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길 정류장에서 낙엽이 떨어졌다. 발밑으로 툭. 바람에 밀려 살짝 튕기더니 천천히 굴러갔다. 잠시 멈췄다가 다시 흘러갔다. 그때는 별다른 감정이 없었다. 그냥 흔히 볼 수 있는 장면이라고 생각했다.
며칠 뒤, 그 장면이 문득 떠올랐다. 낙엽이 왜 생각났는지 궁금했다. 가만히 떠올려 보니, 무심히 흘러가는 모습이 어쩌면 나를 닮았다고 느꼈던 것 같았다.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없는 걸음, 떠밀리듯 굴러가는 하루하루. 이상하게도 마음 한구석을 무겁게 눌렀다.
요즘 내 삶이 그랬다. 흘러간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믿었다. 바람에 휩쓸려 움직이는 낙엽처럼, 나 역시 방향 없이 떠밀려 다니고 있었다. 무엇을 선택했다고 믿었지만, 실은 선택의 여지가 없었던 것에 가까웠다.
며칠 뒤 저녁이었다. 유난히 붉은 하늘이 눈에 들어왔다. 어둠이 서서히 내려앉는 사이, 하늘 한쪽은 빛을 더 짙게 머금고 있었다. 도시의 불빛이 하나둘 켜지기 시작했다. 늘 보던 풍경이었다. 매일 걷던 길이었으니까. 하지만 그날은 다르게 보였다.
걸음을 멈추고 한동안 하늘을 바라봤다. 붉게 물든 하늘은 묘하게 마음을 울렸다. 뭔가 그리운 것도 같고, 조금 슬픈 것도 같았다. 내가 잃어버린 무언가를 그 하늘이 가리키는 것만 같았다.
가만히 돌아보니, 나는 그동안 너무 바빴다. 낙엽도, 하늘도, 그리고 나 자신도 제대로 본 적이 없었다. 내가 지나쳤던 것들에는 언제나 '바쁘다'는 이유가 따라붙었다.
떠올려보니 그런 장면들이 더 있었다. 지하철에서 스쳤던 낯선 얼굴, 카페 창밖으로 보았던 비, 길에서 들려왔던 음악. 그땐 아무렇지 않았던 것들이다. 다 대수롭지 않은 순간들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보니, 그 모든 것이 내 안에 남아 있었다.
잊혔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아니었다. 그저 내가 미처 보지 못했던 것들이었다. 흘러가버렸다고 믿었던 순간들이 사실은 내 안에 무언가를 남겼다. 그때는 알지 못했던 감정들이 지금에서야 나를 흔들고 있었다.
그 장면들은 내가 얼마나 무심히 흘러왔는지를 보여줬다. 내가 놓친 것이 많았다는 사실도 깨닫게 했다. 하지만 그 아쉬움이 후회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오히려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나를 이어주는 다리가 되어줬다. 지나간 순간들이 뒤늦게 내 삶의 깨달음으로 돌아왔다.
그래서 그 이후로는 조금 더 천천히 보려고 했다.
발밑의 낙엽도,
붉게 물드는 하늘도 허투루 흘려보내지 않으려 했다.
어떤 순간들이 내게 다시 말을 걸어올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삶은 스쳐가는 장면들로 채워졌다. 하지만 그 스침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 지나갔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내 안에서 나를 바꾸고 있었다.
나는 그것을 조금씩 알아가고 있었다. 삶은 그렇게 조용히, 나를 만들어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