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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캐나다아재 Oct 12. 2024

[엽편소설] 죽여주는 회사

노인인구 2천만 명 시대, 죽여주는 서비스가 출시되었다. 

2080년, 드디어 노인 인구는 2천만 명이 넘었다. 전체 인구가 줄어들어서 노인인구 비중은 65%를 넘었다. 점백 노인은 이미 나이가 여든 살을 넘기자 살기가 싫어졌다. 의학 기술의 발달로 웬만한 암조차 주사한방으로 낫는 시대이지만, 그것도 다 부자들의 얘기였다. 


자신과 같은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서민층의 노인들은 기껏해야 표본 의료광고서비스에 제공하는 의료표본 샘플을 제공하고 의료비 할인받는 티켓을 받는 것에 더 열을 올린다. 하루 만보를 채우고 인증샷을 올리면 하루 1천 원까지 받는다. 


점백은 아무리 생각해도 지금의 하루하루도 힘든데, 나이가 들면 들수록 몸도 마음도 힘들어질 것 같았다. 벌써부터 눈도 침침하고, 계단을 오르내리는 것도 힘겹다. 그나마 노인연금이 나와서 겨우겨우 생활은 되고 있지만, 2년 전 아내를 먼저 하늘나라로 보내고 나서는 모든 것이 귀찮아졌다. 


저녁 해거름에 동네에서 친구를 만났다. 초등학교 때 친구는 자신의 복사판 같다. 얼굴에는 주름이 자글자글하고, 머리카락이 얼마 남지 않은 머리는 군데군데 검은 잡티와 검버섯들이 뒤덮었다. 언듯 보면 마치 흑색종 같아 보였지만, 다행히 그런 것은 아니라고 했다. 


일주일에 한 번 정도 만나서 막걸리를 한 잔 기울이는 것이 그나마 삶의 낙이었다. 친구가 말했다. 


자네, 요즘 죽여주는 회사가 있는 것 아는가?”


“뭐, 아주 멋진 여자들이 근무를 하나 보네, 죽여준다는 것을 보니, 허허허.”


“후후, 이 친구 보게나, 아직도 입에서 여자란 단어가 나오고, 입이 헤벌쩍 하는 걸 보면 자넨 아직 젊네. 젊어.”


“농담일세, 그래, 뭘 죽여준다는 말인가? 설마 진짜로 사람을 죽여준다고?”


“후후, 점백 그렇다네. 정말로 사람을 죽여준다는 거야. 아픈 노인들이 왜 죽고들 싶어 하잖아. 그런데 스스로 목숨을 끊을 용기는 나지 않지. 그런 노인들이 요즘....”라고 말하면서 남자는 주변을 한 번 살피더니 다음 말을 이었다.


“농담이 아니고 정말이라고.”


점백은 집에 돌아와서 생각해 보니 나쁘지 않은 서비스라는 생각이 들었다. 당장 그는 싱크대에 방치해 둔 접시며 밥그릇에 물을 틀었다. 싱크대 수도꼭지에서 물이 수북이 쌓인 설거지 거리들 위로 떨어졌다. 그는 분홍빛깔 고무장갑을 꼈다. 그리고는 수세미를 들고 설거지 세제를 세 번이나 눌렀다. 그의 손은 천천히 설거지를 하고 있었지만 그의 머릿속에는 온통 조금 전까지 친구와 나눈 얘기들이 채우고 있었다. 


“비용은 얼마나 든다고 하던가?”


“이백만 원인가.”


“생각보다 비싸구먼.” 점백이 말했다. 


“허허, 이 친구 그럼 이게 뭐 인터넷 쇼핑 같은 건가. 단돈 몇 만 원에 해결되게.”


“아니 그래도 우리 같은 형편에.”


“허 이 친구 은행대출을 받아도 되고, 카드론을 받아도 되겠지. 어차피 자네 죽고 나면 자네에게 청구하겠는가.”


“아........”


“하여튼, 젊었을 때부터 꽉 막혀가지고.... 쯧쯧.” 남자가 고개를 옆으로 흔들거리면서 저었다. 


그렇게 친구의 소개, 소개를 받아서 가입한 서비스가 서울 변두리 북가좌동에 위치한 회사였다. 끝내 못 미더워서 점백은 회사까지 방문했다. 주택가 안쪽에 위치한 회사는 멀쩡한 간판을 달고 있었다. 


