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부터 장래 희망을 기재하는 칸 앞에서는 항상 깜깜했다. 종일 산과 하늘밖에 보이지 않는 감잎만한 동네에서 부모님처럼 농사를 지으며 가난에 찌들려 살고 싶지는 않았고 가끔 흑백 텔레비전의 드라마에 등장하는 낯선 직업들은 내가 아는 세상에는 존재하지 않는, 그야말로 텔레비전에서만 볼 수 있는 직업에 그칠 뿐이라고 생각했다. 해서 비워두었거나 대부분의 아이들이 적어내었음직한 선생님이나 간호원을 바꿔가며 장래희망란에 적어냈던 기억이 희미하게 남아 있다.
당시 동네에서 가장 똑똑하고 학식이 있는 분은 이장 아저씨라 생각했는데 그 아저씨는 자주 술에 취해 아이들을 때리고 벌주었기 때문에 존경이라든지 닮고 싶은 분과는 거리가 멀었다.
또한 남동생과 생일을 바꿔치기해놓고 2년이나 늦게 세상에 이름을 등재한 것에도 모자라 주민등록번호마저 남자 번호로 바꿔놓는 바람에 하마터면 신체검사를 받을 뻔했던 일 등을 생각하면 누군지도 모르는 면사무소 공무원도 신뢰 없는 사람이긴 마찬가지였다.
아주 사소하고 조그마한 잘못에도 너그럽지 못하고 걸핏하면 아이들을 매로 다스리는 선생님은 또한 절대 되고 싶지 않았다.
아련하게나마 살아보고 싶은 삶은 있었다. 도시도 아니고 시골도 못 되는 반촌 즈음에 크지도 작지도 않은 하얀 집을 지어놓고 일하러 간 남편이 돌아올 때까지 밥 짓고 빨래하고, 텃밭을 일구다가 감나무 아래서 바람이 넘겨주는 책을 읽다가, 저녁때가 되면 남편의 밥상을 맛깔스럽게 차려놓고 아이를 업고 대문 앞에서 기다리고, 가끔은 낮잠도 한숨 자고, 일주일에 두어 번 문화센터에서 개설한 강좌에서 자기 개발도 하는 여인상을 머릿속에 그려보기도 했다.
무슨 원대한 꿈이나 큰 욕심을 부린 것 같지도 않은데 살아오면서 내가 꿈꾸었던 집, 내가 꿈꾸었던 생활은 단 한 번도 해본 적 없었다. 가장 현실적으로 내 삶의 방향을 가리켜 줄 만한 사람을 찾지 못했던 탓이리라. 되돌아보면 긍정적인 시야를 가지지 못하고 다른 사람의 좋은 점보다 좋지 못한 점을 더 크게 보아온 내 잘못이 더 클 것이다.
글을 쓰면서부터 참 많은 사람을 만나왔다. 더러는 부딪히고 더러는 경쟁하면서 어떤 사람에게는 지식을 배우고 어떤 사람에게는 삶의 자세를 배우기도 했다. 저런 사람처럼은 살지 말아야지라는 생각을 가지게 한 분도 있었다.
하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닮고 싶고 존경하고 싶은 사람은 삶을 통해 나를 조용히 반성하게 하는 분이셨다. 가끔씩 마음이 어지러울 때마다 그분의 너그러운 인품을 통해 그을러진 마음을 닦아보기도 한다. 내 삶의 모델이 되는 분이다.
이제는 나이가 점점 들어가는데 장래희망이 늘어난다. 내가 가진 것이 티끌만큼이라 할지라도 마음의 평화가 가득했으면, 자식들이 내 삶을 닮고 싶어 할 만큼 올바른 부모가 되었으면, 주위 사람들에게 조그마한 도움이라도 될 만한 사람이었으면, 단 한 번 스쳐가는 사람에게도 미소 짓게 할 수 있는 사람이었으면, 내 커다란 잘못을 뉘우치고 다른 사람의 작은 실수에 너그러운 사람이었으면, 단 한 사람에게만이라도 내가 희망이 되어 줄 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누군가의 방향이 되어 주는 사람이었으면….
지구 끝 소식까지 낱낱이 알 수 있는 인터넷 덕분에 세상은 넓어 할 일도 많고 장래희망란에 적어 넣을 직업도 다양해졌다. 하지만 내가 나아갈 수 있는 삶의 길을 가장 잘 제시해 줄 수 있는 사람은 나를 잘 아는 주위 사람이란 생각이 든다.
나도 누군가의 삶에 모델이 될 수 있을까. 누군가의 방향을 제시해 줄 만한 삶을 한 번이라도 살아보았는가! 내가 누군가의 방향이 되어 주고 있는가! 오늘 하루도 내가 꿈꾸는 방향으로 살아가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