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O, 조직 문화를 바꿔다오!> 8편
(사진은 한때 활동했던 '루트 익스플로러' DAO의 지도 이미지)
DAO라는 조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기 위해 한 번쯤 DAO 구성원으로 활동할 것을 제안한다. 가상자산 생태계의 서비스들은 백문이 불여일견이라는 말처럼 직접 해보는 게 최선이기 때문이다.
나는 한때 '루트(Loot)'라는 게임의 파생 프로젝트 '루트 익스플로러(Loot Explorer)' DAO에 소속되어 있었다. 가상자산 데이터 분석 업체 메사리(Messari)가 2022년 시장 전망 보고서에서 대표적인 웹 3.0 게임으로 '루트'를 소개한 바 있다.
여기서 루트는 게임에서 무작위 보상을 주는 시스템인 '루트 박스'에서 명칭을 따왔다.
돔 호프먼(비디오 앱 '바인' 개발자)은 루트 게임을 설계하면서 아이템 백 8000개를 대체불가능토큰(NFT)으로 발행했다. NFT들이 다음과 같이 텍스트로만 존재한다는 점이 특이하다. 그 어떤 이미지도 넣지 않은 것이다! 심지어 이런 NFT로 뭘 할 수 있는지도 제시하지 않았다.
'설계를 제대로 하지 않은 걸까?'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아니다. 돔 호프먼은 이용자가 그 공백을 알아서 채워나갈 수 있게끔 텍스트 기반 NFT만 던져둔 것이다. 메사리가 대표적인 웹3 게임으로 루트를 제시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그간 이용자들은 게임 업체가 만들어둔 세계관에서 미리 설정된 이미지의 캐릭터만 생성할 수 있었다. 그런 점에서 세계관부터 캐릭터 및 아이템 이미지까지 이용자들이 창조할 수 있다는 개념은 상당히 파격적이었다. 실제로 이후 루트 익스플로러, 루트 스웩, 루트 라르프, 루트 펑크, 루트 익스체인지 등 여러 프로젝트가 탄생했고 이들은 '루트버스(LootVerse)'라는 생태계를 조성했다.
오리지널 루트의 텍스트를 각 프로젝트들은 자신만의 이미지로 재창조했다. 그리고 각자의 세계관을 이용자들과 함께 만들어 갔다. 루트버스 안의 프로젝트끼리 서로 협력해 새로운 NFT를 발행하거나, 다른 프로젝트 팀이 만든 거래소에서 아이템을 판매하기도 했다. 탈중앙화 세계의 단면을 엿볼 수 있었다.
디자인이 마음에 든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루트 익스플로러를 선택했다. NFT 민팅 기간 중 0.04 ETH(약 8만 원)을 내고 루트 익스플로러 NFT 2점을 샀다. (여기서 민팅은 사전 판매와 유사한 개념으로, 가상자산 프로젝트의 초기 구성원으로 활동하려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다.)
2편에서 설명한 것처럼 NFT는 DAO에 입성할 수 있는 회원권이다. 또한, 희귀한 정도에 따라 가치가 결정되는 수집품의 성격도 가진다. 민팅 참여자는 무작위로 NFT를 받게 되는데, NFT마다 희귀한 정도가 다르며 그에 따라 2차 판매 가격도 다르게 책정된다. 나는 2차 판매 용도로 산 것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NFT 한 점이 희귀도 순위에서 전체 8000개 중 100위권 안에 들자 기분은 상당히 좋았다.
이후 루트 익스플로러 디스코드 채널(3편에서 대부분의 DAO는 디스코드를 주로 사용한다고 소개했다)에 접속했다. 디스코드 메뉴의 대부분이 잠겨 있었다. 프로젝트 팀의 안내를 따라 콜라 브랜드(collab.Land)로 이동해 메타 마스크를 연결하니 내가 NFT를 보유했다는 사실이 입증됐다. 이후에야 다양한 기능을 이용할 수 있었다.
소속감을 높이고자 디스코드 프로필을 루트 익스플로러 NFT 이미지로 변경했다. 그리고 내 캐릭터가 어떤 여정을 거쳐왔는지 지어냈다. 자신의 캐릭터의 성장 배경과 여정을 유려하게 풀어낸 이용자들의 작품은 DAO 핵심 멤버가 운영하는 공식 트위터에 '이 주의 모험가'로 소개되기도 했다.
