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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두 Sep 18. 2021

아버님, 며느리를 믿으셔야 합니다

시아버님과 며느리가 책을 읽다 생긴 일

오늘은 우리 아버님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남편과 결혼한 이후 역시 십 년 이상의 세월을 함께해 온, 아버님. 나의 시아버님에 대해서.


아버님에 대해서도 정말 쓸 이야기가 한바닥이지만, 오늘은 얼마 전에 있었던 에피소드로 살짝 맛보기 정도로만 이야기해볼까 한다.


(많은 아버지들이 그러하시듯) 아버님께서는 남편이 고등학생 즈음 조금 늦게 신앙생활을 본격적으로 시작하셨는데, 이후 뭐든 열정적이신 성격답게 신앙에도 교회생활에도 매우 열심이셨다. 배움에 대한 열망이 강하시고, 가혹하리만큼 성실하고 열심히 살아오셔서 일종의 존경심을 갖게 되는 분. (우리 가족은 약간 뭐든 '설렁설렁'인 분위기인 데 반해, 어머님도 그렇고 시부모님 두 분 다 매우 성실파이신 분들)


이건 또다른 이야기지만, 몇 년 전 지금 살고 있는 집으로 이사 오면서 전면 인테리어를 하게 되어 시댁에서 약 3주 간 함께 살게 된 적이 있다. 저녁 식사를 하고 8시면 집안의 불을 소등하고 취침을 준비하시는 놀라운 생활 패턴을 가지신 분들이었는데, 덕분에 나도 바른 생활을 하게 되어 4시 반이면 눈이 떠지곤 했더랜다.


그때 새벽마다 온라인 예배를 드리며(코로나 전이었는데 이미 앞서가셨어..!) 조용히 읊조리며 기도하시던 아버님의 목소리를 잊을 수가 없다. 그런 때가 아니라도, 두 분은 종종 3시 반이면 일어나셔서 채비하고 새벽 기도를 다녀오시기도 한다. 예배 후 우리집으로 오셔서 아이들을 봐주시기도 하고. 이러니 내가 두 분을 존경하지 않을 수가 있나.


나도 작년 1, 2월에 3월부터 시작될 담임 업무를 앞두고, 백만년만에 약 두 달 동안 꼬박 새벽예배(라고 하지만 우리 교회에는 6시 반 이른아침예배가 있다)를 다닌 적이 있다. 아마도 그때 매일 새벽 꾸준히 기도하시던 아버님의 모습이 알게 모르게 스며든 것도 있지 않았을까 싶다.




그런 아버님께서 종종 매체에 소개되거나 누군가에게 추천을 받은 책을 주문해달라고 부탁하시는 때가 있다. 그런 때 이런저런 책을 주문해드리기도 하고, 때로는 내가 보고 좋았던 책을 선물해드리기도 한다.


그러니까 이 날은, 아버님께서 청파교회 김기석 목사님의 『모호한 삶 앞에서』를 부탁하셨더랜다. 아마도 이때는 남편이 주문을 했었던 것 같고, 우리집으로 배송되어 아버님 오시기 전에 냉큼 내가 먼저 펼쳐 읽어보기도 했다.


창가에 햇살이 어여쁘게 들어오던 날, 책을 넘겨보던 순간이 기억난다. 읽으면서 참 좋았고, 아버님 선물해 드리고 나도 한 권 사고 싶을 만큼 페이지마다 귀하게 읽었다. 그렇게 읽고 아버님께도 이 책을 드리게 되었는데.


어느 날 퇴근하고 왔는데 아버님께서 이런 이야기를 하시는 거다.


아버님 :  책에  뭐야 책갈피하는  있잖니, 그게 있으면 좋겠더라고. 그런 생각도 있고  책의 모양이 왜 이런가 싶기도 해서 출판사에 전화를 해봤단다.


 : 아, 그러셨어요?


(*참고로 이 책은 표지를 벗기면 책등이 노출된 사철제본 방식으로 제작되었다. 그렇지 않아도 이렇게 제작하면 파본으로 오해하시는 분들이 많다고. 그래서 아마 이걸 문제라고 생각하셨나보다 하고 설명을 드림)


(이어서) 아버님, 이게 파본이 아니구요, 이 책이 아마 사철제본 방식이라고, 끈으로 묶어서 제작한 걸 하나의 스타일로 이렇게 일부러 노출해서 보여주는 경우가 있어요. 요새 약간 유행하는 방식이기도 하고요. 이게 멋있어서 좋아하는 사람들도 있어요.


아버님 : 아, 그렇구나. 그런데 내가 전화를 걸었는데 젊은 분이 전화를 받으시는 것 같더라고. 얘기하다보니까 이분이 그냥 직원분이 아니라 이 출판사 대표시라는 거야. 그런데 참 점잖고 친절하게 전화를 받으시더라고.


