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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재 Jun 18. 2022

깊은 물에서 헤엄치기

송정해수욕장과 피츠제럴드의  「헤엄치는 사람들」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곳은 깊은 물이다. 2021년 겨울, 전염병이 기승을 부리고 가까운 사람과 하나 둘 멀어져 갈 때, 나는 깊은 물속으로 잠기는 꿈을 자주 꿨다. 행위예술가 데이비드 워나로비츠의 회고록 「가솔린 냄새가 나는 기억들」 속 한 구절을 읽은 뒤에는 더 자주.

 

 8번가의 하룻밤 7달러짜리 호텔에서 다리를 벌려 번 돈이 남으면, 나는 포트 오소리티 버스 터미널까지 걸어가 티켓 부스 유리에 그려진 지도의 다양한 동네를 살펴보았다. 그중 물이 고여있는 지역을 골라 표 값을 지불하고, 버스에 올라 교외의 호수나 연못이 보일 때까지 타고 갔다. 그러고는 정류장이 아닌 곳에서 멈추지 않으려는 기사와 실랑이를 벌이며 내렸다. 버스가 떠난 뒤, 나는 곧장 길을 넘어가 목이 잠길 때까지 물속으로 잠겼다. 결코 옷이나 신발을 벗지 않은 채. 나는 몇 시간이고 떠다니다가, 다시 도로를 올라가 히치하이킹을 하거나 버스를 잡아타서 도시로 돌아오고는 했다.




송정해수욕장에서 수영한 뒤 읽는

피츠제럴드의 「헤엄치는 사람들」


 처음 바다에 나가 수영할 때는 몹시 겁에 질렸다. 발이 닿지 않는 깊고 차가운 물 위로 어설픈 발장구를 쳤다. 입으로 짠 물이 들어오고 낡은 물안경 때문에 앞이 잘 보이지 않았다. 밀폐된 공간에 갇힌 듯한 숨 막힘이었다. 그때 수영 동호회 무리 중 누군가 다가와 스노클 쓰는 법을 알려주었다. 막힘없는 바다에서 수영하려면 전방을 주시해야 한다고 가르쳐주었다. 나는 어린애처럼 기대지 않으려 애썼지만, 모르는 사람이 다가와 헤엄치는 법을 알려주는 경험은 마치 바다로부터 받는 환대처럼 느껴졌다.


 나에게 스노클 쓰는 법을 알려준 사람이 동호회에 나오겠냐고 물었다. 나는 다음 주 모임에 나와보겠다고 다짐을 두었다. 물론 그러지 않을 수도 있다. 누구 하고도 어울리고 싶지 않다며 나만의 심연에 잠길 수도 있다. 그래도 지금은 그 무리와 같이 헤엄치는 물이 따뜻했다.

 

 누구나 바다로 가면 굽은 어깨가 펴지고 좁았던 마음이 열리는 경험을 하기 마련이다. 피츠제럴드도 단편소설 「헤엄치는 사람들(The Swimmers)」는 아내를 따라 파리에 살고 있는 은행원 헨리가 바다에서 만난 미국인 여행객에게 수영을 우연히 배우면서 느끼는 심경 변화를 보여준다.


 헨리는 물에 빠진 아가씨를 구하려고 물속으로 뛰어들지만, 자신이 헤엄을 칠 줄 모른다는 사실을 처음 깨닫고 그녀와 같이 구조된다. 사실 그 아가씨는 수영이라면 사족을 못쓰는 미국인으로, 오로지 헤엄치기 위해 남프랑스로 왔다. 언제든 개장하는 풀을 갖춘 크루즈를 타고. 그 인연으로 아가씨에게 헤엄치는 법을 배우며 일주일간의 사투 끝에 마침내 스스로 물에 뜨게 된 헨리는 불현듯 오랜 파리 생활을 청산하고 고향 미국으로 돌아가기로 마음먹는다.


그는 조국의 도덕적 혼란을 버리고, 그 대신 프랑스의 전통과 지혜를 선택한 것이다. 파리에서의 그 사건이 있은 이후로 우선 이해하고 용서하는데 노력을 기울여, 연애 유희와는 다른 가정이라는 것을 어디까지나 놓치지 않으려 힘썼으리라. 그런데 수년 전부터 여태까지 인연이 없었던 눈부실 정도의 건강을 얻은 지금에 이르러, 비로소 그는 진정한 자신의 기분을 발견한 것이다. 건강이 그를 해방시켰다. 그는 여전히 허무감을 느끼면서도, 8년 전 한 현명한 프로방스의 소녀를 잃지 않으려 굳이 포기한 한 남성으로서 자아를 다시 되찾은 것이다.
-F. 스콧 피츠제럴드, 「헤엄치는 사람들」


 하늘을 바라보니 두루미 한 마리가 회색 새벽하늘을 반으로 가르며 날고 있었다. 두루미라고 확신한 이유는 사선으로 펼친 날개에 비해 다리가 몹시 길고 가늘어, 마치 화살표 하나가 허공에 떠있는 듯 보였기 때문이다. 나는 그 화살표를 하나의 이정표, 앞으로 떠나게 될 여정에 대한 암시로 받아들였다. 어디로 향할지는 모르겠으나 계속 이렇게 헤엄치고 싶었다. 내 차가 닿는 거리의 바다를 누비고 싶었다. 깊은 물속으로 잠기고 싶었다. 그런 생각을 하며 화살표 두루미가 사라질 때까지 물 위를 떠다니다, 다시 몸을 뒤집어 물, 깊은 물속으로 헤엄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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