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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실 Nov 17. 2019

네? 제가 쓰레기라구요?

[감자칩] 웹툰 작가가 정리해 본 <5가지 악플 유형>

 전작 <가슴도 리콜이 되나요>는 제목과 소재 때문에 연재 초반 댓글창이 요란했다. 이러다 연재 중단하는 거 아닌가 싶을 정도로 내내 긴장했는데, 다행히 후반부로 갈수록 안정화되면서 무사히 완결할 수 있었다. 당시 연재 스트레스를 받을 때면 나는 그 길로 당장 흑맥주와 프링글스를 사 왔다. 탄산의 시원함과 짜디짠 나트륨의 조화란! 감자칩의 바삭거리는 소리에 맞춰 스트레스를 씹어 삼키며 꿋꿋이 작업을 이어가곤 했다.


 하지만 전작에 비해 댓글수와 추천수가 현저히 줄어든 <오늘도 꽐랄라라>를 연재하면서, 솔직히 이런 생각을 자주 했다. "차라리 전처럼 악플이라도 많이 달렸으면." 기하급수적으로 줄어드는 댓글을 보며 아무도 내 작품에 관심이 없구나 하며 심드렁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최근 악플 때문에 힘들어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자주 접하면서, 내가 얼마나 철없는 생각을 했는지 돌이켜보게 됐다.


 사실, 다음웹툰과 계약을 맺은 순간부터 나는 ‘평가의 단두대’에 오른 것과 다름없었다. 포털 연재를 결정한 이상 '커뮤니티로써의 댓글 활성화'라는 특성을 감안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평가라곤 학창 시절에 받은 성적표나, 직장생활에서 받은 인사평가가 전부인 내게, '보이지 않는 사람들로부터 받는 무분별한 평가'는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것이었다.


 '댓글이 온통 악플뿐이면 어떡하지?', '데뷔작이 마지막 작품 되는 건가?', '그럴 땐 어떻게 대처해야 해?' 연재를 앞두고 잔뜩 겁을 먹은 나는, 한국만화가협회에 해당 내용을 문의했다. 나 같은 사람이 많았는지 홈페이지에는 아예 [악플러 고소 절차]라는 공지글이 떡하니 올라와 있었다. 그 글을 보며 담당자님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짧게 정리하자면 이랬다. "웬만한 악플은 처벌하기 힘들어요. 정말 심각한 수준의 악플만 고소 가능하거든요." 그때는 '정말 심각한 수준의 악플'이 무엇인지 쉽게 가늠할 수 없었다. 하지만 데뷔 후 진짜 고소까지 진행한 작가님들을 보며 그제야 고개를 끄덕일 수 있었다.






 문득 궁금해졌다. 웹툰 작가로서 나는 어떤 악플을 마주하고 있을까? 그리하여 내가 직접 겪었거나, 주변 작가님들이 경험한 사례를 토대로 <웹툰 악플 유형>을 다음과 같이 정리해 보았다.  유형은 모욕의 대상과 형태에 따라 5가지로 구분할 수 있었다. (예시는 실례를 바탕으로 재구성했다.)



1. 스토리, 그림체, 소재 등 작품 자체를 비난하는 경우

- 존나 못 그리네
- 발 왜 이렇게 크게 그림? 인체 비율 좀 더 공부하시길...
- 아무리 만화라지만 개연성 완전ㅠㅠ

 정중하게 살살 비꼬는 악플도 있긴 하지만, 사실 이 정도는 독자로서 충분히 의견을 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존나 못 그리네"를 예로 들자면, 나는 그림을 잘 그리는 작가가 아니라는 것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기 때문에 저 댓글에 흔들리지는 않는다. 굳이 비속어를 사용했어야 했나 하는 아쉬움은 들지만 그저 덤덤히 받아들이는 편이다. 한편 이들의 의견을 적극 수렴할 경우 충성 독자로 전환시키는 순기능을 낳기도 한다. 이후 원고에서 점점 작아지는 발을 보며 "작가님 발이 작아졌네요^^" 하며 귀여운 코멘트를 남기는 독자도 있었기 때문이다.



2. 작품 혹은 작품 내 캐릭터를 작가와 동일시하여 모욕하는 경우

작가 니 실생활이 니 만화처럼 살고 있다면 니 인생도 그리 좋은 그림이 나올 수는 없을 텐데. 알고는 있냐 쓰레기 작가야?

 문제는 평가가 작가에게 향할 때다. 현재 연재 중인 <오늘도 꽐랄라라>는 성격도 가치관도 다른 네 여자의 연애사를 다룬다. 개중 연애를 쉽게 생각하는 '미자'라는 캐릭터가 있는데, 자유분방한 성격과 연애관이 특징이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캐릭터의 성격이 그렇다는 말이다. 그러나 일부 독자는 '미자'를 '작가'와 동일시하여 악플을 남긴다. 위 사례에서 확인할 수 있듯 나는 순식간에 '쓰레기 작가'가 되었다. 모니터 밖에서는 그 누구에게도 들어본 적 없는 말이었다. 그래도 다행히 대댓글로 싸워주는 독자들이 있어 무던히 넘길 수 있었다.