주식회사 죽여주는(디자인) 회사


1.5층짜리 단독주택을 사무실로 개조한 곳이었다. 밑에 온전한 층이 아니고 반지하가 있던 과거의 유행하던 형식의 주택말이다. 


간판을 뒤로하고 사무실에 들어가니, 껌을 딱딱 씹고 있는 짙은 화장을 한 여자가 그를 맞이했다. 


“여기에 이름 주소 쓰시고요.” 


잠시 후 나타난 사장은 우람한 사내다. 


“저희는 딱 한 가지만 말씀드릴게요. 정말 고통이 하나도 없이 깔끔하게 처리해 드립니다.” 


그 말이 점백의 가슴을 파고들었다. 사실 죽는 것이 두려운 것은 맨날 TV 드라마나 영화에서 고통스럽게 죽어가는 사람들이 나오기 때문이었다. 고통이 하나도 없이 죽여준다니 얼마나 좋은가.


“비용은 얼마인가요?”


“원래는 300만 원인데 지금은 특별할인 이벤트 기간이라 200만 원에 해 드립니다.”


“허허, 사람 죽이는데도 할인이 있나 보군요.”라고 말하며 그가 선미소를 지었다. 


“어르신, 지금은 휴가시즌이라 좀 비수기이거든요. 저희도 인건비를 따 먹는 회사라서요. 하하 그렇습니다.”


그 사장의 웃는 모습을 보자 점백은 계약을 하려던 마음을 접었다. 

“좀 더 생각 좀 해 볼게요.”


아무리 킬러 회사라지만, 고객이 죽음을 상담하러 왔는데 큰 소리로 웃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그는 혀를 차면서 불쾌감을 대신했다.


날이 가을로 바뀌면서 기온이 급격히 차가워졌다. 아침에 일어나서 산보를 하던 점백이 쓰러졌다. 


그가 병원에서 정신을 차리니, 뇌출혈로 급한 수술을 했다고 했다. 왼쪽으로 편마비가 왔고 콧줄이 달려 있었다. 


그 소식을 듣고 동네 친구 삼백이가 면회를 왔다. 그때 죽여주는 회사를 소개해 준 친구였다. 


“아뫔ㅁ화ㅣㅁㅇ맒ㅇ롬되ㅏㅗ함오아롬ㅇ아”


왼쪽 몸 전체가 마비가 되어서 병상에 누운 채로, 어눌한 말투로 점백이가 자신이 죽고 싶다는 말을 했지만, 친구는 알아듣지 못했다. 


점백이는 그런 친구에게 화가 나서 역정을 내는 바람에 괜한 진정제만 투여받았다. 주사액을 투여받자 그는 다시 침상 베개에 고개를 떨궜다. 그 바람에 모처럼 면회 온 친구가 떠나는 모습을 보지도 못했다. 

한편, 친구가 쓰러졌다고 하니 그 모습이 궁금해서 찾아온 친구 중에는 점백이처럼 뇌출혈이 왔다가 오랜 투병 생활로 다시 일어난 친구가 포함되어 있었다. 


“아흐. ㅁㅁㅁ앓ㅁ옴함”


“뭐? 죽고 싶다고?”라고 남자가 반문했다. 


침상에 누운 채로 웅얼거리다가 남자가 한 말을 듣자 점백이가 두 눈을 크게 뜨고 아직 멀쩡한 손가락의 엄지와 검지를 천천히 붙여서 동그라미를 만들어 보였다. 그는 감격한 듯이 외쳤다.


“ㅁ왏ㅁㅇㅁ황ㄶㄹ모하ㅣ”


“역시 너밖에 없다고?”


점백이는 그제야 환하게 웃었다. 웃는 그의 입 한쪽으로 침이 조금씩 흘러내려 환자복의 가슴께 쪽을 적셨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렇게 그 친구가 해석한 말에 따르면 점백이는 일전에 다녀온 회사랑 계약을 하고 싶다고 했다.

그래서 보통의 경우는 직접 회사를 방문해야 하지만 특별히 점백은 병원에 있기에 출장방문을 와서 조용히 계약까지 마쳤다. 


물론 이 과정에서 삼백이를 비롯한 병실을 둘러싼 친구들의 도움이 컸다. 