 : 와, 아버님 그분과 직접 통화하신 거예요? 혹시 성함이 김** 아니셨어요?


아버님 : 어, 맞아 그런 것 같구나.


 : 아버님! 그분 저랑 남편 교회 청년부 때 청년부 담당 목사님이셨어요! 목회 하시면서 출판 일도 겸임하셨고요. 저희한테 참 귀하고 감사한 분이셔요. 저희 처음 만나기 시작할 때 가장 먼저 뵙고 인사드린 분이기도 하고요. (자세한 이야기는 -> 여기에​)


아버님 : (약간 당황하시며) 아, 그러니? (점점 톤이 높아지심) 가만 있어보자, 내가 며느리 얘기도 했는데. 너 나한테 고마워해라, 내가 우리 며느리 흉은 하나도 안 보고 책도 많이 읽고 한다고 아주 칭찬을 했다.


 : 하하, 아버님! 제 흉을 볼 게 뭐가 있나요. 저처럼 착한 며느리가 어디 있다고요. ㅋㅋㅋ 저 목사님께 한번 연락드려봐야겠네요. ㅋㅋ




그 후 목사님께 연락도 드리고, 오랜만에 통화도 하게 되었다!


 : 목사님! 얼마 전에 김기석 목사님 책으로 전화 한 통 받지 않으셨어요?


목사님 : 어~ 그런 것 같아.


 : 목사님! 그분이 저희 시아버님이셔요!! ㅋㅋ

   (미주알고주알)


목사님 : 허허허~ 세상에, 정~말 세상 좁다~ 그분이 연두자매 아버님이셨어? 이러이러하게 전화를 주셨더라고~ 그래서 이러저러하게 이야기 나눴지. 말씀을 어찌나 잘하시던지, 아마도 **형제(남편)가 아버님 닮아서 그렇게 말을 잘하나봐~


 : ㅋㅋ 기본 성정은 어머님을 많이 닮긴 한 것 같은데, 아버님도 많이 닮았나봐요. 아무튼 목사님 너무 재미있네요! ㅎㅎㅎ



그렇게 통화가 마무리된 후. 바로 아버님과 통화하면서 이야기를 나눴다.



 : 아버님! 목사님과 통화했어요 ㅋㅋㅋ 목사님께서 아버님 말씀 재미나게 하신다고 너무 좋은 분이라고 하시던데요. ㅎㅎ


아버님 : (여전히 당황) 아이고, 내가 아무렇지도 않은 척 했지만(아버님 다 티났어요) 내가 그때 얼마나 당황했는지 식은땀이 흐르고 콧잔등에도 땀이 나더라고. 니 얘기 듣고 뭐 실수한 거 없나 생각해보고 그랬다니까.


 : ㅋㅋㅋㅋㅋㅋㅋ


아버님 : 그래도 실수한 건 없는 것 같아. 내가 니 칭찬 많이 했다니까. 역시 사람은 착하게 살아야 돼. ㅎㅎㅎ


 : 아버님 그러게요 ㅋㅋㅋㅋㅋㅋㅋ

   (어쩌고저쩌고)


아버님 : 언제 목사님 모시고 식사 한번 같이 하면 좋겠구나. 그렇게 너희랑도 인연이 있는 줄 몰랐다.


 : 네, 좋지요. 너~무 좋은 분이셔요. 1인 출판사로 혼자 운영하시는데 좋은 책들 정말 많이 나오고요. 인품도 훌륭하시고 좋은 책도 많이 내시고 정말 좋은 분이세요.



그렇게 아버님과 목사님, 그리고 나를 이어준 이 책에 쓰인 머리말. 김기석 목사님께서, 우리 마음 속 영원한 청년부 목사님이자 지금은 출판사 비아토르 대표님으로 계신 김도완 목사님께 써주신 마음.


언제 모시고 식사를 해야지, 해야지 하다가 코로나가 막아서고 삶의 바쁨에 묻혀 자꾸 미뤄지고는 했는데. 다들 2차 백신까지 접종하고 나면 정말 남편과 한번 모시고 근사한 데서 식사를 대접해드리고 싶다.


목사님과의 인연에 대해서도 언제 한번 따로 써보고 싶고. :) 나는 아무래도 사람들 이야기를 쓸 때 제일로 신나는 사람인 것 같다.


아버님도 목사님도, 좋은 분들이 울타리처럼 곁에 계셔주심에 감사하며. 때로 험한 길을 헤쳐가는 순간에도 함께 기도해주시는 손길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을 뒤늦게 깨닫는다.


감사하고, 언제나 존경하고, 또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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