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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혜 Jan 27. 2022

귀신나오는 아파트

청소할 때 날씨는 아주 중요한 부분이다.


해가 너무 강한 여름날에는 창문에 붙어서 청소를 해야 하기 때문에 햇볕이 너무 따가워 캡 모자를 쓰거나, 팔토시를 착용해야 하고, 너무 추운 겨울에 높은 층의 아파트를 청소하다 보면 코끝이 시리다 못해 얼어버릴 것 같은 차가운 칼바람에 눈뜨기조차 힘들 때도 있다.




가랑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초여름이었다.


너무 세게 몰아치는 비가 아니라 이 정도 가랑비는 오히려 창틀의 묵은 때들을 적당히 불려주고, 서늘한 공기는 청소하기에 딱 알맞은 온도로 맞춰주기 때문에, 청소하기에는 굉장히 적합한 날씨다.


이날도 기분 좋게 내리는 빗소리를 음악 삼아 청소현장에 도착했다.


3명이 한 팀으로 이루어진 우리는 보통 같은 차를 타고 이동하지만, 이 근처에 사는 M언니가 자기는 가까우니 알아서 현장으로 바로 가겠다 하여, 나와 S 둘만 먼저 도착했다.


지하주차장에 차를 대고, 청소장비를 실은 후 엘리베이터를 타고 현장에 도착했다.


늘 현장에 도착해서 가장 먼저 해야 하는 일은 집 전체를 살펴보는 일이다.


특별한 부분은 없는지, 구조는 어떻게 생겼는지, 심하게 오염된 부분이나 파손된 부분을 확인하고, 고객과 상의하에 추가금이 발생될 부분은 없는지를 살펴야 하기 때문이다.


집에 들어서자마자 전체 등을 켰다.


비 오는 날이라 불을 켜면 실내가 더 밝아야 마땅한데 희한하게 집 전체가 어둡게 느껴졌다.


“이 집은 LED로 바꿔야겠다”라고 얘기하며 거실로 들어선 순간,


형광등이 깜빡깜빡하더니 “팟”하는 소리와 함께 주방등이 순식간에 나가 버렸다.


밝은 빛 아래에 얼룩을 확인하고 구석구석 청소해야 하는 상황에서 비가 와서 어둑어둑한 실내에 전등까지 나가버렸으니 참으로 난감한 상황이었다.


바로 고객에게 전화해서 상황을 알리니, 곧 형광등을 사서 방문하겠다고 해서 우리는 그럼 다른 곳부터 청소를 하겠다고 얘기하고 통화를 마무리했다.


그리고 집 이곳저곳을 둘러보면서 날씨 탓이라 그런지, 불이 나가서 그런지 왠지 모르게 으스스함을 느끼던 나는 “이 집 왠지 귀신 나올 것 같아”라는 농담 섞인 말을 했다.


영화에서 보면 음기가 강한 집에서는 전기도 잘 나가고, 전자제품이 고장도 잘 나던데,


아니나 다를까 희한하게 집구석구석에 부적이 많이 붙어져 있었다.


농담으로 얘기했지만, 내가 내뱉은 낱말들의 소리가 울림이 되어 다시 내 귀에 닿는 순간, 그 말이 사실인양 더 무섭게 느껴졌다.



그때 현관 쪽에서 M언니가 들어왔다.


그러고는 대뜸 하는 소리가 “안 무서워요?”


우리가 하는 소리를 들었나 싶어 “뭔가 좀 음산하긴 하네~ 진짜 귀신 나올 것 같아. ㅎㅎ 그래도 흩어져서 일해야 되니까 우리 이제 무서운 얘기 그만~!”


이라고 얘길 했더니, M언니가 얘기했다.


“아 이 아파트 얘기 못 들었구나. 여기 귀신 나오는 아파트라고 소문났는데, 이 주변 사람들은 다 아는데?”


그 얘기를 듣는 순간, 부슬부슬 내리고 있는 비와 어둑어둑한 실내와 현실적이지 않는 말들이 뒤섞여 드라마 ‘전설의 고향’ 속에 들어와 있는 느낌이 들었다.


“에이~ 요즘 세상에 귀신이 어딨다고!” 옆에서 듣고 있던 S가 얘기했다.


역시 얼마 전 군대를 제대해서 그런지, 젊어서 그런지 애가 패기가 있었다.

난 귀신의 존재를 어렴풋이 믿고는 있었지만, 오늘 이 상황에서는 귀신은 없는 존재여야 했기 때문에 그런 S의 말에 살풋 기대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그래, 귀신이 어딨다고~!” 그 말에 힘을 실어 귀신은 없는 걸로 결론 내리고 잔뜩 쫄아든 마음을 진정시키고 빨리 현실로 돌아와 청소를 시작해야 했다.


