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생이니까 이해하자
초등학교 보건실은 황당한 일들이 많이 생긴다. 왜냐면 초등학교니까.
나는 학교에서 의사도 되었다가 간호사도 되었다가 마법사가 되기도 한다. 옷 수선사가 되기도 하고 안경사가 되기도 하며 심리 치료사가 될 때도 있다. 아마도 학교 내 나의 직업은 50가지가 넘을 것이다.
올 한 해 나를 황당하게 했던 일들을 정리해 봤다.
1학년 땡땡이가 배가 아프다며 보건실에 왔다. 문진 해보니 똥을 못싸서 배가 아픈 것이었다.
- 땡땡아, 똥 싸야겠다. 화장실 가서 똥 싸고 와.
- 선생님, 저는 학교에서 똥 못 싸요.
초등학교에는 집에서만 똥을 싸는 학생들이 있다. 그런 학생인가 싶었다.
- 학교에서는 왜 못 싸는데?
- 무서워서요.
무서워서? 신비 아파트 봤나? 유난히 공포를 좋아하면서도 공포 때문에 일상생활 곳곳에서 어려움을 겪는 것은 초등학생들의 특징이다. 이런 경우 나는 학생을 데리고 화장실에 가야 한다. 똥을 싸야 배가 안 아프니까.
- 선생님이 화장실 밖에서 기다릴게. 같이 가자. 귀신 없어.
귀신이 없다는 것을 강조했다. 땡땡이랑 남자화장실에 갔다. 땡땡이가 칸막이 안으로 들어가
- 선생님 밖에 있어요?
- 응. 어디 안 갈 테니까 덩싸라.
- 네
요 녀석이 변빈가 보다. 들어간 지 5분이 넘었는데 나오지 않았다. 계속 내가 있는지 확인하려고 나만 부른다.
- 땡땡아, 선생님이 어디 안가고 여기서 기다린다니까. 안 되겠다. 선생님 노래 부르고 있을 테니까 덩싸라.
- 네.
편안해야 덩이 잘 나온다.
- 파란 하늘, 파란 하늘꿈이 드리운 푸른 언덕에~~
노래 부르면서 내가 화장실에 있다는 것을 계속 알렸다. 노래를 한참 부르고 있는데 6학년 남학생이 화장실로 들어왔다. 나를 보고 깜짝 놀란다. 진짜 쪽 팔렸다. 초등학교에는 화장실에서 덩싸고 나오는 친구를 보면 냄새난다고 놀리는 학생들이 꼭 있다. 아마도 그런 놀림을 피해 쉬는 시간 전에 화장실 원정을 온 것이 틀림없다. 초등학교에서는 다른 학년으로 화장실 원정을 다니는 학생들이 꽤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나는 얼른
- 1학년 애가 저기에서 덩을 쌓고 있는데 무섭다고 해서 선생님이 노래 부르는 거야. 선생님 변태 아니다.
학생들 수업시간에 남자 화장실에서 동요 부르는 변태 보건 선생님으로 낙인찍히면 곤란하다. 6학년 남학생이 이해했는지
-네
라고 답했다. 나는 얼른
- 다른 화장실 사용하면 안 될까? 내가 가면 1학년 학생이 무서워해서.
- 네
6학년 남학생은 다른 화장실을 찾아 멀리멀리 떠났다. 다시
-파란 하늘, 파란 하늘꿈이 드리운 푸른 언더에 아이염소 여럿이 춤을 추고 놀아요. 해처럼 밝은 얼굴로.
노래가 거의 끝나갈 즈음에 힘주는 소리가 들리고 변기물 내리는 소리가 들렸다. 쉬는 시간 1분 전에 덩이 나와서 다행이었다. 땡땡이가 화장실 칸막이에서 나왔다. 나는
- 땡땡아, 이제 배 안 아프니?
- 네
- 손 씻어.
내가 보고 있어서 인지 손 씻기 6단계로 손을 씻는다. 땡땡이를 교실로 보내고 나는 중요한 임무를 끝낸 것처럼 가벼운 걸음으로 보건실로 되돌아왔다. 옆 보건선생님께
- 땡땡이 똥 싸고 괜찮아져서 교실로 갔어요. 남자 화장실에서 6학년 땡땡이를 만나서 쪽팔려 죽는 줄 알았어요.
옆 선생님께서 막 웃더니
- 똥 싸는 곳까지 우리가 따라 다녀야 하는 건가요?
라고 물었다. 나는 당연한 것을 묻냐며
- 초등학교잖아요.
라고 말했다. 이제 유치원 딱지 떼고 초등학생이 된지 얼마되지 않은 학생이다. 어쩌면 초등학생이라기보다는 유치원에 가깝다. 빨리빨리 자라서 화장실은 혼자 가면 좋겠다.
1교시 시작하기 전 5학년 남학생이 왔다.
- 선생님, 안경알이 빠졌어요.
- 어떻게 하다가 빠졌니?
- 아침에 집 화장실에서 안경이 떨어져서 빠졌어요.
- 다친 곳은 없어?
- 네
다행이다.
- 근데 왜 보건실에 왔어? 궁금해서.
- 담임 선생님이 가래요.