DAO 답게 모두가 디스코드에서만 익명으로 활동했다. 일부 핵심 멤버가 퀘스트를 제시하고, 구성원들은 퀘스트를 깨서 보상을 받아갔다. 아무래도 게임 기반 DAO다 보니 활동들이 역할놀이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루트 익스플로러 DAO에서 참여한 활동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 구출 퀘스트: 개인전 / 지시어를 입력하면 무작위로 성공 여부가 결정되는 퀘스트. NFT로 보상.
2) 미로 퀘스트: 단체전 /방향키를 입력해 미로를 빠져나가는 퀘스트. 한 번 방향을 입력하면 2시간 동안 재입력 불가. 틀린 방향을 입력 시 저장된 지점으로 회귀. NFT로 보상
3) 지명 이름 짓기 콘테스트: 개인전 / 핵심 구성원이 만든 지도의 지명 이름 붙이기. 이용자들이 낸 아이디어 중 투표를 통해 최종 지명 결정.
그중 지명 이름 짓기 콘테스트에서는 아쉽게 2등에 그쳤다. 1등이 됐더라면 루트 익스플로러 공식 지도에 내가 기여하는 바가 생겼을 것이다.
루트 익스플로러 DAO에서 자발적으로 하위 DAO(Sub DAO)가 생기는 모습도 인상 깊었다. 위에 제시한 2) 미로 퀘스트는 개인이 아닌 팀 단위로만 참여가 가능했다. 이 때문에 참여자들은 자발적으로 길드를 조성하고, 길드 메뉴에서 퀘스트 진행도와 길드 구성원의 기여도 등을 공유했다. DAO 안에 소규모의 DAO가 따로 조직된 셈이다.
동/서/남/북 4가지 방향 중 4분의 1 확률로 정답이 있는 만큼, 길드원은 자신이 마지막에 어떤 방향을 입력했는지 적었다. 이렇게 모인 데이터가 미로를 탈출하기 위한 지도가 됐다. 만약 20번째 기로에서 누군가가 방향을 잘못 입력해 첫 번째로 돌아간다고 해도 길드에서 공유된 지도를 토대로 20번까지는 쉽게 도달할 수 있었다.
하지만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단체전임에도 결국 보상은 마지막에 올바른 방향을 입력한 구성원만이 받을 수 있던 것이다. 보상이 NFT인 만큼, 이를 분배하기도 쉽지 않았다. 이에 핵심 팀은 마지막에 올바른 방향을 입력한 개인을 위한 NFT뿐 아니라 길드 보상용 NFT를 추가로 내걸었다.
길드는 길드용 NFT를 어떻게 처리할지에 대해 길드 구성원 대상으로 투표를 진행했다.
① 길드 전용 지갑을 만들어 보관
② 무작위 추첨으로 개인에게 지급
③ 퀘스트 기여도가 가장 높은 개인이 획득
(길드 전용 지갑은 여러 명이 거래에 서명해야 그 자산을 옮길 수 있는 '멀티 시그(Multi-Sig)' 기능을 도입했다.)
이렇게 세 가지 방안이 투표에 부쳐졌고, 결국 ①안이 선택됐다. 길드 핵심 멤버는 향후 루트 익스플로러에 스테이킹(일종의 예치) 기능이 출시되면 NFT를 락업한 데 대한 보상으로 지급되는 토큰을 길드원에게 분배한다는 계획을 제시했다.
내가 속한 길드 외에도 같은 아이템을 지닌 사람끼리 뭉친 길드, 같은 속성을 지닌 캐릭터들만 모이는 길드들이 조성됐다.
그러나 아쉽게도 지금은 예전처럼 활발하게 돌아가지 않고 있다. 대부분의 DAO처럼 루트 익스플로러 DAO도 지속성 문제를 피해 가지 못한 것이다. DAO는 일반 법인과 달리 별도의 통보 없이도 조직을 탈퇴할 수 있다. 그러다 보니 갑자기 구성원이 줄어서 운영을 멈추는 DAO들이 많다.
DAO들이 잠깐 반짝하다가 사라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탈퇴가 자유롭다는 점 외에도 여러 요소들이 DAO의 지속성을 방해하고 있다. 다음 편에서는 DAO가 직면한 문제들이 무엇인지 짚어보도록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