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생이니까 이해하자.
6학년 땡땡이다. 그날도 호들갑을 떨면서 손가락을 내밀었다.
- 선생님, 저 어떻게 해요?
전선을 묶는 플라스틱*으로 손가락을 조여서 피가 안 통해 손가락이 빨갛게 되어있었다. (*한쪽은 구멍이 나있고 다른 쪽을 구멍에 넣어 조이면서 전선을 묶는 플라스틱 끈)
- 가위로 자르면 되는데 왜 왔어?
가위를 손가락과 끈 사이에 조심스럽게 넣고 싹둑 잘랐다. 진짜 요 녀석 가지가지다.
- 이것은 또 어디서 났어?
- 교실에 있어서 심심해서 묶어봤어요.
- 그럼 얼른 가위로 자르지 그랬니?
- 담임 선생님께서 보건실로 가라고 해서요.
- 그래. 다음부터는 선생님처럼 가위 조심히 넣어서 주변 사람들에게 잘라주라고 해. 아무튼 잘 왔다. 제발 부탁이다. 며칠만 있으면 졸업하잖아. 그때까지 사고 치지 말자.
-네
대답도 잘한다. 웃기도 잘한다. 사고도 잘 친다. 아이고, 미워하려야 미워할 수 없는 캐릭터다. 6학년이 아직도 저런 캐릭터를 유지하다니 순수하다고 해야 할까? 중학교 가서도 저러면 안 될 텐데......
초등학교니까. 이해하자.
옆 선생님은 점심 먹으러 갔다. 그 시간은 1, 2학년 학생들이 보건실에 무지하게 많이 오는 1.2학년 점심시간이었다. 3학년에서 전화가 왔다.
- 선생님, 저희 반 땡땡이가 다른 친구랑 좀 싸웠는데 지금 흥분되어 있어서요. 보건실로 보내도 되나요?
속으로는 '보내지 마세요. 제가 지금 너무 바빠요.'라고 말하고 싶었다. 그러나 얼마나 부탁할 곳이 없으면 여기에 전화했을까 싶었다.
- 네. 선생님. 보내세요.
잠시 후 뺨에 눈물 자국이 일자로 죽 그어진 땡땡이가 씩씩거리며 보건실로 들어왔다. 아직도 흥분상태인 듯했다.
- 3학년. 땡땡이. 이리 와.
땡땡이를 침대 안쪽으로 가라고 했다. 따뜻한 물 한 컵과 화장지를 들고 땡땡이에게 갔다. 화장지로 눈물자국을 닦아주고 물을 줬다. 그리고
- 무슨 일이야?
- 우리 반 땡땡이가 제 옷을 잡아당기고 발로 찼어요.
- 아이고, 아프겠다. 어디 다친 데는 없니?
- 제가 잘 피해서 없어요.
- 다행이다.
- 일단 좀 쉬어. 그럼 마음이 진정될 거야.
- 선생님, 저 집에 가고 싶어요. 집에 가면 안 돼요?
- 일단 20분 쉬고 20분 후에도 계속 집에 가고 싶으면 그때 담임선생님께 말해보자.
- 네
나는 땡땡이가 오기 전부터 화장실에 가고 싶었다. 그런데 땡땡이가 집에 가고 싶다고 했다. 내가 화장실을 간 사이에 땡땡이가 집으로 갈 수도 있겠다 싶어 20분간 소변을 참았다. 속으로 땡땡이가 얼른 진정되기만을 바랬다. 20분 후 땡땡이에게
- 이제 좀 괜찮니?
- 아니요. 저 집에 가고 싶어요.
- 10분만 더 진정해 보자. 선생님도 학교 다닐 때 너처럼 친구랑 다툰 적이 있는데 30분 정도 보건실 침대에 누워있었더니 괜찮더라. 10분만 더 쉬어 봐.
