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당해도 즐거워요
6학년 땡땡이는 유난히 옷을 얇게 입는다.
- 선생님, 너무 추워요.
- 어디에서 왔어요?
- 운동장에서요.
- 열 제보자.
정상 체온이다. 혹시 모를 상황에 대한 문진을 오랫동안 했는데 특별한 이상이 없었다.
- 추위를 많이 타나보구나. 추우면 좀 침대에서 이불 덮고 있어요.
- 네
땡땡이는 11월이 되면서부터 체육시간에 춥다고 여러 번 왔다. 어느 날은
- 땡땡아, 옷 따뜻하게 입고 다니는 것 어떠니?
- 싫어요.
- 그래. 추운 것보다는 낫잖아.
- 그래도요.
땡땡이는 20분 정도 따뜻한 침대에서 쉬면 괜찮아진다. 땡땡이가 가고 옆 기간제 선생님께서
- 1학년도 아니고 6학년인데, 곧 있으면 중학생인데 왜 그럴까요?
- 아무래도 제 생각에는 몸도 몸인데 마음이 추운 것 같아요. 좀 긴장되어 보이기도 하고요. 그래서 올 때마다 침대에서 쉬게 해 주려고요.
- 네. 그래도 너무 황당해요.
초등학교에는 날씨가 좀 추워지면 특별한 이상도 없는데 춥다고 보건실에 오는 학생들이 꽤 있다. 기온이 떨어져서 추운 건데 아파서 추운 걸로 착각하는 초등학생들. 주로 저학년에 많이 분포되어 있다.
만약 6학년 땡땡이가 긴장되거나 불안해 보이지 않았다면 나는
- 춥다고? 그럼, 옷 따뜻하게 입어요. 따뜻한 물 한잔 마시고 교실로 갑시다.
라고 말했을 것이다. 매번 담임이 땡땡이가 춥다고 이렇게 보건실에 보내는 것을 보면 내가 모르는 뭔가가 땡땡이에게 있을 수도 있다
6학년 여학생 한 무리가 들어온다.
- 선생님, 너무 추워요.
- 그래.
마음이 추워 보이는 학생은 아니다. 한 무리인 걸 보니 마음이 춥다기보다는 참새가 방앗간 들리 듯 들린 것 같다.
- 선생님, 너무 추워서 그러는데요, 일회용 핫팩 주세요?
귀엽다. 어쩌면 말을 저렇게 귀엽게 할까? 표정도 귀엽다. 나는 귀여운 학생들 앞에서 한 없이 무너진다. 젤리를 하나씩 주고
- 핫팩?
- 네. 너무 추워요.
- 여긴 핫팩 없다.
- 있는 줄 알았어요.
- 그래. 여기 얼음팩이 있다고 핫팩이 있는 건 아니야? 전기 핫팩은 있어. 배 아프면 배에 올려놓는 것.
- 얼음팩이 있으니까 당연히 핫팩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 그래. 그럴 수도 있겠다.
학생들이 우르르 나가면서 한 학생이
- 여긴 뭐든지 다 있는데. 이상하네.
라고 말한다. 나는 또다시
-없는 것도 있단다.
라고 외쳤다. 뭐가 즐거운지 웃는다.
전혀 아파 보이지 않는 6학년 여학생이 들어온다.
- 무슨 일이야?
- 선생님, 조금 전에 체육시간에 체육 하다가 다리를 찢었는데 바지가 좀 찢어졌어요.
- 어디 보자.
엉덩이 이음선이 조금 찢어졌다. 거의 보이지도 않는다.
- 조금 찢어졌는데 더 찢어질까 봐 걱정되는구나.
- 네.
- 근데 내가 널 어떻게 도와야 하니?
- 담임 선생님께서 보건실로 가라고 해서 왔어요.
담임선생님께서 내가 옷도 수선해 주는지 아나보다. 웃음이 나왔다.
-여기 수선집 아니다. 반짇고리 없어. 어쩌냐? 엄마 집에 계시면 엄마한테 바지하나 가져오라고 해.
-네. 선생님, 전화기 한 번만 쓸게요.
-두 번 세 번 네 번 써도 돼.
전화기를 학생에게 주며
-근데 엄마 모르는 번호로 온 전화받니?
-네
엄마가 학생 옷을 가지고 보건실로 왔다. 학생은 옷을 갈아입고 교실로 갔다. 반짇고리를 사다가 수선집을 열어야 하는 건가? 그럼 또 대박 난 집이 될지도 모른다. 이미 대박 나긴 했지만 말이다.
일부 학생들은 보건실에 있는 의료용품을 누구 돈으로 사는지 궁금해서
-선생님, 여기 있는 약 선생님 돈으로 샀어요?
라고 묻는다.
생각보다 많은 학생들이
-선생님, 밴드 하나만 주세요?
-왜?
-집에 밴드가 없어요.
라고 말한다. 밴드뿐만 아니라 해열제, 배야플 때 먹는 약, 버물리, 연고 등을 주라는 학생도 있다.
이런 경우도 황당하다.
-선생님, 저 밴드 하나만 빌려주세요?
-그럼 내일 갚을 거니?
-네
-이리 와, 상처부터 보자.
라고 말하고 상처를 치료하고 밴드를 붙여주며 웃으면서
-안 갚아도 돼요.
라고 말했다. 생리대 하나만 빌려주라고 하는 학생도 있다.
학교 앞 아파트 단지에서 산다. 방학 때 쓰레기를 버리려고 분리 수거장에 가는데 3학년 학생이
-선생님, 내년에도 보건선생님 하세요?
라고 물었다. 속으로 '나 보건선생님 안 하면 굶어 죽어.'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응. 내년에도 하고 내 후년에도 하려고.
라고 말했더니
-다행이다. 선생님, 방학 잘 보내세요?
라고 했다. '다행이다'라는 말하니 기분이 좋다. 앞으로 학생들에게 더 잘해줘야 겠다.
6학년 학생을 아파트에서 만났는데
- 선생님, 왜 학교 안 가셨어요?
라고 물었다.
-방학이잖아.
-선생님, 방학 때는 학교 안 가요?
-응
-그럼 돈은 어디서 벌어요?
라고 물었다. 웃겨서
-응. 못 벌지. 손가락 빨고 살고 있다.
라고 말하며 웃었다. 내 돈까지 걱정해주다니. 고맙다.
보건실 단골 3학년 땡땡이가 보건실에 왔다.
-선생님, 이렇게 일하면 얼마 벌어요?
-왜?
-궁금해서요?
-조금 벌어. 먹고살 만큼.
-선생님, 오십만 원 벌어요?
-왜. 자꾸 물어보는데?
-선생님, 저 나중에 의사 되면 선생님 간호사라고 했잖아요. 제가 월급 50만 원 줄게요. 저희 병원에 간호사로 오세요.
-정말? 근데 그때는 선생님 할머니 될 텐데. 괜찮아?
-네
-그래. 고맙다. 꼭 의사 돼라.
-네.
단골이라 정성을 쏟았더니 날 알아보는 군. 고맙다. 약속 지켜라.
초등학교 보건실은 황당한 일들이 많이 일어난다. 그런 황당함이 당황스럽기보다는 나는 즐겁다. 병원에서 간호사로 근무했을 때는 늘 긴장되고 바쁘고 암울했었다. 초등학교는 신나고 밝은 에너지가 넘친다. 이런 곳에서 보건교사로 근무할 수 있어서 오늘도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