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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빛구슬 Jul 14. 2023

버려진 쓰레기로 깜짝 선물을 준비한 남편

삶을 빛내는 소소한 행복들

입구에서 사람을 맞이해 주는 나무 인형


어서 오세요

며칠 전 우리 집 입구에 사람들을 맞이해 주는 특별한 이가 생겼습니다. 공손하게 두 손을 모으고 고개를 숙이고 있는 나무 인형입니다. 그 모습이 다소곳해 들어서다 말고 멈칫해서는 고개를 숙이게 됩니다. 안녕하세요, 인사까지 나눕니다. 작은 인형 하나가 뭐라고 보는 순간 사람의 마음이 선해집니다. 하루의 피로가 풀리는 기분이랄까요. 인형이 말하는 듯해요. 어서 오세요. 오늘 하루도 수고하셨네요,라고.


이 인형은 지난 주말에 남편이 만든 작품이에요. 봄에 잘라낸 매화나무의 몸통을 버리지 않고 말려 두었다가 만든 것이지요. 그동안 매화나무는 우리에게 많은 매실을 선물해 줬지만, 올봄에는 잎이 너무 무성해 벌레가 생기는 불상사가 발생했어요. 어쩌면 바람이 잘 통하지 않아 숨 쉬는 것이 힘들어 그리 된 것이겠지요. 처음에는 매화나무의 잔가지만을 정리할 생각이었는데, 해마다 높이 달린 매실을 따느라 힘들었던 기억이 떠올라 높이를 조절하기로 했어요. 과감하게 몸통을 잘라내는 일을 하면서요.


남편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전기톱으로 매화나무를 자를 때는 제 몸이 다 찌릿찌릿했어요. 전정가위로 가지를 자를 때는 나무가 이발을 하고 있는 것 같아 시원한 느낌이 들었는데, 몸통을 자를 때는 큰 수술이라도 하는 것처럼 마음이 조마조마했어요. 다행히 잘린 나무 사이에선 금세 잎이 자라나 안심했어요. 어찌 되었건 우리가 벌레를 없앤다는 명목으로 나무를 아프게 한 건 사실이니까요.


나무를 자른 후 가지를 정리하는 것도 문제였어요. 종량제봉투에 담으려면 길쭉한 가지들을 가위로 잘게 잘라야 하는데 그게 말처럼 그리 만만한 일이 아니거든요. 손에 물집이 잡히도록 가지들을 잘라내 정리했더니 어느새 그 양이 20킬로 10포대를 훌쩍 넘었어요. 어찌어찌 잔가지는 그렇게 처리했는데 이제 커다란 몸통들이 문젯거리로 남았어요. 몸통을 자르는 것은 잔가지를 정리하는 것과는 비교가 되지 않았어요. 그래서 자르다 말고 마당 한 구석에 방치해 말렸는데, 골칫거리였던 그 몸통이 저렇듯 예의 바른 인형이 되었네요. 환골탈태가 따로 없습니다. 그게 지난 토요일의 일이었어요.



삶을 빛내는 소소한 일상

그리고 그다음 날, 남편은 또 다른 작품을 탄생시켰어요. 한가로운 일요일 오후였어요. 그날 난 에어컨 아래에서 옥수수를 오독오독 씹어먹으며 신선놀음에 빠져 있을 때였죠. 그런 나를 남편이 불러냈어요. 남편의 얼굴은 발갛게 달아올라 있었고, 온몸에선 열기가 뿜어져 나왔어요. 얼굴 위로는 투명한 물방울들이 열기를 식히려는 듯 주룩주룩 흘러내렸고요. 아직도 난 이런 고생을 사서 하는 남편을 이해할 수가 없어요. 굳이 이 일이 이 더위에 해야만 하는 일도 아닌데 말이에요. 본인 말대로 고생이 아니라고 생각하니까 즐거운 걸까요.


"아, 더운데 좀 쉬지. 뭘 또 만들었어요?"

나의 말에 남편이 턱을 내밀어 마당 한편을 가리켰어요. 고개를 돌려보니 그곳에는 서로를 꼭 껴안고 있는 나무인형이 있었어요. 작품명이 부부라나 뭐라나.


"우리야."

남편이 말했어요.


"어머, 야해."

내숭을 떨 생각은 아니었는데 두 손이 저절로 얼굴로 향했어요. 수줍게 안고 있는 인형들에 남편과 나의 모습이 투영돼 보였으니까요.


그런데 인형들을 보고 있노라니 몸이 저릿해지면서 마음이 울컥했어요. 행복감이었어요. 그러고 보니 행복은 쓰나미처럼 밀려와 온몸을 적시는 게 아니라 가랑비처럼 서서히 스며드는 게 아닌가 싶었어요. 개그 프로를 볼 때의 박장대소가 아니라 입꼬리를 살짝 올리는 미소에서 오는 그런 행복으로요. 행복은 강도가 아니라 빈도라는 말은 맞는 거 같아요. 아무리 큰 행복이라도 시간이 지나면 사그라드니까요. 그러니 우리들은 커다란 행복을 잘게 잘게 나눠, 소소한 행복들로 소분한 후 길게 길게 누려야 할 것만 같아요.


요즘처럼 지루한 장마가 계속되는 날에는 잠시 비치는 햇빛에도 마음이 환해져요. 푹푹 찌는 거리를 걷다 기대 없이 들어간 카페에서 마신 아이스아메리카노 한 잔에 온몸의 피로가 풀리기도 하고요. 우리는 사소한 일에서 행복을 느낍니다. 더워 죽겠네 하다가도 다양하게 즐길 수 있는 과일이 있어, 온 세상을 물들인 초록이 있어 이 계절이 좋다고 말합니다.


세상에는 감사할 일들이 많습니다. 작은 일들에 감사하다 보면 세상은 행복투성입니다. 삶은 감당하기 벅찬 초대형 행복에 의해 빛나는 것이 아니라, 매일 문지르고 닦아낸 소소한 일상들에 의해 빛나고 있습니다. 저는 그것을 버려질 뻔한 작은 나무토막에서, 그 토막을 다듬은 남편의 땀에서 보게 되었습니다. 행복을 만드는 게 물질이 아니라 정신이란 걸 알아차리면 행복은 조금 더 쉽게 얻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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