나는 다시 10분간 다리를 꼬고 비툴면서 안절부절못한 체 식은땀을 흘리며 소변을 참으면서 학생들을 처치하는 고난이도의 업무를 해야만 했다. 10분 후 땡땡이가 나에게 다가와
- 선생님, 이제 마음이 괜찮아요.
속으로 '앗싸, 이제 교실로 보내야지.'하고 환호를 외쳤다.
- 집에 가고 싶지는 않니?
- 네.
- 다행이다. 그럼 교실로 갈 거야?
- 네
속으로 '그럼. 얼른 교실로 가야지.'
땡땡이를 교실로 보내고 교실로 전화했다. 혹시 집으로 가버릴 수도 있으니 말이다.
- 선생님, 땡땡이 지금 괜찮아졌다고 해서 교실로 보냈습니다.
- 네.
대기 중인 학생들과 침대에 누워있는 학생들에게
- 선생님, 화장실에 갔다 올 거니까 그동안 너희들 다 얼음이다. 얼음 하면 움직이지 말고 그대로 있는 거야. 알았지?
대기 중인 학생들이 재미있는지 웃는다. 학생들을 싹 살피고 큰 목소리로
- 하나, 둘, 셋. 얼음!
하고 외쳤다. 학생들이 얼음상태인지 스캔한 후 후다다닥 화장실로 달려갔다. 소변을 보고 난 후 이제야 좀 살 것 같았다. 배설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기쁨인가. 보건실로 돌아와 학생들을 쭈욱 살핀 후
- 땡!
하고 외쳤다. 학생들은 그제야 움직이기 시작했다. 재미있었나 보다. 그런데 1학년 땡땡이가
-선생님, 저 형아 움직였어요.
라고 말했다.
-그래.
움직였다는 학생을 바라봤다. 잠깐 긴장한다.
-괜찮아. 너무 오랫동안 냉장고 밖에 있어서 얼음이 녹아서 조금 움직인거야.
라고 말하고 다시 학생들 처치를 시작했다. 얼음땡 놀이도 초등학교니까 가능하다. 중학생들이었다면 어이없어했을 것 같다.
3학년 땡땡이는 점심시간에 손 곳곳에 하얀 페인트인지 실리콘인지가 묻은 상태로 보건실에 왔다.
- 손, 왜 그래?
- 학교 창틀 있잖아요. 거기 공사했다고 만지지 말라고 적혀 있는데 궁금해서 쓰윽 만졌더니 손에 이렇게 묻었어요.
- 그럼 씻으면 되잖아?
- 물로 씻었는데 안 씻겨요.
- 근데 왜 여기 왔어?
- 담임선생님이 가래요?
웃음이 나온다.
- 일단 기다려봐
세숫대야에 물을 미지근하게 만들 놓고 땡땡이 손을 담그게 했다. 5분 후 손으로 밀어보니 페인트가 조금씩 벗겨졌다. 페인트를 벗기는데 10분 정도 소요되었다. 생각보다 잘 벗겨지지 않았다. 점심시간이라 대기 중인 학생들도 많은데 이 녀석 페인트를 벗기다 보니 맘이 급해지면서 짜증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대기 중이던 1학년 학생이
-선생님, 저 빨리해 주세요?
라고 투정을 부렸다. 1학년 학생에게
-조금만 기다려요. 이 형 금방 페인트 벗기고 해 줄게.
손에 묻은 페인트를 다 벗겼다. 학생이 활짝 웃는다. 이 웃음에 짜증이 확 사라지고 뿌듯함이 그 자리를 메꿨다.
-땡땡아, 어째 우리는 하지 말라고 하면 더 하고 싶을까? 선생님도 너만 할 때 어른들이 하지 말라고 하면 더 하고 싶더라. 진짜 이상하지?
-네.
웃는다.
-앞으로 페인트 만지지 마.
-네.
페인트며 순간접착제며 심지어는 싸이펜 묻은 것까지 해결해 달라며 보건실로 달려오는 학생들. 초등학생이니까 이해하고 해결해 주자. 중학생 되면 안 그러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