“뫙ㅎㅁ암함ㅇㅁㅇㄻㅇㄹ낧”


“점백이가 고맙다고 한다.”


그렇게 자신의 죽음에 대한 계약까지 마치고 나자 점백이는 아주 마음이 편안했다. 이제 이 고통스러운 몸뚱이를 질질 끌고 살지 않아도 된다. 마음도 몸도 편안했다. 눈을 뜨고 나면 죽음의 강을 건넜을 것이었다. 


한편, 죽여주는 회사의 사장은 반짝 특수를 노리고 있었다. 그에게 돈 많은 부유한 부자 손님들이 어떻게 소문을 들었는지 의뢰가 오기 시작한 것이다. 더구나 이 손님들은 제시하는 단위자체가 달랐다. 


지금 자신의 앞에 있는 여자는 아까부터 가방의 경첩 부분을 딸깍거렸다. 


보테가베네타 가방은 격자무늬로 유명한 이탈리아의 명품 가방이다. 금색 경첩 부분을 딸깍거리는 소리는 그의 신경을 건드렸지만, 그녀는 아랑곳하지 않고 벌써 두 대째 담배를 피우고 있다. 그녀가 조금 전 피운 담배는 필터 쪽에 붉은 입술 자국이 선명하다. 


“지금 그래서 그건 안된다는 거예요?” 여자의 목소리는 앙칼지다. 


“네, 죄송합니다. 직접 고객분이 오셔서 하셔야 합니다.”


“아니, 죽여주는 회사라면서. 제 시아버지가 죽고 싶다고 하신다니까요.”


“그게 직접 오셔서 말씀하시지 않으면.....”


“아니, 뭐 이런 회사가 다 있어.”


사장은 화가 났지만, 절대 그런 표시를 내면 안 된다. 이 여자를 소개해 준 사람이 다름 아닌 고등학교 대선배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여자가 임원으로 근무하고 있는 회사의 직원이기도 했다. 아마도 우스갯소리로 듣고 소개를 했을 수도 있고, 이런 소문이 있더라고 해서 소개를 했을 수도 있다. 


담배를 피우고 난 여자가 고개를 확 들면서 말했다. 


“일단 오늘은 알겠어요. 시아버지를 모시고 오면 되는 거죠?”


“네, 그렇습니다. 본인의 의사가 확인되어야 저희는 움직일 수 있습니다.”


여자가 나가는 모습을 보면서 사장은 불안감을 느꼈다. 어쩌면 저 여자는 비슷하게 생긴 사람을 데리고 와서 사인을 하게 만들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규정에 신분증 확인을 더 철저하게 하라고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는 이 사업을 일종의 선한 마음을 가지고 시작했다. 그는 조력자가 되고 싶은 것이지 살인자가 되고 싶지는 않았다. 


조력살인자와 그냥 살인자의 차이는 엄청나게 크다. 꼭 죽고 싶어 하는 사람을 도와주는 것은 선한 동기이지만 죽고 싶지 않은 사람을 죽이는 것은 두 가지 방법 다 살인이지만 엄청난 차이다. 심지어 그의 직원들에 의하면 죽어가면서 고맙다고 팁을 어디에 남겨두었다 하는 식의 제안이 많았다고 했다. 


무엇보다 사장은 자신이 그렇게 배포가 크지 않다는 것을 인정했다. 자신은 취업도 어렵고 해서 그냥 킬러중개개념으로 이 사업을 시작했을 뿐이었다. 그것도 일거리를 찾아서 탑골공원에 갔다가 바둑을 두는 노인들이 입버릇처럼 아 죽고 싶어. 죽어야지 하는 말을 듣고 생각해 낸 즉흥사업이었다. 그는 자신도 실제로 이 일이 이렇게 커질 줄은 상상을 못 했다. 


더 큰 문제는 그 다음에 일어났다. 형님이 갑자기 이 일을 그만두겠다고 한 것이다. 
영근 형님 덕분에 시작한 사업인데 좀 사업이 커질만하니까 그만두겠다고 하니 사장도 난감했다.  


"뭐, 영근 형님 갑자기 회사를 그만 두시겠다고요? 형이 없어지면 난 어떻해요."


"미안, 이제 노인들 죽이고 다니는 것 좀 지겨워. 솔직히..."


그렇게 열심히 활동하던 형님이 킬러를 그만 두겠다고 했다. 


