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발 짝 바꿔주세요.
초등학교때 기억은 거의 나지 않는다.
특히 좋았던 기억보다는 안 좋았던 기억만 남는다.
사람들이 좋았던 걸 기억 못하는거에 대해서 야유를 보내는 것에 대해서 야유하면 안된다.
그것이 인간의 본성인 것을..
내 인생을 되돌아보면 착한아이 신드롬에 강력히 사로 잡혀있었다. 하지만 난 착한 아이가 아니였다.
트라우마로 남을 정도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들려주려한다.
초등학교 4학년 때의 일이다.
우리 반에는 지능이 낮은 여자아이 한명이 있었다. 착한 아이 신드롬 속에서 커온 나는 다른 아이들이 놀리는 그 아이에게 친절을 베풀었고 담임선생님은 그 행동을 보고 본인의 일을 나에게 떠밀었다.
그 아이와 짝을 시켰고 착하다라는 감투와 함께 선행상으로 나를 묶어 두었다.
처음에는 괜찮았다. 그 아이는 이것저것 나에게 먹는것 선물을 주었고 나는 그 아이를 측은히 여겨 친하게 지냈다. 헌데 어느 순간부터 그 아이는 나에게 집착하기 시작했다. "화장실 같이가자." "같이 밥먹자." 등등 친구라면 같이 할 수 있는 행동이지만 나는 그 아이가 좋은 것은 아니었다. '난 착한 아이니깐, 이 아이를 챙겨야해.' 라는 생각으로 함께 시간을 보내는데, 그 아이와 있는 시간만큼 다른 아이들에게는 점점 멀어졌다.
담임선생님은 자리를 바꿀 때도 나를 그 친구 옆에 앉게 하였고 봄소풍때도 나의 짝은 그 아이였다.
선생님께 짝을 바꿔달라고 했지만 거절 당했었다.
그렇게 나는 고립아닌 고립이 되었다. 나의 행동은 조금씩 변하게 되었다. 그 아이에게 천사가 아닌 악마가 되어갔다. 괜히 밀고 책상 위 선을 넘어오면 때리고 조용히 하라고 화를 내고 말걸지말라고 하면서 그 아이에게 가시를 잔뜩 세우고 안아 주었다.
꼬마 악마의 탄생이다. 나도 다른 친구들과 수다 떨고 뛰어 놀고 화장실가고 밥먹고 하고 싶었지만 그것이 통제되는 순간 내 속에 있던 악마가 깨어났다. 착하게 지내야 하는데 자꾸 괴롭히고 싶고 화가난다.
이에 부모, 담임선생님에게 도움을 청해도 돌아오는 답은 "착하게 사이 좋게 지내야지!" 였다. 이런 아이러니한 감정을 초등학교 4학년 악마 혼자 오롯히 견뎌야 했다. 그 아이에게 미안하지만 괴롭힘은 심해졌던것 같다. 이렇게 하면 짝을 바꿀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였다. 하지만 내 기억으로는 그 계획은 실패했고 대부분의 시간을 그 아이의 짝으로 보냈던 것 같았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부쩍 살이 쪘다. 성장호르몬이 많이 분비 되는 때라고 하기에는 살이 안찐 다른 아이들이 훨씬 많았다. 아마 나도 다른 친구들의 관심이 필요 한 시기에 스트레스를 엄청 받아서 그 애정겹핍이 먹는 것으로 대신 했던 것 같다.
이 경험이 나에게 큰 트라우마로 작용해서 "측은한 아이들에게 먼저 친절을 베풀지 말자."라는 생각이 내면의 한곳에 자리 잡았다. 만약 이때 담임선생님이 나에게 그 아이를 맡기지 않았었다면... 내 안의 악마는 잠들어 있지 않았을까? 아마 지금 선행을 더 베풀지 않았을까?
하지만 웃기게도 나의 착한아이 신드롬은 계속 되었다. 또한 이는 내가 행복해지고 부자가 되는 것의 큰 방해물이었다는 것을 1년 전에 알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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