오이야, 어서 빨리 이 문디같은 병이 가뿌야 될낀데. 그래야 달띠같은 울 딸 얼굴도 보고 내가 업어 키운 손지손녀도 보제. 아~들한테 할매가 보고싶다고 전해도고. 갸들 얼굴이 눈 앞에 가물가물한다. 어휴~


- 엄마 우나? 


- 자꾸 서글픈 생각이 들고 눈물이 찔끔 찔끔 난다. 내 죽기전에는 니 오겠나?


- 실데없는 소리는! 아픈데도 없는데 와 죽는단 말이고? 쪼매만 있으믄 내 간다. 갈 수 있을기다. 보고싶어도 쪼매만 참아라. 전화 자주 하께. 알겠제?


- 오이야. 알겠다. 잘 지내고. 또 전화해래이


- 어, 엄마. 잘 살아리. 또 전화하께. 끊는데이. 




포털 사전을 검색하니 '까풀막지다'라는 단어가 검색이 된다. 경상도 사투리로 '가파르다'는 뜻이란다. 우리 할아버지가 '등드리가 까풀막지가 때가 저절로 떨어진다'고 했던 말은 그러니까 '등이 절벽처럼 가팔라서 때도 등에 붙어있지않고 미끄러떨어진다'는 뜻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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