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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말고

by 별하


이젠 사랑 말고
다른 것으로 하루를 채워보려 하오

조용히 마른빨래를 걷고
햇빛 한 줌에도
손등을 내밀어보는 일

더 이상
누군가의 마음에 들기 위해
나를 다듬지 않아도 되는 평온

모서리가 둥글어진 그릇처럼
무엇을 담든 흘리지 않도록
천천히 살아가는 일

사랑이 아니더라도
기억할 만한 순간들은
하루에도 몇 번씩 지나더이다

나는 이제야
사랑 말고도
나를 다녀간 것들이 있었음을
조용히 인정하려 하오

그믐이면
말하지 못한 이름들보다
남아 있는 나를 먼저
토닥이고 싶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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