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만교실에서 살쪘다

성격만큼은 세상 최고인 찬준이에게

by 민들레

잘 살지?

아빠도 잘 계시고.


너희 아빠랑은

너 초등학교 때 이후로는

같은 학교에서 근무한 적이 없다.


너희 아빠는 선배교사로서

너무 멋지고 따뜻한 분이셨어.

나에게 진심 어린 조언도

아끼지 않으셨지.

늘 고맙고 존경스러운 분이야.


우리가 방과 후에

비만탈출 교실을 했었잖아.

기억나지? 만약 잊어버렸다면

뇌에 아주 큰 문제가 생긴 거다.

동아리 이름은 '몸 튼튼 마음 튼튼'이었던 것 같아.


4~6학년까지 뚱뚱하고

성격 좋은 애들은 다 모였었지.

선생님이랑 보건수업 하던

너희 5학년들이 주 멤버였어.


배드민턴 선생님이 와서

배드민턴을 알려줬지.

짧은 커트 머리에 배드민턴 선수였다던 그 선생님.

생각나지?

우리가 쓸만한 배드민턴 기술들을

많이도 알려주셨지.


근데 너는 진짜 배드민턴을 잘 쳤어.

거뜬히 날 이겼지.

그리고 깔깔대며 선생님을 이겼다고 신이 나서

오두방정이란 방정은 다 떨었지.

귀여운 녀석, 지금도 생생하다.


그거 생각나?

배드민턴 선생님 안 오시는 날에는

우리 같이 학교 운동장을 누비며

축구했던 거.

축구가 재밌다는 걸 선생님은 그때 처음 알았어.


너는 진짜 축구도 잘했지.

선생님은 헉헉거리며 뛰었고

너희들은 쌩쌩 달렸던 것.

선생님은 맨날 헛 발질만 했는데

너는 공을 제대로 찼지.


너희들은 이상하게

선생님 못하는 모습만 보면

껄껄대며 좋아했지.

그 맑은 웃음소리가

아직도 생생하게 들린다. 신기하지?


영양샘하고의 추억도 있지.

급식실에서만 보던 영양샘이

비만교실에 오니 너희들이 정말 좋아했지.

영양교육이라고 이것저것 받았던 것 같은데

내용은 하나도 기억 안 난다.


너희들은 영양샘 하고 친해져

너희가 먹고 싶었던 메뉴

급식에 넣어주라고 영양샘한테 졸랐지.

그리고 그 메뉴가 나오는 날이면

헐레벌떡 보건실로 달려와

자랑하느라 정신없었어.


너희들은 선심이라도 쓰듯

영양샘 하고 친분을 과시하면서

"보건샘은 먹고 싶어요?"라고 물었지.

근데 내가 너희들보다 영양샘이랑

훨씬 친했단다.


비만 동아리 애들은 생각해 보면

학교에서 싫어하던 선생님이 한 명도 없었어.

다만 교실에서 뚱뚱하다는 놀림은 좀 받았지.

그런데 그런 놀림도 너희들은

그다지 신경 쓰지 않았어.


학교 뒷산 가던 날 생각나니?

산타기는 유일하게 선생님이 너희보다 잘하는 거였어.

너희들은 헉헉대며 등산을 포기하고 싶어 했지.

하지만 꾹 참고 끝까지 올라갔어.


그때 선생님이 말했지.

"포기하고 싶을 때마다 너희들에게 지금처럼

용기 주는 선생님이 되어줄게."라고.

그 약속, 영원히 유효하단다.


우리가 썼던 배드민턴이나 줄넘기, 축구공...

선생님이 사줬다고 너희들이 고마워했지.

근데 실은 보건소에서 모두 지원해 준 거야.


보건소 지원 프로그램을

선생님이 신청해서

배드민턴 강사분도 오셨고

운동 물품도 받은 거였어.

이제야 고백하네.


그때는 선생님도 젊어서

열정이 많았었지.

지금은 흰머리가 희끗희끗하고

얼굴에 검버섯도 있단다.

시간이 이렇게 흘렀구나.

이제 너희들은 이십 대 후반이 되어가고 있겠지.


참, 그거 생각나.

비만교실 끝날 때

다들 살쪄있었던 것.

심지어는 선생님까지 찌고 말았어.


너희들이 선생님을 원망하며

선생님이 너무 운동시켜서

많이 먹어버렸다고.

그래서 살쪘다고 했지.


선생님은 지방량이 줄었다고.

근육과 뼈의 무게가 늘어났다고.

기초대사량이 늘었으니

괜찮다고, 곧 빠진다고

말했어.


너희들은 그 말에

반신반의하면서도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지.

사실 우리는 진짜 찌긴 찐 거야.

마음이. 사랑이, 정이. 추억이,사랑이.

그래서 우리의 삶이 풍만해진 거지.


근데 진짜 우리는

성격하나는 끝내주게 좋았어.

한 번도 얼굴 불 캐는 일 없이

서로서로 챙겨주며 즐겁게도 지냈지.


그때처럼 맑고 순수한 교사와 학생관계,

지금도 가능할까?

아마 어렵겠지.

왜냐면 선생님이 지금은 너무 빛이 바랬거든.

가끔은 슬프단다.


보고 싶다.

다들 어디서 어떻게 살고 있을지,

찬준아, 특히 너는 정말 보고 싶다.


너는 중학교 2학년 스승의 날까지

선생님을 찾아왔었지.

그리고 연락이 뚝 끊겼어.


노래를 진짜 잘 불렀던 너

항상 웃고, 코믹하고, 명랑했던 너.

그 선명했던 날들이 너무나도 그립다.

지금도 너희들은 그렇게

선명함을 맑음을 간직한 채로 살아가고 있겠지.


기억해.

우리 함께 산을 오르던 그날처럼

포기하고 싶어질 때

걸음 더 내딛던 그때처럼

선생님도 다시 힘내볼게.

너희도, 어디선가 힘내고 있기를 바란다.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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