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와 약속이 있었다. 약속 장소에 조금 일찍 도착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도 친구는 오지 않았다. 휴대폰을 몇 번이고 들여다봤다. 연락은 없었다. 자리에 가만히 앉아 있는 게 점점 불편해졌다.
기다리는 건 단순한 일인데, 왜 이렇게 초조할까. 생각할수록 마음이 더 불편해졌다. 괜히 주변을 둘러보며 초조함을 달래려 했지만, 그 초조함은 점점 더 커졌다.
휴대폰을 내려놓고 주변을 보았다. 길을 바쁘게 오가는 사람들, 간판에 흔들리는 바람, 멀리서 들려오는 음악. 그동안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하나둘 눈에 들어왔다. 이상하게도 익숙했던 풍경이 낯설게 느껴졌다.
기다림은 늘 익숙하면서도 불편한 것이었다. 커피가 내려오길 기다리고, 신호등이 바뀌기를 기다리고, 때로는 더 멀리 있는 무언가를 기다렸다. 기다림은 매일 있었지만, 언제나 초조함과 함께였다. 하지만 그날은 조금 달랐다.
초조함을 내려놓으니 기다림은 다르게 다가왔다. 갑자기 조금 더 여유로워졌고, 주변의 사소한 것들이 더 선명해졌다. 기다림은 그저 견뎌야 할 시간이 아니라, 내가 지나쳤던 것들과 잠시 마주할 수 있는 시간이기도 했다.
삶은 기다림으로 가득하다. 하루를 기다리고, 계절을 기다리고, 때로는 내가 알지 못하는 어떤 순간을 기다린다. 기다림은 늘 내 곁에 있었지만, 그 속에서 내가 얻을 수 있는 건 지금까지 제대로 보지 못했다.
그날 알게 됐다.
기다림은 끝에 도달해야만 의미가 생기는 게 아니라,
기다리는 그 순간에도 이미 충분히 많은 걸 담고 있다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