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장-2) 조재범 성폭행 사건 그 후 취재 이야기 두 번째
말 한마디를 꺼내기 어려웠지만 '그래도 해야겠다, 뒤로 물러날 곳은 없다'는 것을 알기에 용기를 내 설득을 시작했다.
“선생님. 어떤 말씀이신지 충분히 이해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일을 묻어두고 간다면 더 나은 내일을 기대할 수 있을까요. 세상을 통해 우리의 어려움을 알려 조금이라도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 바꿔보자고 하는 것입니다!"
"어렵고 힘들다는 것 알지만 그래도 세상에 외쳐야 더 큰 메아리가 돼서 돌아오지 않을까요? 꼭 부탁드리겠습니다”
나는 며칠간 관계자분에게 제보 요청을 이어갔다. 그리고 결국 인터뷰를 하시겠다는 답이 왔다.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는 말은 딱 이럴 때 쓰는 것일 것이다.
인터뷰 당일은 정말 추운 한겨울 밤이었다. 찬바람이 쌩쌩 불고 해가 넘어서 어둠이 짙게깔린 저녁에 나는 택시에 몸을 맡기고 약속 장소로 향했다. 도착하자마자 전화를 드리니 의아한 광경이 내 눈 앞에 펼쳐졌다. 당초 제보를 한 분에게서만 받기로 했지만 현장에 도착하니 무려 세 분이 함께 나오신 것이다. 용기를 내주신 분들에게 나는 감사 인사를 건넸고 인터뷰를 하기 위해 함께 자리를 이동했다.
제보자 분들은 한 시간 동안 여러 문제들을 대해 알려주며 그동안의 속상함을 토해냈다. 얘기하고 싶어도 마음껏 할 수 없던 그 마음이 얼마나 답답하고 힘들었지... 또한 그런 환경 속에서도 꿋꿋하게 훈련을 이겨내온 선수들은 또 어떨지 실감이 되지 않았다. 그렇게 인터뷰 후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나는 어떠한 말도 할 수 없었다. 과연 이 기사를 어떻게 풀어야 할 것인지부터 또 한번 거대한 현실의 벽에 부딪혀야만 하나라는 원망 섞인 목소리까지 내 마음 속을 후벼팠다.
다음날에는 떨리는 마음으로 빙상연맹에 연락했다. 해당 제보에 대한 해명을 듣기 위해서 였다. 기사를 낼 때 한쪽 편이 아닌 양쪽의 입장을 모두 충실하게 듣고 작성해야 하는 것이 기본이자 원칙이기 때문이다. 과연 답변을 해줄까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연맹 측 관계자는 의외로 차분하게 대응했다. 내게 질문을 먼저 듣고 난 후 몇 시간 후 다시 답변을 준비해 하나씩 입장을 전했다.
이제 이 어마어마한 양의 소스들을 기사화 할 차례. 나는 3일간 새벽 3시경까지 매일 기사를 여러 차례 수정해가며 원고를 작성했다. 기사를 쓰기 시작하기 전엔 어떻게 써야 하나라는 막막함이 앞섰지만 막상 쓰기 시작하니 의외로 머릿 속에 있던 말들이 술술 풀려갔다.
기사를 모두 완성하고 나니 A4 6장 분량의 엄청난 양의 글이 내 눈앞에 펼쳐졌다. 보통 기사를 내면 기획기사라고 하더라도 많아야 2장에서 2장 반 정도가 최대인데 그 점을 감안하면 도무지 기사를 하나로 낼 수 있는 분량이 아니었다. 고민을 잠시 하던 나는 기사를 두 개로 나눠 정리해 송고했다. 송고버튼을 누르고 난 후 나는 긴 한숨을 내쉬었다. "드디어 끝냈다..."
몇 시간 후 편집부에서 전화 한 통이 왔다.
“박영진 기자님 기사 봤는데요, 이거는 쇼트트랙 쪽 사건하고는 다른 얘기인데요? 그리고 둘로 내보낼 수 없을 것 같은데요?”
편집을 놓고 본격적인 전쟁의 시작이었다. 취재하시느라 고생했다는 이야기는 전혀 들을 수 없었고 당시 쇼트트랙 팀 쪽에서 터진 성폭행 문제와는 다른 문제인 것 같다면서 여러 이유를 들며 기사에 대해 대대적으로 본격적으로 얘기가 오고 가기 시작했다.
워낙 그 때 많이 속상했고 결국 펜대를 내려놓게 했던 일이라 최대한 빨리 머릿 속에서 지우려 했기에, 지금은 아주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는다. 대략 기사 편집 방향을 잡는데까지 일주일 가까이 걸렸던 것 같다. 스포츠 기사 특성상 스트레이트 기사나 견해가 들어가도 일반적인 수준의 칼럼 이다보니 보통은 거의 몇 시간 길어도 하루 정도 밖에는 걸리지 않는다. 그만큼 이 기사를 두고 나와 신문사의 의견 차는 매우 컸다.
