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재중인 어머니를 안고 살았다. 어머니의 살갗을 만지고 싶어도 만질 수 없다는 것, 숨결을 느끼고 싶어도 느낄 수 없는 게 세상에서 가장 큰 슬픔이었다. 자라면서는 생일 아침에 차려주는 아침밥을 먹어보는 게 가장 큰 소망이었다.
어느 날 어머니의 자리에 시가 찾아왔다. 시는 늘 부재중인 어머니 같아서 살갗을 만지려 해도 만져지지 않았고 숨결을 느끼고 싶어도 쉽게 느껴지지 않았다. 어릴 적 어머니가 들려주었던 이야기를 들으며 때로는 겁에 질려서, 때로는 가슴이 아파서 울었던 것처럼, 마음을 울릴 수 있는 시 한 편이라도 쓰고 싶었다.
마음속에서만 맴돌 뿐 머릿속으로 올라오지 않는 시의 형체를 찾아 꽤 많은 방황을 했다. 어머니의 무덤 가는 길에서 보았던 바람이며 새 울음이며, 그 단편 소설만큼의 배경이 그리웠다. 장편 소설만큼의 어머니 이야기가 들어있는 무덤 앞에 퍼지고 앉아 마음 놓고 펑펑 울어 보고 싶었다.
내가 시를 쓰고 싶을 만한 이유였다. 어머니 없는 세상에서 어머니의 막내딸은 세상의 어둡고 낮은 자리에서 이렇게 저렇게 살았노라고. 그래서 아프지 않으시냐고.
내가 시인의 이름을 부여받던 날, 어머니의 무덤 앞에 찾아가 왜 그리 일찍 제 곁을 떠나가야 하셨느냐고, 살아온 날을 고자질도 해보고 따지고도 싶었다.
제대로 여물어지지 못했던 내 시는 결혼할 때 세트 샴푸를 사고 사은품으로 받은 우리 집 두레 밥상처럼 찌든 때가 덕지덕지 묻었지만, 유행이 지나 꽃잎이 바래버린 접시처럼 낡았지만, 내가 보아왔던 세상처럼 좁고도 어두웠겠지만, 내가 끓인 된장찌개처럼 간도 맞지 않았겠지만, 두고두고 내 손맛이 느껴지는 시를 쓰고 싶었다. 내 작은 눈으로 보았던 어둡고 낮은 세상 사람들의 삶이 웃음으로 승화될 수 있는 시였으면 했다.
이제는 개망초꽃도, 구불구불한 산길도 아닌 곳에 어머니 무덤이 있다. 무덤은 그 자리 그대로인데 주변이 달라졌다. 초록이 짙었던 곳은 억새꽃이 휘날리고, 이제 나는 그렇게 가슴앓이했던 시를 쓰지 않는다. 하늘과 가장 가까운 곳에 계시는 어머니를 이제는 짝사랑하지도 않는다.
언제나 내 마음 깊은 곳에 자리했던 어머니와 짝사랑했던 시의 자리에, 이제는 내가 살아온 길을 넣어두고 어루만지며 살고자 한다. 이쯤 했으면 나도 사랑받을 자격쯤은 되지 않을까 생각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