담임 선생님이 땡땡이를 보건실에 보낸 이유가 뭘까? 아무래도 안경을 수선해 오라고 보낸 것 같다. 다친 곳이 없는데 보건실을 보낸 걸 보면 말이다. 담임 선생님이 황당하다.
- 그래. 안경 줘 봐.
안경을 살펴보니 안경테의 안경 알과 안경 걸이를 잇는 나사가 깨져 있었다. 나는
- 그럼. 보호자에게 전화해서 안경 맞추고 다시 학교에 오는 것이 좋겠다. 그지?
- 네.
- 차라리 아침에 안경점 들렸다가 등교하지 그랬니?
- 엄마가 학교 끝나고 안경 맞추러 가자고 했어요.
- 안경 벗으면 칠판 글씨 보여?
- 아니요.
- 일단 안경 줘 봐. 선생님이 고쳐줄게.
안경 알과 안경 걸이를 흰색 반창고로 돌돌 말아서 붙였다.
-땡땡아, 한 번 써봐.
땡땡이가 안경을 썼다.
- 오늘 수업하는 내내 하얀 반창고가 신경 쓰여서 공부하는데 방해가 될 것 같은데. 시야가 반창고 때문에 좁아져서 답답할 것도 같다. 안 되겠다. 일단 엄마한테 전화해 보자.
안경 쓰는 사람은 안경이 없으면 세상이 흐릿하게 보여 일상생활이 불편해진다. 특히 초등학생들은 시야가 흐리면 주의가 산만해져 안전사고가 생기기 쉽다. 또 어지러움증이나 두통을 호소하는 경우도 있다. 보호자에게 전화해서 안경점을 들렸다 다시 학교에 오는 것이 어떠냐고 물었다. 보호자가 집으로 보내란다.
땡땡이 선생님께 전화했다.
- 선생님, 땡땡이 어머니께서 땡땡이 집으로 보내주면 안경 바꾸고 다시 학교로 보낸답니다. 땡땡이 집으로 보내세요.
-네.
옆 샘이
- 이런 일로 보건실 보내는 담임 선생님이나 안경에 반창고 붙이고 뒤처리 하는 선생님이나 정말 어이가 없네요. 이런 걸 왜 보건실에서 해결하려고 하는지 모르겠네요. 정말 황당해요.
그러자 나는
- 초등학교잖아요. 먹는 물, 공기질, 미세먼지, 교직원 결핵검진까지 다 우리에게 업무주는 것처럼 안경도 눈 건강이라고 생각해서 담임이 학생을 보건실로 보낸 것 아닐까요?
라고 말했다. 둘이 어이가 없어서 한참을 웃었다.
크리스마스 시즌이었다. 방학을 앞둔 이 시기 교실은 날마다 이벤트다. 만들기 활동은 왜 그리 이때에 몰려 있는지 모르겠다.
2학년 땡땡이는 만들기를 하다가 작은 반짝이를 삼켰다며 보건실에 왔다. 몸에는 특별한 이상은 없었다. 숨도 잘 쉬고 목에 뭔가 걸리는 느낌도 없었다. 다만 먹지 못하는 것을 먹었기에 눈동자가 흔들릴 뿐이었다. 삼겼다는 반짝이의 크기를 종이 위에 그려보라고 했더니 좁쌀만 한 동그라미를 그렸다. 땡땡이의 활력징후를 측정했다. 모두 정상이다. 이 녀석을 얼른 진정시켜야만 했다.
- 땡땡아, 숨쉬기 불편하지 않으면 괜찮아. 침 삼킬 때 목에 걸리는 느낌 없으니까 정말 걱정 안 해도 돼. 선생님 믿어. 저번에도 너처럼 반짝이 삼킨 애가 있었는데 괜찮았어. 나중에 다 똥으로 나오니까 걱정하지 마.
그간 종이나 지우개를 쥐꼬리만큼 먹은 학생은 있었다. 그러나 반짝이를 먹은 학생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반짝이의 재질, 크기 등을 확인하려고 교실에 남아 있다는 반짝이를 보건실로 가져오게 했다.
반짝이를 삼키게 된 경위를 물었다.
- 사탕처럼 빨다가 삼켜버렸어요.
- 응. 그랬구나. 일단은 네 몸에 특별한 이상 없으니까 괜찮아. 다음에는 입에 넣지 마. 알았지.
- 네.
담임교사에게 '땡땡이가 만들기 하다가 반짝이를 삼켰다고 합니다. 특별한 이상증상은 없으나 방과 후에 가정에서 세심히 관찰하고, 몸에 이상증상이 생기거나 불안하다면 병원진료를 받을 수 있게 보호자에게 안내전화 부탁드립니다. '라고 업무메시지를 보냈다.
너무 황당해 이런 걸 삼킨 학생이 왔었다고 보건교사 동아리 톡방에 올렸다. 한 선생님도 학생이 샤프 뚜껑을 삼켜 보건실에 왔다고 했다. 그 학생은 숨쉬기 불편하다고 해서 병원에 갔단다. 병원에서 엑스선 촬영하고 뚜껑이 지나간 인후 확인 후 아무 조치 없이 귀가했다고 했다. 그러자 다른 선생님들도 이런 일이 있었다고 했다. 한 선생님이 초등학생들은 왜 못 먹는 것을 입에 넣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그래서 내가 답했다.
'초등학생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