3. 이유 없이 작가를 모욕하는 경우

나가 죽어

 마감도 잘 지켰고, 지각이나 휴재도 없었고, 작품도 문제없이 잘 흘러가고 있건만, 혹자는 작품과 무관하게 그저 존재 자체만으로 작가에게 비수를 꽂는다. '표현의 자유'가 독자의 권리라면, '창작자의 인권'은 누구를 위해 수호해야 할까? 모 작가님은 고약한 악플러 몇 명을 고소한 적이 있는데, 개중 중학생이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작품이 청소년 타깃이 아니기도 했거니와, 어린 친구가 작성한 악플이라고 하기엔 내용이 상당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성년자이기도 하고 부모님까지 나서서 선처를 호소하기에 몇 십 장의 반성문으로 퉁치려던 참이었다. 그 순간 부모가 한 마디만 덧붙이지 않았어도, 정말로 선처를 해주려고 했다. "너무 많은 것 같은데... 10장만 하면 안 될까요?"



4. 작가의 가족을 모욕하는 경우

 멀쩡한 사람을 욕보이는 것도 화나는데, 상(喪)을 당했을 때도 악플이 멈추지 않는 경우가 있다. 입에 담기에도 송구스러워 굳이 일례를 싣지 않았다. 한 작가님은 계속된 가족 모욕에 결국 명예훼손, 모욕죄, 영업방해죄까지 걸어 형사 고소를 진행했다. 그 결과 악플러들에게 벌금형 혹은 기소 유예가 내려졌다. 1년 여의 긴 싸움 끝에 쟁취한 판결이었다. 그가 고소를 강행한 이유는 단순했다. 소중한 사람을 건드렸기 때문에. 긴 시간에 걸쳐 싸울지언정, 내 사람이 받은 상처만큼 악플러도 피 말리며 살았으면 하는 마음으로 끝까지 버텨냈단다.



5. 기타 : 성희롱, 개인정보 유출, 허위사실 유포 등

검은색 반투명 팬티스타킹 그려주세요.

 댓글창 외에 메일이나 SNS 등으로 악플이 날아오기도 한다. 어느 날, 오랜만에 작가 메일로 팬레터가 왔다. <오늘도 꽐랄라라>의 '미자' 캐릭터를 애정한다는 한 팬의 글이었다. 정중하게 격식을 갖춘 메일을 보며 기분 좋게 읽어 내려갔는데, 마지막 문장을 보고 식겁했다. '미자'가 검은색 반투명 팬티스타킹을 입은 모습을 꼭 한 번 그려달라는 부탁이었다. 칭찬인지 성희롱인지 모를 내용에 한참을 고민하다가 결국 답장을 보내지 않았다. 이처럼 특정 캐릭터에 빗대어 작가에게 성희롱을 일삼기도 하지만, 작가 자체를 성적 대상화하기도 한다.


    노골적인 내용이면 고소각이라도 잡지, 교묘하게 이를 피해 가는 경우도 있다. 필명으로 활동하는 작가가 곤란하도록 굳이 댓글에 그의 실명을 언급하며 개인정보를 유출하는 케이스다. 하지만 이 정도는 '심각한 수준'이 아니기에 법적 처벌이 어렵다. 그저 작가가 묵묵히 삼켜내야만 한다.






 <웹툰 악플 유형>을 정리하기 위해 작가님들께 '고소를 결심할 만큼 지독했던 악플'에 대해 여쭤봤지만, 대부분 "없다"고 답했다. 악플 자체가 없기 때문이라기보다, 악플을 후루룩 넘겨 보거나 금방 잊으려 노력하기 때문에 "기억에 남는 것이 없다"는 편이 더 정확한 해석이겠다.


 포털 사이트 웹툰 작가로서 매주 단두대에 서며 악플을 감안하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감안한다'는 것과 '각오한다'는 것은 다르다. '감안'은 여러 사정을 참고하여 생각한다는 것이고, '각오'는 앞으로 해야 할 일이나 겪을 일에 대한 마음의 준비를 한다는 뜻이다. <이 서비스는 '모멸감 포함가'인가요?>에서 말했듯, 모멸감을 각오하고 살아가는 이는 없다. 다만 희망적인 것은 최근 사회 문제로 악플과 사이버 폭력이 대두되면서 다방면으로 긍정적인 변화를 맞이했다는 것이다. 다음카카오의 연예 뉴스에서 댓글창이 사라졌고, 모 연예인을 괴롭히던 악플러에게 첫 징역형이 선고됐다.



 이 시류에 힘입어 웹툰과 악플의 관계를 다시 떠올려봤다. 문득 감자칩 같은 사이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감자칩의 탄생기는 꽤 흥미롭다. 감자튀김이 너무 두껍다는 컴플레인에 화가 난 셰프가, 얇게 썬 감자에 소금을 잔뜩 뿌려 다시 손님에게 대접했다. 자신을 모욕한 대가를 톡톡히 보여줄 심산이었다. 하지만 손님은 이 음식을 무척 맛있어했고 그것이 감자칩의 시초가 되었다고 한다. 이 이야기에는 작가(셰프), 독자(손님), 악플(컴플레인)이 모두 등장한다. 다소 껄끄러웠던 관계가 사랑받는 음식으로 귀결되는 것을 보면, 결국 뭐든 함께 할 때 진가를 발취하는 것 아닐까 생각했다. 웹툰도 마찬가지다. 창작하는 것은 작가의 몫이지만 평가로 살을 붙여 완성하는 것은 독자의 몫이다. 그러니 '함께' 좋은 콘텐츠를 만들어 간다는 생각으로 즐겁게 웹툰을 향유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브런치북 <글러 먹긴 했지만 말아먹진 않아서> 가 <슬프지 않게 슬픔을 이야기하는 법>으로 출간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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