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은 친구와 약속이 있어 먼저 약속 장소에 도착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도 친구는 나타나지 않았고, 연락도 닿지 않았다. 휴대폰을 몇 번이나 확인했지만 여전히 소식이 없었다. 그러자 초조함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왜 이 시간이 이렇게 불편할까?’ 하고 스스로에게 물었다. 그런데 문득 생각이 들었다. 기다림이 그저 답답한 시간이 아니라, 나를 돌아볼 기회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그렇게 마음을 고쳐먹고 보니 기다림이 조금 다르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초조한 마음을 가라앉히고, 이 시간을 나를 돌아보는 기회로 삼아보기로 했다. 연락이 끊긴 이 시간이, 오히려 나에게 뜻밖의 성찰의 시간이 되어간 것이다.
사실 우리는 하루하루 끊임없이 무언가를 기다리며 산다. 아침의 커피 한 잔을 기다리고, 버스를 기다리며, 때로는 더 멀리 있는 미래를 기다린다. 기다림은 우리 일상 속에서 피할 수 없는 것이지만, 언제나 그 시간이 더디게만 느껴진다. 그러나 그 안에는 우리가 미처 알아차리지 못한 깨달음이 숨어 있었다.
기다림은 우리의 인내심을 시험하고, 불안과 마주하게 만든다. 그러나 그 불안 속에서 우리는 스스로를 깊이 들여다보게 된다. 감정의 흐름이 서서히 드러나고, 그 과정을 통해 우리는 조금씩 성숙해진다. 기다림의 시간이 없었다면, 그 끝에 도달한 순간의 기쁨은 결코 그만큼 깊지 않았을 것이다.
또 다른 날, 비 오는 날 우산 없이 길을 걷고 있었다. 빗줄기가 잦아들기를 기다리며 잠시 서 있었는데, 그 순간 나는 더 이상 비가 멈추기를 바라지 않았다. 오히려 빗소리를 들으며 그 순간의 고요를 즐기기 시작했다. 기다림의 시간은 더 이상 지루하지 않았다. 그 기다림 속에서 내 마음은 이미 충분히 충만해져 있었다.
삶은 기다림의 연속이다. 우리는 무언가를 바라며 살아가고, 그 기다림 속에서 스스로를 단단하게 만들어간다. 기다림은 결코 헛된 시간이 아니다. 그 시간은 우리에게 내면을 들여다보고, 다듬을 기회를 준다. 기다림이 없었다면, 우리가 마주할 순간은 그만큼의 깊이를 지니지 못했을 것이다.
기다림의 진정한 의미는 그 끝에 있는 결과가 아닌, 기다림 그 자체에 있다. 기다림은 단순히 불편한 시간이 아니라, 그 안에서 내면의 성숙을 담고 있다.
기다림은, 그 자체로 완전하다.
신세연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