갑자기 열심히 일하던 영근 형님이 평소의 꿈이었다면서 프랑스 특수부대에 용병으로 지원하면서, 사장은 이 사업을 접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자신은 도저히 사람을 죽이는 일을 할 엄두가 나질 않았던 탓이다. 다른 일을 알아봐야 하지만 그전에 해결해야 할 일이 있었다. 자신이 받아 놓은 일을 처리해야 했다. 이미 점백 노인 건을 뺀 나머지는 영근 형님이 다 해결해 놓고 간 상황이었다. 점백 노인이 병원에 있었기에 킬러도 기다리고 있던 상황이었다. 아직 사장은 아무도 죽여본 적이 없다. 


하지만, 그가 사업을 접기 전에 점백 노인의 의뢰건은 반드시 처리를 해 주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는 약속한 것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는 나름의 신조가 있었다. 


한편 점백은 막상 자신의 죽음에 대해서 싸인을 마치고 나자, 의욕이 샘솟았다. 그래 병실에서 무의미하게 죽을 수는 없지. 그는 병원의 재활프로그램에 성실히 임했다. 


풍성한 몸매를 지닌 양 간호사는 베테랑이다. 나이가 불혹의 나이가 지났지만 그녀는 여전히 매력적이었다. 그녀의 간호사복 앞섭이 텐션때문에 팽팽했다. 그녀는 점백 노인을 빠르게 일으켜서 옷을 정리해서 입히고 휠체어에 앉혔다. 


“오늘은 기분이 한결 좋아 보이시는데요.”


“하하, 오늘부터 좀 열심히 운동할 겁니다.”


"아, 정말요. 너무 멋져요. 어르신."


"얼른 나아서 우리 양 간호사님 같은 분하고 데이트 좀 하고....허허허."


그전까지는 운동도 싫어하고 굳어가는 몸을 방치하던 점백 노인의 활기찬 말에 어쩌면 노인의 재활이 잘 끝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 병원 내 피트니스 센터에서 하루 30분씩 재활하던 점백 노인은 점차 시간을 늘려갔다. 그래 죽을 때 죽더라도 건강하게 죽자. 어차피 킬러 회사에서 고통 없이 죽여준다고 했으니. 


꾸준하게 30분씩 하는 것도 정말 힘들었다. 하지만 그의 피나는 노력은 30분의 재활시간 및 혼자서 개인 피트니스 시간을 따로 늘렸다. 1시간이 넘어서자 침대에 돌아와서 그는 파김치가 되어 푹 곯아떨어지곤 했다. 그렇게 그는 운동시간을 30분에서 1시간으로 그리고 마침내 하루 2시간씩 재활에 매달렸다. 나중에는 4시간이 넘어갔고, 그의 언어와 몸이 정상으로 돌아오기 시작했다.


시간은 훌쩍 6개월이 지났다. 


“그동안 고생 많으셨습니다. 이제는 퇴원하셔도 됩니다.”


기억도 없이 입원한 병원에서 완전 회복 소식을 듣고 점백은 날아오를 듯이 기뻤다. 하지만 집에 가까워 올 수록 다른 걱정이 그를 덮쳤다. 건강을 회복하고 지하철에서 내려서 에스컬레이터가 보였지만 그는 일부러 계단을 선택했다. 오히려 술 담배를 끊고 운동에 매진한 결과, 뇌출혈로 쓰러져서 입원하기 전보다 지금이 훨씬 팔과 다리에 힘이 느껴졌다. 


계단으로 지하철 개찰구를 나와서 지상으로 올라가자, 그는 시원한 바람이 상쾌하게까지 느껴졌다. 계절은 어느 듯 봄이었다. 노란 개나리꽃들이 군데군데 피어있었다. 


그는 2층 미니공원에 앉았다. 따스한 햇살이 그의 이마에 비췄다. 그 순간 그는 이 상쾌한 세상을 더 살고 싶어졌다. 자신의 의지로 역경의 밑바닥에서 치고 올라온 느낌이었다. 


그는 단축번호를 찾아서 그 회사에 전화를 걸었다. 취소를 하겠다고 얘기를 할 참이었다. 


하지만, 전화번호는 없는 번호라는 안내만 나왔다. 


‘뭐지?’ 