그런 우리의 모습을 보고 있던 M언니는 짓궂은 표정으로 얘기했다.


“아 몰랐구나~ 여기 아파트에 여러 집에서 귀신이 나와서, 아파트 단체로 돈을 걷어서 유명한 무당을 불러가지고 아파트 입구에서 큰 굿을 했데요. 그러고도 귀신이 계속 나와서 그런 굿을 3번이나 했다던데. 머리 감고 고개를 드니 옆 거울에 여자가 서 있고, 밤에 물 마시러 거실로 나왔는데 냉장고 앞에 할아버지가 서 있었데요”


이 얘길 듣고 있자니 온몸에 소름이 오스스 돋기 시작했다.


아니 ‘한 두 명이 흐릿하게 본 것 같다’도 아니고 여러 사람이 동시다발적으로 귀신을 목격하고 돈을 걷어 굿까지 했다니. 순간 내가 서있는 공간이 전설의 고향 촬영지가 되어버렸다.


큰일이었다.


쪼그리고 앉아 화장실 바닥을 청소하다가 일어나면 뭐가 서 있을 것 같고, 베란다 청소할 때 무언가 앉아 있을지도 모르는데 붙박이장 문은 또 어떻게 열 것이며, 노동요는 작업의 효율을 높이는 기본이라 생각하기에 매일 음악을 틀어놓고 일을 하는데, 오늘은 노래를 틀면 안 되는 것인가(어딘가에서 귀신이 노래를 좋아해서 가수들 녹음실에 자주 출몰한다는 소리를 들었던 것 같다), 귀신은 옛날 사람이니까 힙합이나 최신 음악을 틀어놓으면 상관없으려나, 녹음실에 귀신이 나타나면 그 음반은 대박이 난다던데 나는 청소하다가 귀신을 봤으니 우리 업체는 이제 귀신에 힘입어 대박이 나는 건가. 그럼 무섭더라도 참아봐야 하나. 온갖 잡다한 생각이 다 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날 나는 대담한 척, 괜찮은 척 당당하게 장비를 들고 안방으로 들어가 화장실부터 몸에 익혀진 순서대로 구석구석 깨끗하게 청소해 나갔다.


화장실을 청소하는 내내 거울을 똑바로 보지 않으려 애썼고, 앉았다 일어날 때는 한쪽 눈은 감고 한쪽 눈은 실눈을 뜨고 거울을 바라봤다. 없어야 할 것이 보일 땐 한쪽 눈으로도 너무나 잘 보일 테지만, 그땐 그나마 그렇게라도 해야 아무것도 안 보일 것 같았다.


샤워부스를 청소하다 희미한 얼룩만 보여도 움찔움찔 놀라며 뒤를 돌아보곤 했다.


창 소하는 와중에 내 눈엔 보이지 않지만 만약 정말 귀신이 있다면, '자기가 있는 곳을 깨끗이 해주는 사람에게 해코지는 하지 않겠지'란 작은 위안을 버팀목 삼아 일을 했다.



어떻게 청소했는지 정신없는 하루가 지나고, 다행히(?)도 우리는 아무도 귀신이란 존재를 보지 못했다.


형광등을 사들고 온 고객님과 마주하자, 이 공간에서 계속 거주할 사람도 있는데 괜히 소문에 호들갑을 떤 것 같고, 죄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하루 일과를 마치고, 우리는 여느 때처럼 청소에 너무 만족하신 고객님을 뒤로하고 보슬비와 안개에 둘러싸인 아파트를 바라보며 홀가분하고 뿌듯한 마음으로 퇴근을 했다.


그날 M언니가 들려준 소문이 진짜인지 아닌지는 지금도 모른다.


그리고 우리는 이후에도 그 아파트에서 단 한 번도 귀신 비슷한 것조차 본 적이 없다.


하지만 그때 일을 떠올리면 신선하고 짜릿한 기억으로 남아 있아 있다.


그 고객님이 우리 업체 서비스에 정말 만족하여 입주자 카페에도 후기글을 올려주셨고, 주변에 소개를 많이 해준 덕분에 그 아파트에서는 아직까지도 꾸준히 일이 들어오고 있다.


가끔,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날이면, 새로 들어온 팀원들을 겁내 줄 요량으로 그때의 일을 아주 실감 나게 들려주곤 한다.


이러다가 정말 어딘가에서

“네가 내 얘기를 그렇게 하고 다닌다며? “ 하면서 정말 만날게 될까 겁나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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