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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두 Jul 02. 2021

다시 책장을 들이기까지

오래 전 이야기


서랍 속에 있던 글을 꺼내어 봅니다.

무려 2019년에 적어둔 글이네요. 그러니까, 이 책장을 들인 지 2년쯤 되었나봅니다.

여유롭게 사이사이 비어 있던 이 책장마저, 지금은 더 들어찰 자리가 없게 꽉꽉 채워지고 말았습니다.

이러려던 계획이 절대 아니었는데, 그렇게 되어버리고 말았네요.

비우고 또 비우려고 하는데, 채우는 속도를 도무지 따라잡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책 욕심, 아마도 생을 다하기 전에는 없어지지 않을 것만 같네요.


오래 전의 이야기, 그렇지만 지금도 진행 중인 우리들의 이야기

한번 들어보실래요? :-)





거실에 책장을 들였습니다. 불어나는 책을 감당하지 못해 책장이 더 필요하기도 했고, 집에서 가장 오래 머무는 공간인 거실에 좋아하는 것을 가까이 두고 살고 싶은 까닭도 있었던 연유입니다. 서재에도 네 개를 이어 붙인 책장이 있지만, 아이들 전집이며 각종 책이 늘어나면서 어른들 책을 꽂아둘 공간이 점점 협소해졌습니다. 공간 확보를 위해 책을 중고숍에 보내기도 하고, 도서관에서 대출도 해보고, 안방에도 작은 책장을 두면서 버텨보려 했지만 정리하는 속도보다 책이 불어나는 속도가 빨라 도무지 감당하기가 어려워지더군요.


거실 한 면을 차지할 책장이기에 적당한 제품을 오래 서치 했습니다. 예전에 배우 이보영 님이 쓴 《사랑의 시간들》이라는 책을 보았는데, 거기에 실린 거실 서재 사진이 오래 기억에 남았습니다. 깨끗하게 짜넣은 하얀 책장에 오르내릴 수 있는 이동식 사다리가 달린 서재. 그 옆에 앉아 있으면 아름다운 꿈을 꿀 수 있을 것 같은 그런 분위기의 공간이었습니다.


이전에도 거실에 서재를 두려고 시도해본 적이 있습니다. 아이를 낳기 전, 거실 사이즈에 꼭 맞게 원목 책장을 주문하고, 거기에 책상 두 개도 나란히 놓았습니다. 남편과 함께 거실에서 함께 책도 읽고 각자가 좋아하는 것들을 하며 함께 시간을 보내는 일상을 꿈꾸었지요. 그 집에서 일 년을 채 못 살고 다른 집으로 이사하면서 역시 같은 책장을 거실로 들였습니다. 그 집으로 이사하고 얼마 안 되어 첫아이를 낳고, 거실 책장은 차츰 아이의 책들로 채워졌지요. 예상치 못한 일은 아이가 직립보행(!)을 시도하면서 일어났습니다. 책장을 잡고 일어나고, 마치 암벽등반을 하듯 책장 위로 기어올라가는 것까지는 어른이 옆에서 봐주면 그럭저럭 괜찮았습니다.


문제는 아이가 책장에서 책을 뽑아서 시원하게 패대기치는 데에 재미를 들렸다는 것이었지요. 우르르 책장에서 책이 떨어져 활짝 펼쳐지는 모습을 보면 신이 났던 걸까요. 아이의 '책 패대기치기' 놀이는 꽤 오랜 시간 지속됐습니다. 첫아이가 태어난 집에서 약 3년을 살다가 마침내 우리 가족은 처음으로 '내 집 장만'이라는 걸 하게 되었습니다(물론 절반은 은행님 것이었지만, 그래도 말이지요). 딸아이의 책놀이 때문만이 아니라, 20평형의 좁은 거실에서 집안을 꽉 채운 듯한 책장에 어지러이 꽂힌 책들을 보면 약간 체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던 터라, 새 집에서는 책장을 나누어 각각 다른 방으로 보이지 않게 넣었습니다.