그는 살짝 당황했지만 다시 사장의 핸드폰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그러자 해당 번호는 이용자가 정지를 한 번호라는 안내만 나왔다. 그의 이마에 당황으로 인한 땀이 살짝 나왔다. 무슨 일인지 몰라도 자신의 의뢰를 받은 죽여주는 회사가 문을 닫았고, 사장도 핸드폰이 정지된 상태다. 


‘그럼, 안심할 수 있는 것 아닌가’하고 생각했지만 아니다. 엄밀히 말하자면 자신을 죽여달라고 하는 계약은 유효했고, 그 계약서는 그 사장이 가지고 있다. 이미 자신은 잔액까지 전부 낸 상태다. 계약을 취소하려고 하는데 당사자가 사라졌다. 그 순간, 그는 현기증이 느껴졌다. 잠시 벤치에 앉았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방법을 못 찾을 것 같았다. 만약 자다가 킬러가 자신을 깨워준다면, 취소한다고 얘기를 해야 하는데 그냥 잘 때 와서 죽일 것 같았다. 


죽여주는 회사의 사장은 병원에 미리 조카라고 하면서 원무과에 음료수를 돌려둔 덕에 삼촌이 퇴원했다고 친절히 알려주는 병원 여직원의 전화를 받았다. 물론 그 전화번호는 외부 영업용이 아니고 직통 개인번호였다. 회사 번호들은 이미 다 중지했었다. 


전화를 끊고 그는 오늘 밤에 노인을 처리 하자는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해야 할 일이었다. 돈은 받았고, 그의 의뢰인 노인은 절대적으로 죽고 싶어 하는 상황이었다. 


그는 책상 위에 점백 노인의 주소를 놓고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점백 노인을 어디서 죽여야 하나 하고 생각했다. 일단 건물 주차장에 차를 대고 미니정원으로 갔다. 자신이 알기로 노인은 가끔 나왔다. 

이곳에서 노인을 처리하고 CCTV 테이프를 제거할 생각이었다. 


사장이 준비한 칼이 호주머니에서 만져졌다. 그것을 만지자 그의 손끝이 덜덜 떨렸다. 

잘 해낼 수 있을까. 그는 아직도 자신이 없었다. 


점백이는 소주를 한잔 마셨다. 매운 불닭면에 삼겹살을 프라이팬에 구웠다. 오랜만에 마시는 술은 아주 달았다. 컨디션은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혼자서 뚝딱하고 소주 한 병을 비웠다. 내친김에 맥주도 한잔 마시고 싶었다. 이래 죽어도 호상, 저래 죽어도 호상이다. 그는 한동안 끊었던 담배와 라이터도 샀다. 


이천 원 즈음되는 잔돈은 편의점 여직원에게 팁으로 주었다.

그는 2층의 미니정원으로 갔다. 밤 10시 즈음에 이곳을 이용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 다들 내일의 준비로 바쁘다. 검정비닐봉지에 맥주캔을 꺼내서 담배를 한대 꺼내 물었다. 


맥주 한 모금을 쭉 들이키고 담배를 한 가치 피워 물으니 세상 부러울 것이 없었다. 


“아, 기분이 좋네. 좋아.”


그런데 그 순간 풀 숲 쪽에서 누군가 다가오고 있었다. 


얼굴에 검은 마스크를 쓰고 후드티까지 입은 덩치 큰 남자였다. 얼굴이 커서 검정마스크는 작아 보였다. 

하지만 점백은 죽여주는 회사의 사장을 한눈에 알아봤다. 


“어... 사장, 자네 여기에 웬일인가.”


회사의 사장은 임무 완수를 하기 위해서, 말대답을 하는 대신에 호주머니에 있던 칼을 꺼내서 휘둘렀다. 

대답을 하면 떨리는 자신의 목소리를 들킬 것 같았다. 하지만, 그는 눈을 감은 채로 허공을 향해서 휘두르고 있었다. 이 정도면 되었겠지 하는 생각에 눈을 떴을 때 그는 머리에 뭔가 강하게 강해지는 충격에 정신을 잃었다. 그리고 쓰러지면서 바닥에 머리를 부딪히면서 그대로 목숨을 잃었다. 


그 사장의 귓가에 이런 소리가 들렸다.


“아니, 내가 취소한다고 전화를 했는데 왜 안 받아. 전화를. 참... 나.... 원.” 


점백 노인은 호신용으로 야구방망이를 들고 다니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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