나는 이 기사를 두 편 또는 세 편의 연재 기사로 꼭 내고 싶었다. 그 이유는 분량도 있었지만 보다 많은 사람들이 지속해서 피겨계와 빙상계의 문제와 어려움에 대해 주목하고 발전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바랬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을 신문사는 이해해 주지 않았다. 사회부와까지 함께 검토했다면서 내 생각을 하나도 받아줄 수 없다는 것이었다.
신문사와 내 입장은 연차에 상관없이 내가 기사를 보내면 신문사가 검토한 후 기사를 송출한 후 내보내는 방식이었기에 어찌보면 나는 철저하게 을의 입장이 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곳이 스포츠 부서가 따로 없다 보니 평창 동계올림픽 때도 내가 메인 취재기자로 함께 현장에 나갈 수 있었고, 오랜 기간 협업해서 해온 것도 있고 비인기 종목이다 보니 동계스포츠 분야 쪽으로는 거의 혼자서 담당하다시피 했다.
정말 혼신의 힘을 다해서 낸 기사는 발행되던 날까지 수난을 겪었다. 편집부의 실수로 인해 예정시각에 세상에 나오지 못한 것이다. 내가 직접 편집부로 항의 전화를 하고 나서야 대중들에게 전달 됐다. 이 때도 편집부는 사과 한 마디가 없었다.
사회생활이나 여러 사람과 만나 보면 어쩔 수 없이 의견 충돌이 있을 수 밖에 없기도 하다. 하지만 이 때는 정도를 넘어섰다 판단해 나는 섭섭함을 넘어서 화가 단단히 났다. '내가 이런 대접을 받으려고 그동안 7년씩이나 그렇게 열심히 기사를 썼던건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물론 어떤 대우를 받기 위해 시작한 것은 결코 아니었다. 그저 내가 동계스포츠, 글쓰기를 좋아했기에 시작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래도 함께 해온 시간이 있고 그렇게 담당해온 것이 있는데 큰 서러움과 분노에 북받쳤다.
결국 나는 이후에 편집부는 물론 신문사에 정식으로 항의했다. 그러던 도중 1년에 한번씩 열리는 기자 시상식이 열렸는데 그 때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시상식에 참석을 할까 말까 고민을 하다가 평생에 한 번 있을까말까 한 일이기에 '그냥 철판깔고 가자'는 마인드로 그 자리에 갔다. 수상소감 도중 나는 이렇게 말했다.
"최근 편집부와 의견 다툼이 매우 컸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기자로서 굉장히 많이 속상하고 억울했는데, 전 아직까지 그에 대한 사과를 받지 못했던 것 같아요"
속에 있던 말들을 그냥 거의 내뱉었다. 시상식이 끝나고 일찍 자리를 뜨려다가 그 자리에 신문사 대표분이 있던 것을 확인했다. 나는 그 날 대표분한테 전달하기 위해 미리 작성해둔 장문의 편지를 전달했다. 혹시 몰라 언제까지 답을 줬으면 좋겠다고 기한을 적었는데 결국 그 날짜에 답은 오지 않았고 며칠이 더 흐른 뒤에 신문사의 직원이 직접 집근처로 찾아왔다. 결국 그는 내부에서 공식적인 사과는 할 수 없다면서 잘라 말했고 나는 이런 답을 전하려고 집 앞까지 찾아왔나 싶어 화가 나 자리를 먼저 떴다.
기사출처
https://sports.news.naver.com/news.nhn?oid=047&aid=0002215018
그것이 내 기자 생활의 거의 마지막이었다. 세상에 꼭 알리고 말겠다는 다짐 아래 낸 기사는 발행되는 그 순간까지 정말 많은 인고의 시간과 싸움 끝에 탄생했다. 그만큼 힘들어서였을까 난 기사를 낸 직후 대중들로부터 뜨거운 반응을 얻었다. 네이버 스포츠 일반면에 톱 기사로 올라간 것은 물론 네티즌들은 댓글로 내게 기사를 내줘서 감사하다며 이런 문제에 대해 더욱 파헤쳐달라는 응원도 받았다. 심지어 기사가 나가고 다음날에는 빙상계 쪽 인사로부터 전화 연락을 받기도 했다.
기자는 누구나 말하듯 독자들에게 새로운 정보와 사실을 전달하는 사람을 말한다. 하지만 요즘 우리가 흔히 기자를 ‘기레기’라고 속칭하며 비아냥 거리거나 비난하는 경우가 많다. 거짓 정보나 저급한 기사들이 쏟아지다 보니 이런 시선들이 생겨난 것이다.
나는 그런 비판을 듣는 것이 본 직업을 갖고 있는 사람으로서 싫었다. 처음에는 마냥 회피하고만 싶었지만 그것을 피할순 없고 나 역시도 그런 비판을 받기 싫었다. 그래서 나는 비록 작은 분야이고 비인기종목이었지만 항상 치열하게 정보를 수집하고 분석하면서 나만의 힘을 기르고자 했다. 그 다짐이 있었기에 이런 값진 기사가 나올 수 있었던 것일 거다.
내가 가장 치열하게 취재하고 써냈던 6장 분량의 기사. 진심을 다해 열정적으로 한다면 그것은 곧 통하기 마련이다. '세상에 꼭 알리고 말거야'라는 외침은 가장 순수하고 아름다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