그렇게 거실에서만큼은 눈에 띄지 않게 넣어버렸더니 얼마나 속이 시원하던지요. 우리는 둘째 아이도 낳고 키우며 그 집에서 복닥복닥 약 4년을 함께 살았습니다. 두 아이가 커가면서 운신의 폭도 커지고, 덩달아 짐도 많아지면서 우리 부부는 또 한 번의 이사를 감행했습니다. 영혼까지 끌어모아 대출을 받고, 인테리어까지 마친 집에 들어온 것이 작년 3월의 일입니다. 결혼한 후 인테리어를 해본 것도 이번이 처음이었습니다. 이 집으로 이사 오면서도, 거실에 물건이 많아지는 것을 보고싶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거실에 있는 가구라고는 달랑 3인용 소파 하나, 그리고 에어컨과 공기청정기를 포함한 가전뿐이었습니다. 텔레비전은 벽걸이로 달고 주변에 수납장 하나 두지 않았지요. 그 깔끔하고 미니멀한 상태가 좋아 1년이 넘는 시간 동안 빈 벽에 떨어지는 조명에 한껏 만족하고 살았습니다.


그런데 보시다시피, 다시 거실은 책장이 차지하게 되었네요. 답답해 보이지 않게 오픈형 선반으로 된 것으로, 가장 좋아하는 원목 중 하나인 화이트 오크에 철제 역시 화이트로 된 깔끔한 제품으로 골랐습니다. 유명한 브랜드 제품은 아니지만 온라인에 남겨진 리뷰가 하나같이 좋았고, 직접 받아 설치하고 사용하며 느끼는 소감 역시 꽤 만족스러웠습니다. 무엇보다, 좋아하는 책들을 가까이 두고 그 옆에 앉아 이렇게 글도 쓰고 책도 읽는 순간이 너무 행복해졌지요. 우리집 냥이도 좋은지 책장 한 칸을 차지하고 앉거나 누워 잠을 오래 청하기도 합니다. 지금은 제 뒤에 길게 누워 늘어지게 잠을 자고 있네요.


언젠가 사다리가 필요할 만큼 조밀하고 높은 책장을 가져보는 것도 좋겠지만, 지금 이만큼의 서재도 과분하게 느껴질 만큼 충분히, 혹은 넘치게 좋습니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그렇듯 책방을 좋아해서 우리나라의 크고 작은 책방을 참 많이 찾아다녔는데요, 멀리서 찾을 것이 아니라 내가 매일 살고 있는 공간에 직접 그 분위기를 들여오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했습니다. 나의 관심사와 취향으로 채운 나만의 책방. 혹은 우리 가족의 책장. 그렇게 우리는 조금씩 더 우리다워져갑니다.


지금 이 책장에는 저의 책만이 아니라 여덟 살 딸아이가 보는 동화책, 수학 교재, 카카오프렌즈 '세계 역사 문화 체험' 만화 시리즈도 꽂혀 있습니다. 둘째인 네 살 아들의 미피 그림책 세트와 숨은그림찾기 책, 레고와 베이블레이드(그 또래의 최애템 팽이라는군요, 저도 올해 처음 알게 된 세계입니다. 그리 반갑지만은 않아도 대체로 아들 키우는 엄마들은 필히 거치게 되는 과정이라 합니다. 이제는 받아들였습니다)도 올려져 있습니다. "여기에는 엄마 책 꽂을 건데." 했다가 아이들에게 얼마나 원망을 들었는지요.


아, 남편의 책들은 어디 있느냐고요? 원래 있던 서재의 책장에 조금 남아있습니다. 남편은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너랑 결혼하고 늘어나는 책들을 보면서 나는 집에는 책을 사두지 않기로 했어. 책을 사면 그냥 사무실에 두고 볼 거야." 배려인지 체념인지 모를 말이지만 아무튼 그리하여 남편의 책은 점차 차지하는 공간이 차츰 줄고 말았다는 아주 조금 슬픈 이야기입니다.


오늘도 우리는 책을 읽습니다. 읽거나, 누군가에게 읽어주거나 혹은 깔깔거리며 듣거나. 여기에서 자라나는 우리의 꿈은 어떤 방식으로 꽃피우게 될까요. 여기까지 온 것도, 모두 책이 나를 이끌어주기 때문이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겁니다. 그래서 다시 나는 오늘도 책에 이끌려 갑니다. 그것도 매우, 무척이나, 분명하게도 기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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